2023년 10월 23일에 작성된 글.
나는 소위 말하는 '하고잡이'이다. 단어를 검색하면 '뭐든 하고 싶어 하고 일을 만들어서 하는 일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나온다. 일의 시작이 참 쉽고 빠른 스타일이라 '얕고 넓게' 식으로 살아왔다. 좋게 말하면 팔방미인, 반대로 말하면 이도저도 아닌 사람. 그 애매모호한 지점에서 내 본모습을 찾기 위해 더 넓고 얕게 버둥거릴 뿐이었다.
오늘로 둘째가 태어난 지 딱 60일이 되었다.
이른둥이라 출생일 기준은 60일이지만, 교정일은 22일 차. (이른둥이는 태어난 날이 아닌 출산예정일을 기준으로 '교정일'을 세어 발달 기준을 잡는다.) 이제 신생아 케어도 좀 손에 익었는지 빈칸이 된 장래희망란을 들여다볼 여력이 생겼다.
지금 1학년인 첫째가 태어났을 때 내 삶을 잠깐 넣어두고 오로지 이 아이만 바라보며 지냈던 시간들이 엄마로서 소중한 시간이었어도 '나'는 무척 좀이 쑤시는, 고문 같은 날들이었다. 남편은 힘겨워하는 나에게 돌 지나면 어린이집 보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지만 오히려 역정만 날 뿐이었다. 당시 '엄마'의 마음이 컸는지 아이를 품고 있으려고 나를 억지로 구겨놓았던 23개월 동안 나는 늘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하는 억울하고 서운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처음으로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집에 들어와 침대에 대자로 누웠던 기억이 난다. 적응 기간이라 금방 데리러 갔을 테지만, 잠시 누워서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나 이제부터 뭐 하지?'였다. 이 생각의 뉘앙스는 '큰일 났다'보다는 '자,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새로운 시점에서 항상 난 생각했다. 이제 장래희망 란에 내가 쓰고 싶은 걸 쓰기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번에는 무엇을 써볼까? 당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결혼 전에 하던 일을 이어서 해보자는 것이었다.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프랜차이즈 방문교사로 시작하여 코로나 기간 3년 동안 공부방을 운영했다.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 공부방을 정리했고, 얼마 뒤 둘째가 우리에게 찾아온 것이다.
둘째가 태어나기 몇 달 전 우리 가족에겐 큰 이슈가 있었다. 남편이 식당을 차린 것이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던 남편이 큰 용기를 내어 음식점을 차렸고, 홀 서빙에 재료 손질에 온 가족이 붙어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아기를 낳을 시점과 낳고 난 뒤의 상황을 결정하기도 전에 양수가 터졌고 다시 그렇게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집에 와서 있고 보니 또 좀이 쑤셨다. 첫째 때보다 더 일찍부터 마음이 갈팡질팡 하기 시작했고, 내 장래희망 란이 다시 빈칸이 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됐다.
음식점을 열기 전까지 나에 대해 여러 번 고민했다. 우선 남편 일을 도와줘야겠지만, 난 내 일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임을 남편도 잘 안다. 했던 일을 계속할까 싶다가도 다른 아이들 돌보느라 내 아이들 못 볼 생각 하니 그건 가치관에 어긋나고. 음식점이나 베이커리 같이 손으로 하는 일은 자신이 없고, 가게를 차리자니 월세도 걱정, 그걸 감안하고 수익을 내려면 뭘 얼마나 팔아야 하나 싶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스마트 스토어였다. 초기 자본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고, 팔 수 있는 물건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늘 같은 상황이나 비슷한 처지에 놓여서 서로 '동병상련'이라고 부르는 친구는 먼저 스마트스토어를 열었다. 고심 끝에 상호명을 정하고, 사업자 등록을 하고, 중국 사이트에서 아이템으로 고르고, 업체와 메일을 주고받고, 상세페이지를 작성했다. 그러다가 좋은 멘토를 만나게 된 친구는 현재 주식 투자를 전업으로 하고 있다. 몸이 힘들고 마음도 외로운 일이고, 시장의 흐름에 따라 수익이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내 기준에서 그 친구는 열심히 한 우물을 파고 있으며 그 일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그러면 나도 주식을 하느냐? 난 게을러서 못한다. 세상의 미세한 변화와 어떠한 흐름으로 특정 분야가 팡 떠올랐다가 푸스스 거품이 빠지는 이야기는 늘 재미있다. 하지만 그걸 분석하고 예상해서 가닥을 잡은 뒤 흔들림 없이 그 마음을 밀고 나갈 만큼 난 집요하지 못하고 굳세지도 못하다. 성격상 주식 투자는 나스닥 큰 물줄기를 타서 장투 하는 것이나 안전자금에 투자하는 것 정도? 그러기엔 우선 몇 년 동안 없어도 될 목돈이 필요하고.
유아나 어린이를 상대로 다양한 체험과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어느 영상 수업 플랫폼의 강사도 생각해 봤다. 커리큘럼도 잡아보고 집 근처 독서실 미팅룸으로 가서 화상 면접도 봤다. 프로그램을 등록하기 직전 포기했다. 수수료에 비해 큰 노력이 들 것을 생각하니 손해였다. 시간 지나서 수업자가 늘면 수입이 괜찮아지겠지만, 대면 수업에 강한 나는 비대면 수업이 자신 없었고 괜히 무섭기까지 한 것이다.
작년 말에는 시 쓰는 수업을 다녔다. 놓지 못한 시인의 끈을 다시 한번 붙잡아 보려고 애쓰는 시기였는데 어쩜 옛날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었다. 등단은 택도 없으니 공모를 목표로 잡고 작년 하반기에 열심히 썼다. 공부방을 관두고는 퇴고에 더욱 힘썼고 신춘문예 공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걸로 돈을 벌기엔? 나는 미비할 뿐이다.
자, 장래희망은 다시 빈칸이 되었다.
지금 나온 것들 중에서 하나가 될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막상 닥치면 남편 가게 일을 돕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아마 난 내 것을 찾기 위해 넓고 얕게 또 버둥버둥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내 새끼들 챙기기)을 하며 병행할 수 있는 일로 돈을 벌고, 담담하지만 유머러스한 인간, 여자 어른으로 늙고 싶네. 딸 둘 사이에서 다음 job을 고민하는 엄마의 '나는 어떤 인간인가?' 도 부록으로 껴줘야 내가 살 것 같다.
* 지금의 마음과는 미묘하게 다르지만, 약 1년 전의 글을 올린다. 가감없이 쓴뒤 고치지 못해 묵힌 글이 몇 개 더 있어서 나머지도 올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