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 노래방이 있다고요?

샤워실에서 만난 진정한 나

by 장띠

엄마는 머리가 아프거나 머리 복잡한 일이 있을 때

기분 전환 겸 샤워를 즐겨하신다.


일종의 테라피라고나 할까.


뜨끈뜨끈한 물에 가만히 몸을 맡기고 있으면

온갖 불안이나 걱정들이 함께 씻겨 내려가고,

따뜻한 위로를 받으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


그게 바로 엄마가 터득하신, 샤워를 통해 삶의 활력을 얻는 방법이었다.


나도 그런 엄마를 닮았다.


샤워실에서 단순히 씻기라는 최초의 목적만을 달성하고 그치지 않는 것 말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달랐다.


이건 뭐, 그냥 샤워실을 나만의 private한 공간으로 탈바꿈해 버렸는 걸.


어렸을 때부터 노래 부르기를 너무 좋아했던 나는

어디서든 곧잘 노래를 잘 부르곤 했다.


물론, 노래방에서 부르는 게 가장 베스트이긴 하다.


필 충만한 마이크와 익숙한 여자 AI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노래방 기계,

노란색 탬버린, 반짝반짝 빛나는 미러볼,

주위 신경 끄고 오로지 내게만 집중하게 해 주는 방음,

분위기 끝판왕을 만들어 주는 캄캄한 공간 등등.


이렇게 노래 부르기에 최적화되어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24시간 내내 노래방에 철거미처럼 붙어 있을 수만은 없다.


그렇기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일상에서 노래방에 버금가는 제 2의 나만의 공간을 찾는 게데 시선을 돌렸다.


그게 바로, 샤워실이었다.


에코 빵빵하지, 조용하지, 상쾌하지.


노래 부르기에 아주 딱 좋았다.


깨끗하게 씻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취미도 즐길 수 있고

난 정말 행복한 사람 같았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말, 정말 그러했다.


그러나 이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내가 샤워실에서 노래를 부르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언젠가부터 노래 부르는 모습,

노래 부르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내 모습 그 자체가


어쩌면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딸로서, 친구로서, 동생으로서, 학생으로서

혹은 또 누구로서


나에게 부여되는 여러 복잡한 사회적 관계들,

사회적 자아들을 훌훌 벗어 던지고


오로지 '나'라는 인간만이 남은 원초적 자아를 마주하는 순간 -

그 때 비로소 나는 내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해 질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가장 나다워질 수 있던 것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런 의도도 없이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부르고 싶은 디즈니 ost부터

대중가요, 발라드, 성악까지 그렇게 한참을 불렀다.


나의 목소리로

내가 좋아하는 그 멜로디를 불렀을 때,

그 가사에 이입할 때

나만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은 황홀함을 느꼈다.


노래를 통해 표현하고 싶은 무언가에 대한 욕구를 마음껏 표출하며,

묘한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한껏 스트레스도 풀고, 나만의 광란의 파티에 심취해 있을 때쯤


소음 때문에

피해를 입을 이웃주민들을 생각하면 죄송해 지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너무 시끄러워서 참다 못한 주민분께서

조용히 해 달라고 주의를 주셨던 적도 꽤 많았으니까.


"딸아이가 성악하시나 봐요...?"

"아... 아니에요...ㅎㅎ 죄송해요."


나 때문에, 괜히 애먼 엄마까지도

곤경에 처하게 만들곤 했었다.

이 때문에, 한동안 인터폰 소리만 울려도

발작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요즘엔 비교적 평화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절대 늦은 새벽이나 아침에는

샤워하면서 노래 부르지 말 것."


이것만큼은 잘 지킨다면 말이다.


이는 더 오래 오래,

노래를 즐기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는 곧,

내 자신을 잃지 않고 오래 오래
지켜나가기 위한 방법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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