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발효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화제다. 전기차 등 우리 산업 분야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법은 미국 내 급등한 인플레이션 완화를 위해 마련되었다. 이 법은 2022년 8월 7일 미국 상원, 8월 12일 하원을 통과한 후, 8월 16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며 발효되었다. 이 법은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당시 공약으로 내세웠던 ‘더 나은 재건 법안’을 수정한 것으로서, 기후변화 대응, 국가 에너지 안보 강화와 의료비 지원 등에 4,300억 달러를 투입하고, 이 재원 마련을 위해 법인세를 인상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에너지 분야와 관련해, 이 법은 메탄 및 수소불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고, 전기자동차와 에너지 저장 시스템 분야의 미국 내 공급망을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IRA 발효로 큰 타격을 받는 국내 전기차에 가려 관심을 덜 받지만, 원전산업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IRA는 미국 원전산업에 기회다. 첫째, IRA는 원전을 탄소중립 이행의 핵심수단으로 인정했다. IRA는 2024~2032년간 기존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에 메가 와트시(MWh) 당 최대 15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신규 원전을 건설할 때는 설비투자 금액 30%에 대해 투자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기존 석탄발전소 부지에 원전을 지으면 추가로 10% 세액공제를 해준다. 이처럼 원전 가동 및 건설에 세제 지원을 함으로써, IRA는 미국의 에너지 안보와 탄소배출 저감을 위해 원전 이용의 지속 및 확대를 유도했다.
둘째, IRA는 원자력의 이용 다변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IRA는 청정 수소 생산에 대한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그런데 청정 수소 생산에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을 특정하지 않았다. 단지 수소 1kg 생산 시 배출되는 생애주기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세액공제 수준을 차등 적용하는 기준만을 제시하여, 청정 수소 생산을 위한 에너지원 간 기술개발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원자력이 수소생산에 확대 적용될 제도적 기반이 갖춰진 것이다.
셋째, IRA는 자국 원전 공급망 복원을 꾀하고 있다. IRA는 고순도저농축우라늄(HALEU) 공급망 구축 지원을 위해 7억 달러를 투자한다. HALEU은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신형원자로 핵연료에 사용될 물질로서 신형원자로 보급을 위해 꼭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우라늄 변환 및 농축 서비스의 러시아 의존을 탈피하려 한다. 미국은 자국 원전 가동에 필요한 우라늄 변환 및 농축 서비스의 20%를 러시아에 의존해 왔다. 앞으로 미국은 공급망 붕괴로 경쟁력을 잃은 대형 원전 대신, 새로운 공급망을 구성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신형원자로 개발 및 상용화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미국의 원자력 이용 확대가 예상되면서 우리나라에도 기회와 도전이 주어졌다. 첫째, 우리 기업의 미국 원전시장 진출 기회가 커졌다. 기존 원전에 대해 세제 혜택이 주어지면서, 폐지를 고려했던 수십 기의 원전이 계속운전할 것으로 보인다. 계속운전을 위해서는 낡은 설비를 교체해야 한다. 미국은 대형 원전 공급망이 망가져 현재로선 외국, 특히 한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단기적으로 미국 원전의 계속운전을 위한 설비 교체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SMR과 원자력수소 등 신흥 시장이 열릴 것이다. 우리 기업은 수요 시기를 고려해 미국 진출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우리 기업이 미국 진출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기존의 양국간 원자력 협력 체제를 점검‧정비해야 한다.
둘째, 미국의 원자력 정책 변화에 슬기롭게 대비해야 한다. 미국은 대형 원전의 계속운전을 추진하며, 전력생산 외 다른 용도로도 사용 가능한 신형원자로 개발과 공급망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또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탈피하려 한다. 앞으로 펼쳐질 신형원자로 시장에서 미국과 선의의 경쟁을 하거나 전략적 협력을 하기 위해서는 이 분야에서 우리도 미국과 대응한 기술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진행 중인 혁신형 SMR 개발과 상용화를 서둘러야 한다. 원자력으로 청정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 상용화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핵연료 공급 자립기반을 갖춰나가야 한다. 미국의 HALEU 공급망 구축 완성은 여러모로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공급망 구축 완료 후 러시아산 우라늄에 대해 금수 조치를 내릴 수도 있다. 이러면 우라늄을 100%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기존 원전뿐만 아니라 신형원자로 가동과 수출을 위해서라도 핵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춰야 한다. 미국의 HALEU 공급망 구축에 공동 참여하거나 해수 우라늄 추출 기술개발 등을 통해 우라늄 자급 기반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