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의 번식 전략
감자의 생존 전략 이야기
곤지암과 미르마을 텃밭에 감자는 해마다 빼놓지 않고 심었다. 처형과 장모님 댁에서 먹다 남은 감자들을 가져다 심었다. 모아 놓고 보니 감자의 종자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자에 따라 크기 생김새 색이 모두 달랐다. 이 때는 별생각 없이 넘어갔다. 여름이 오고 감자가 다 익어서 수확을 해서 햇감자를 쪄 먹어 보았다. 감자를 먹으면서 그동안 감자에 쏟았던 정성이 생각났다. 북을 돋아 주고, 물을 정기적으로 주고, 무당벌레를 열심히 잡아 주었다. 나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풍성한 감자를 수확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감자 입장에서 보면 희생만 당하고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순간 내가 감자를 키우는 것인지, 감자가 수확을 미끼로 사람을 이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의문이 감자 역사를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감자의 세계화 전략을 4단계로 나누어 추적하였다. 재미를 위하여 감자의 시선으로 쫓아가 보도록 하겠다. 각 단계 말미에는 감자의 세계화 전략 실행에 선택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1단계: 인간을 이용하기 시작하다.
먼 옛날 안데스 산맥에서는 감자들의 조상들이 살고 있었다. 빙하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종족의 세를 불려 나가기 시작하면서 감자는 두 가지 전략을 사용했다. 하나는 서로 다른 품종들과 교배를 통하여 새로운 종족을 만들어 냈다. 유전자 풀(Pool)을 늘 새롭고 풍성하게 관리했다. 이를 통하여 혹독하고 변덕스러운 안데스 산맥의 환경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여 나갔다. 다른 하나는 맛이 쓰고 독성이 있게 만들어 동물들이 감자를 함부로 먹지 못하게 만들어 나갔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7,000여 년 전, 안데스 산맥에 인간이라는 종족들이 나타나 상황이 급변하였다.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도구를 사용하여 캐내고 불을 사용하여 독성을 중화해서 감자들을 먹어 치웠다. 종족 말살이라는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서 감자들은 당황했다. 그러나 자기들의 일부는 남겨서 다음 해에 인간들이 일군 밭에 심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재배 면적을 점점 더 늘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 감자들은 생존 전략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생각해 보았다. 감자의 맛을 인간들이 싫어하는 맛으로 바꾸는 방법이 있다. 그러면 인간들이 더 이상 자기들을 해치지 않아 종족이 위험에서 벗어나 편안히 살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인간이 자기들을 다 먹지 않고 다시 심어준다. 그러니 인간이 좋아하는 맛으로 변하면 인간을 통해서 번성해 나갈 가능성 있다. 감자들은 두 가지 전략 중 어느 전략을 선택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결론은 두 가지 전략 모두를 실행해 나가기로 했다.
[잉카 농부의 감자 이야기]
나는 안데스 산맥에서 사는 잉카 농부다. 내가 사는 곳에는 감자 종류가 다양하다. 파란색, 노란색 등 색깔별로도 다양하고 홀쭉한 감자, 통통한 감자 등 생김새도 다양하다. 수확기가 긴 감자가 있는 반면 짧은 감자도 있다. 단맛이 강한 감자, 쓴 맛이 나는 감자 등 맛도 다양하다. 우리 조상들이 세대를 거듭하며 새로운 감자를 찾아낸 결과다, 지금은 3000종 가까운 감자가 있다. 내 삶의 터전인 안데스 산맥은 고도에 따라서 온도와 바람의 변화가 심하다. 이런 환경에서는 한 가지 종의 감자만을 심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단일 재배 대신 여러 품종의 감자를 심는 방법을 택했다. 한 가지 품종만을 재배하면 환경 변화의 위협에 대응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하여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농부들은 지금도 새로운 종류의 감자를 찾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가 심은 감자와 야생 감자가 이종 교배를 통하여 새로운 품종이 계속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두 가지 기준으로 새로운 감자를 선택한다. 가뭄이나 냉해 등 환경 변화에 강한 종이 거나 맛이 더 뛰어난 종이어야 한다. 이 기준을 만족한 감자에게는 더 많은 경작지를 할애해 주고 있다.
2단계: 인간을 길들이다.
1588년 감자는 아일랜드로 건너왔다. 감자들은 척박한 땅에도 잘 자라 번성을 구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감자는 단일 품종으로만 집중적으로 키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감자는 인간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자연의 법칙을 잘 알고 있었다.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병에 취약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래서 감자는 다른 감자와의 교배를 통해서 병에 견딜 수 있는 유전자를 교환하고 있었다. 무지한 인간들이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수확이 많다는 이유로 한 가지 종의 감자만을 집중적으로 심고 있었다. 감자는 인간에게 강력한 경고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장고를 거듭하던 감자는 위험하긴 하지만 효과가 극적 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적을 끌어들여 동반자를 깨우치게 하고자 했다. 감자는 잎 마름 병균을 초청하여 자기들의 몸을 내주었다. 1845년 잎 마름 병은 아일랜드 전 국토를 강타했다. 5년간의 감자 흉작으로 아일랜드인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 감자의 전략은 적중했다. 이로 인하여 감자는 두 가지 큰 이득을 얻게 되었다. 우선 인간들이 다양한 감자 품종들을 키우면서 병균에 강한 감자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하여 감자는 대대손손 번영할 수 있는 튼튼한 토대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기아를 이기기 위하여 신대륙으로 건너간 아일랜드인들이 감자를 미대륙에 집중적으로 심기 시작했다. 종족이 한 층 더 번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감자의 자기희생을 통한 번영 전략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아일랜드 농부의 감자 이야기]
나는 아일랜드의 농부였다. 지금은 미국으로 건너가는 배 안에 있다. 이민을 가는 중이다. 1588년 우리 조상들은 ‘럼퍼’라는 종의 감자를 들여왔다. 내 조국의 땅은 척박하여 밀이 잘 자라지 않는다. 그런데 ‘럼퍼’는 이 땅에서도 잘 자라서 수확량이 많았다. 나도 이 감자를 심어 가족들을 부양해 왔다. 일견 아일랜드에서 감자는 배고픔을 해결한 축복받은 작물 같았지만, 실제로는 잔인한 비극을 숨기고 있었다. 자연이 얼마나 변화무쌍했는지 우리 같은 농부들이 알리 없었다. 내재된 비극은 1845년 늦여름에 갑자기 현실화되었다. 내가 심은 감자의 잎이 말라붙기 시작했다. 결국 모든 감자가 고사했다. 이어서 감자를 주식으로 삼던 사람들에게 종말이 다가왔다. 3년 동안 1백만 명 정도가 아사했거나 전염병에 걸려 죽었다. 나도 가족을 잃었다. 이민 가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조국에서 비극의 씨앗은 감자에 내포되어 있지 않았다. 감자의 단일 재배가 진정한 문제였다. 감자 역병에 유전적으로 취약한 동일한 종만 집중적으로 재배함으로써 비극을 키웠다. 기근 후에 잎마름병에 내성을 가지고 있는 감자를 남아메리카에서 찾아냈다고 들었다. ‘가넷 칠레’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미국에 도착해서 감자 농사를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물론 병원균에 내성이 강한 ‘가넷 칠레’와 같은 종을 선택해야만 한다.
3단계: 세계화를 확산하다.
미국으로 건너와 신대륙을 점령한 감자는 이제 세계를 제패할 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미 감자는 신대륙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식탁에 오르고 있었지만 밀과 쌀에는 미치지 못했다. 빵과 밥처럼 상시적으로 인간이 감자를 먹게 해야 했다. 인간이 감자를 많이 먹어 주어야 감자도 같이 번성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한 감자는 이러한 성공의 메커니즘을 금번 전략에도 핵심으로 삼기로 했다.
전략을 수립하기 위하여 인간의 생활상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던 감자는 맥도널드라는 새로이 생겨난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을 주목하게 되었다. 감자는 자기 종족 중에 맥도널드에 가장 적합한 종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어느 한 과학자를 이용해서 가장 적합한 냉동 감자를 만들도록 했고 이를 최종적으로 맥도널드에서 채용하도록 만들었다. 감자는 변신을 게을리하는 순간 자연은 그 종을 도태시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밀과 쌀을 밀어내고 인간 최고의 주식이 되는 그날까지 감자는 끊임없이 자기를 변신시켜 나갈 것이라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냉동감자 발명 연구원의 감자 이야기]
내 이름은 레이 던랩(Ray Dunlab)이다. 심플롯(Simplot)이라는 회사에서 감자를 이용한 식품을 개발하는 연구원이다. 감자 맛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튀김 방법을 개발해 냈다. 먼저 뜨거운 기름에 감자를 넣고 2분간 튀긴다. 다음에 즉시 냉동시킨다. 튀긴 감자 온도를 몇 분 안에 영하 34도로 낮추면 된다. 이를 우리는 급속 냉동 기술이라고 부른다. 수많은 실패를 거쳐서 기 기술을 개발했다. 오랜 시간을 들여 튀긴 감자를 냉동시키면 튀김 안에 있는 물 분자가 팽창되어 나중에 해동하면 물컹해진다. 그러나 급속냉동하면 물 분자가 바로 얼어붙어 버리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냉동 감자를 다시 2분간 기름에 튀기면 일반 감자를 튀겼을 때와 같은 맛이 난다. 내 보스인 심플롯 사장은 내가 개발한 냉동감자를 맛보고는 매우 만족해하고 바로 판매를 시작하기로 했다. 내 보스는 맥도널드에 내 냉동감자를 소개했다. 그 당시 맥도널드는 감자 품질관리와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맥도널드는 매장에 냉동감자를 써 보고 고객 반응을 살펴보기로 했다. 별 다는 고객 항의가 없어서 맥도널드는 냉동감자를 쓰기로 결정했다. 1972년까지 모든 매장이 냉동감자로 바꿨다. 다른 패스트푸드 체인점도 뒤를 따랐다. 내 보스는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4단계: 최 첨단 유전자 공학을 차용하다.
감자는 전략의 패러다임을 바꾸기로 결정한다. 지금까지는 자연에서 유전자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인간과 상호작용하면서 공진화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인간의 지성이 발달하면서 자연에서나 가능한 일을 인간이 해내기 시작했다. 감자의 유전자 염색체를 조작해서 새로운 종의 감자를 만들어 냈다. 몬산토라는 회사에서 병원균에 내성을 갖춘 ‘뉴 리프’라는 감자를 인공으로 만들어 냈다. 인간과의 공진화 전략에서 인간의 지성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전략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 전략은 현재 진행형이라서 아직 성공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유전자 변형 식품에 대한 인간의 반감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맥도널드는 2000년대 들어 유전자 변형 감자의 사용을 철회했다. 그러나 미래에 식량난이 가중되고 무해함이 증명되면 또 한 번 감자의 전략이 성공적이었 음이 증명될지도 모른다.
[몬산토 연구원의 감자 이야기]
나는 몬산토사에 근무하는 연구원이다. 유전공학을 전공했다. 유전공학이 발전하면서 자연이 수행하던 일을 인간이 대신 수행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자연에 순응하며 살던 인간이 자연에 대한 조작 기술을 발전시켜 자연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키워 나가고 있다. 이제 자연선택에 더하여 인간선택이 진화의 원리로써 새로이 작동을 시작했다. 나 같은 과학자들이 그 역할을 수행한다. 동료들과 같이 새로운 종의 감자를 만들어 냈다. 이 감자는 스스로 살충 성분을 생성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하여 만들어 냈다. 마케팅 부서에서는 이 신품종에 ‘뉴 리프’라는 이름을 붙였다. 실은 이 품종은 이름과는 다르게 잎뿐만 아니라 줄기, 꽃, 뿌리 그리고 덩이줄기에서도 살충 성분을 생성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맥도널드는 감자튀김을 만드는데 우리들이 개발한 감자를 썼다. 최근에 맥도널드는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사회적 저항감이 커지자 이를 자기 회사 제품에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맥도널드 같은 대형 회사의 구입이 끊기면서 내가 개발한 감자의 운명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결국 2001년 초에 우리 회사는 뉴 리프의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감자는 생존하고 번성하려는 식물이 가진 최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교묘하게 선택한 진화의 전략을 구사해 왔다. 자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종을 이용했다. 농경은 인간이 소수의 종을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재배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인간에게 장점을 소구 해서 선택하게 만들기만 하면 번성의 기회가 주어진다. 인간이 경작지를 넓히고, 경쟁 식물을 제거해 준다. 또한 유해 동물로부터 보호해 주고, 자연재해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해 준다. 물론 일정 부분은 인간의 식량으로 내어주어야 하긴 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득이 되었다. 다음 단계는 인간이 선택한 소수의 종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해야 했다. 인간의 입맛에 맞게 변형하고 단위당 수확을 늘려 주어야 했다. 이런 감자의 은밀한 전략은 현재까지는 성공을 거두었다. 다만 인간의 지성이 감자만이 가졌던 진화의 독점 영역을 침범하면서 게임의 룰이 변화하고 있다. 감자는 능동적으로 번영 전략을 구사하다가 수동적인 적략으로 선회했다. 아니면 인간의 지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전략을 구사할지도 모를 일이다.
참고 서적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피터 노왁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