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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경심전 Feb 02. 2023

전원에서의 독서

도시와 전원에서의 책 읽기가 다를 바가 없겠지만 전원에서는 몇 가지 환경적인 측면에나 정서적인 면에서 장점이 있다. 여름에 비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저녁의 풀벌레 소리, 흰 눈으로 뒤 덮인 눈부신 정원, 정원에 나 뒹구는 낙엽들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며 책 속으로 들어가 사색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준다. 또한 난로 유리창을 통해 새어 나오는 불 빛, 따뜻한 열기는 읽기 시작한 책을 오래 붙들고 있도록 해준다. 난로에서 방금 구워 낸 고구마의 열기와 당분은 뇌의 집중력을 높여 준다. 

전원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나의 독서는 크게 두 가지 분야에 집중되었다. 직장 생활에 필요한 전문 서적 분야와 삶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해 줄 수 있는 물리학, 생물학, 철학 분야였다. 책이 나를 찾아오는 경우는 대부분 후자를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5도 2촌의 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삶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들도 즐겨 읽었다. 전원에서 독서를 하면서 몇 가지 변화를 겪었다. 독서를 하는 계절과 시간대가 변경되었고, 도시 생활에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에 대한 흥미도 생겼다.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에는 책을 읽어야 한다?  국민들로 하여금 독서를 하도록 유도한 정부의 선동정책에 우리가 속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책을 읽어 보면 실상 가을에 책이 가장 안 읽힌다. 봄도 마찬가지다. 책 읽기가 생활화된 분들은 이 말에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봄가을에 독서가 어려운 이유는 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화단과 텃밭을 가꾸고 나무를 손질하고 잔디를 깎아 주어야 한다. 전원생활의 외부 활동은 대부분 이 계절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반면에 화염과 동장군의 기세가 등등한 계절에는 가을보다 방안에 틀어 박혀 책 읽기가 낫다.

독서를 하려면 욕구가 있어야 한다. 결심만으로는 부족하다. 특별히 관심 있는 영역을 깊게 파든지, 무지함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끼든지, 아니면 인생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고 싶든지. 곤지암에 살기 시작하면서 2층 거실이 독서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케아 안락의자에 앉아 창문을 열어 놓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독서를 즐겼다. 처한 상황에 맞는 책을 골라 읽으면 독서의 집중력이 높아진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고들기 위하여 읽은 생물학 분야 책들 속에서 전원생활에 유익한 책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몇 권의 책을 소개해 본다.


곤충의 통찰력, 길버트 월드바우어

인류와 상호작용하면서 진화한 20종 곤충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모기, 집파리, 초파리, 진딧물, 배추흰나비부터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포도나무뿌리진디 등 곤충 삶의 비밀을 파헤쳐 준다. 5도 2촌의 생활을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각종 곤충과, 징그럽다고 생각되는 작은 동물들과 마주치게 된다. 텃밭을 가꾸게 되면 채소 잎을 먹고사는 다양한 애벌레 들과 진딧물, 정원의 풀을 뽑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지렁이, 집안을 파고드는 거미와 같은 각종 절지동물들과 조우하게 된다. 이런 동물들에게 심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다면 전원생활은 심각한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저자는 ‘우리 인간은 흔히 스스로를 자연의 주인이자 정복자라고 여기지만,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기 훨씬 이전부터 곤충들은 세상을 통제하고 장악해 왔다. 그들은 인간이 그들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으려 할 때마다 집요하고 능란하게 저지해 왔다. 지금도 그런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인간이 곤충을 상대로 어떤 중요한 우위를 점했다고 우쭐대기는 힘든 처지다’라고 말한다. 곤충 중에서 인간 활동에 간섭하는 종을 해충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인간이 해충을 상대로 사용하는 무기는 살충제다. 그러나 곧 해충들은 살충제에 대한 내성을 키우고 인간과의 생존경쟁을 원점으로 되돌렸다. 저자는 곤충의 농업에서의 필수적인 역할을 강조하며 곤충과 인간이 공존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타고난 혹은 학습된 곤충에 대한 두려움 내지 징그러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막연한 두려움에 앞서 이들이 어떤 진화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되면 무서움도 덜 해 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꽃을 읽다, 스티븐 부크먼

정원에 꽃을 가꾸려면 먼저 기초적인 꽃의 원예학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 꽃의 종류, 심는 방법, 개화 시기, 음지 식물과 양지 식물의 구분에 대하여 일정 수준 알아야 한다. ‘정원 가꾸기’와 같은 책들이 유용하기 쓰인다. 이 책은 꽃에 대한 종합 서적이다. 꽃의 생물학, 경제학, 사회학, 문학, 예술을 총 망라하여 종합적으로 조망한다. 우선 꽃의 식물학적인 분석, 즉 꽃의 생물학적 구조를 바탕으로 그들의 생식 방법과 기원, 진화과정을 훑어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어 야생의 꽃들이 어떻게 재배되면서 우리의 정원으로, 화원으로 들어와 판매까지 되었는지 살펴본다. 그 후 식품과 향수로의 역할은 물론 문학과 미술, 신화 등을 비롯한 인류의 문화사에서 꽃이 어떤 영감을 주었고 어떻게 활용되어 왔는지를 찬찬히 훑어본다. 출판사는 ‘그동안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꽃의 은밀한 역사를 추적하며 독자들에게 향기로운 지적 즐거움을 선사한다’고 적었다. 향기로움에 더하여 관점의 전환을 경험해 볼 수도 있다. 봄에 정성스럽게 가꾼 화단에서 꽃이 피면 이 책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인간이 꽃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저자는 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우리를 지배한다고 믿고 있다. 과연 누가 누구를 지배해 온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가 꽃을 보살핌으로써 그들이 우리를 살아가게 해 주고, 먹거리를 제공하고,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한다는 것은 인정해야 하며 두 개체는 동반자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꽃과 사람은 생존하기 위해 서로에게 필요하며 또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 독자는 동의하는지 직접 심은 꽃을 보며 생각해 보자. 


 씨앗의 승리, 소어 핸슨
 
저자는 다르지만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각도가 ‘꽃을 읽다’의 저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인간의 관점이 아닌 대상의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본다. 반대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내리는 결론은 우리가 배워온 상식과는 어긋난다. 한 번 이 주장을 읽고 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다른 저자의 책에서 동일한 관점과 주장을 읽고 나면 독자의 생각도 서서히 저자들의 생각과 동화되기 시작한다. 독서의 힘이 발휘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꽃을 읽다’라는 책을 읽고 나서 ‘씨앗의 승리’라는 책을 읽고 난 느낌이다.
 2000년 동안 휴면상태에 있다 발아한 대추야자 씨앗 므두셀라, 2차 세계대전 소련 침공 때 레닌그라드의 씨앗 은행을 침탈하려 했던 나치,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독인 리신이 들어 있는 아주까리 씨앗을 이용한 살인 등 씨앗과 관련한 최신 연구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또한 인간의 식단에서부터 입는 옷까지 인류에게 그야말로 생명의 양식이자 생존의 재료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씨앗이 인류 진화와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서술한다. 그리고 핵심적인 질문이 독자들에게 던져진다. 씨앗은 어떻게 식물 왕국을 정복하고 인류 역사를 뒤바꿔왔을까? 그 대답이 이 책의 기본 뼈대를 이루며, 씨앗이 자연계에서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토록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 이유까지도 밝혀 준다. 저자는 말한다. 인간에게 달콤하고 풍부한 맛을 주는 과일과 씨앗은 기나긴 진화의 과정에서 나온 식물의 생존 전략일 뿐이라고. ‘달콤한 과일을 먹고 풍부한 맛의 씨앗을 먹는 인간은 식물의 확산을 돕는 충실한 종일뿐이다’라는 저자의 주장은 꽃이 일정 부분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고 한 소어 핸슨의 주장과 일맥 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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