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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경심전 Feb 04. 2023

커피를 길들이다

비주류
 
어린 시절 시골 잔치에 막걸리는 필수적인 주류였다. 양조장에 주문을 하면 경운기로 하얀 통에 담에 배달을 해 주었다. 호기심에 배달된 막걸리를 어른들 몰래 홀짝홀짝 들여 마셔보곤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지곤 했다. 그 당시에는 아직 어려서 그런 줄 알았고 어른이 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고등학교 선배들이 환영식을 열어 주었다. 그 당시 전통대로 소주를 맥주잔에 한가득 따라서 단숨에 마셔야 했다. 그 이후 벌어진 일은 내가 술을 대하는 태도를 확실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30분이 지난 후 나는 토하기 시작했고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선배들에 업혀서 하숙집에 돌아와서 나는 밤새 토를 했고, 3일 동안 학교를 가지 못했다. 이후 선배들에게 나에게 술을 주는 행위는 금기가 되었다. 입사 후에도 나는 술에 대한 태도를 확실하게 선언했다. 체질 상 소주 한잔도 하지 못한다고 말이다. 그날 이후 나는 30년 동안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5년 동안의 프랑스 주재원 생활 시절에도 와인을 전혀 마시지 못했다는 점은 일정 부분 아쉬움으로 남긴 했지만 술에 대한 미련은 없다.
 
 음료의 필요성

 곤지암에서 용인으로 이사해서 흐느적거리는 재즈 사운드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느긋하게 오후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불현듯이 내가 재즈 바에 있다는 착각이 들면서 무언가 빠져 있는 허전함이 느껴졌다. 그렇다. 바를 가득 메우고 있는 뿌연 담배 연기와 술이었다. 무언가 술을 대신할 수 있는 나만의 기호음료를 개발해야만 할 필요성을 느낀 순간이었다. 맹숭맹숭하게 음악을 듣기보다는 같이할 수 있는 음료가 있으면 귀와 입이 서로를 보완하면서 상승효과를 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나는 커피도 잘 마시지 않았는데, 커피의 쓴 맛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차 종류도 없었다. 억지로라도 나를 음료에 적응시키기로 하고 그 대상은 커피로 정했다. 주류 음료 중 하나이고 마시는 즐거움 외에 다른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곁을 쉽사리 내주지 않은 커피
 
우선 아내를 설득해서 각종 커피 용품을 샀다. 커피 그라인더, 포트, 서버, 드리퍼, 필터. 그리고 각종 커피 서적을 구입하여 관련 지식을 습득했다. 커피의 종류,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 드립 커피는 만드는 방법, 각종 커피 용품의 종류 및 사용 방법, 서울의 유명 카페 등등 
  준비가 끝나고 다양한 원두를 사서 맛의 차이를 구별해 가면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 종을 찾아보았다. 초기에는 솔직히 맛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예가체프 정도만 무언가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약간 맛이 다르다고 느꼈다. 심지어 세계 3대 커피라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과 예멘 모카도 마셔봤지만 내 투박한 혀는 그 명성을 확인해 주지 않았다. 커피는 쉽사리 나에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마실 때마다 쓴 맛으로 단 맛을 선호하는 내 기호를 상기시키며 괴롭혔다. 맛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초보라며 놀리고 구박을 하는 듯했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시간을 가져 보기로 했다. 책을 보면서 커피를 가는 굵기, 적정 물 온도 지키기, 적정 커피 분량 사용하기, 정수 물 사용, 커피 필터 사전 린싱, 드립 할 때 떨어트리는 물의 각도 등 기본기를 다시 다졌다. 이 모든 요소가 적정하게 배합되어 커피가 추출되었던 어느 날, 맛을 구분해 낼 수 있는 미각도 같이 추출되었다. 밸런스, 바디감, 신맛, 쓴맛, 단맛이라는 커피 맛의 5대 요소가 서로 뭉쳐 있어 구분이 안되다가 서서히 각각을 구분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우연히 회사의 직원들에게 맛을 구분할 수 있는 미각 연마에 도움을 받았다.


회사 직원들의 도움
 
어느 날 인도네시아에 근무하는 직원이 한국에 출장 오면서 만델링 커피 한 봉지를 사다 주었다. 해외 파견 전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 친분이 남 달랐던 후배가 내가 커피를 즐긴다는 소문을 듣고 사 왔다고 했다. 500g이 담긴 이 커피를 용인으로 가지고 가서 주말마다 이 커피만 집중적으로 마셔봤다. 바디감이란 무엇인지 이 기회를 통하여 확실하게 혀에게 주입해 두고자 함이었다. 만델링만 한 달을 마시고 나자 감이 왔다. ‘바디감이란 입안의 밀도감, 중량감을 의미하며, 밀도감과 중량감을 모두 갖춘 커피가 바디감이 좋다고 한다’라는 커피 서적의 안내를 혀와 뇌가 느끼고 이해했다. 케냐 AA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맛을 알아 갔다. 케냐에 근무하는 직원이 출장 오면서 500g 한 봉지를 사다 주었다. 

새로운 부서에 옮기고 나서 새로운 업무에 적응했을 무렵 옆 부서에서 아침마다 커피를 갈아서 드립 커피를 즐기는 여직원이 눈에 들어왔다. 커피를 조금 알아 가던 초보자 시절이었다. 쉬는 시간에 커피를 주제를 수다를 떠는 과정에서 이 직원이 즐겨 마시는 커피가 예가체프 임을 알았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커피가 예가체프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커피의 특징으로는 부드러우면서 짙은 꽃 향기, 강하지 않는 바디감, 달콤한 신맛을 들 수 있다. 이 직원이 커피를 즐기는 유용한 팁 중 하나를 알려주었다. 마시기 전 와인처럼 먼저 냄새를 맡아보면 풍부한 커피의 향기를 완전하게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이 꿀팁은 이후에 버릇처럼 굳어졌다.

 
 인도네시아 만델링의 높은 바디감, 베트남 로부스타 종의 쓴맛, 에티오피아 예가체프의 신맛을 자주 마셔보니 구분이 되기 시작했고, 커피 마시는 재미가 배가되었다. 커피를 즐기면서 좋아하게 된 커피는 밸런스가 뛰어나고 바디감이 무거운 편에 속하는 드립 커피다. 쓴맛이나 신맛 또는 단맛이 지배하는 커피 종은 선호하지 않는다. 맛있는 커피라는 표현은 진부해 보인다. 적정한 표현은 고유의 맛과 풍미를 제대로 살려 내린 커피라고 생각한다. 이제 커피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시는 동반자가 되었다. 중독이 되었는지 커피를 거르는 날이면 머리가 아프다. 핑계 삼아 어느 상황에 있던지 커피는 꼭 챙겨 마신다. 음악을 즐길 때 동반자적인 음료를 개발해 냈다. 노력과 공부와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취미 개발과 하등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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