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미는 오디오다. 광적이다. 그래서 ‘오디오 마니아’로 불린다. 서울에는 20년이 넘는 공력을 바탕으로 오디오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거대하고 복잡하다. 스피커의 높이가 1m 50Cm 정도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열 개의 전원 스위치를 올려야 한다. 더군다나 순서를 지켜서 전원을 넣어야 한다. CD 플레이어는 처음에 키고 파워앰프는 나중에 켜야 한다. 아내는 전원을 넣는 순서를 번호표로 만들어 기계에 붙여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 주었지만 아내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내와는 단절된 나만의 시스템이었다.
아내의 변화
연곡리 집 전세 계약을 하고 나서 아내와 나는 각자의 길을 가지로 결정했다. 아내는 전자제품 할인매장으로 갔다. 스피커, CD, 라디오, iPod연결, USB 연결이 한 몸체에 통합된 오디오를 샀다. 전원은 한 번만 켜면 됐다. 나는 인터넷 오디오 중고 시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적당한 크기의 스피커, 진공관 앰프, CD 플레이어를 샀다. 전원은 두 번만 켜면 됐다. 서울에 있는 오디오 시스템은 보살핌의 대상이었다. 곤지암에서 오디오는 주인을 위해 머슴처럼 일해야 했다. 서울에서 음악은 주인공이었지만 곤지암에서는 배경이 되어야 했다. 오디오를 단순하게 구성한 이유다. 쉽고 부담 없이 사용하고자 했다.
아내가 극적으로 변했다. 자기 소유의 심플한 오디오를 소유하고 나서다. 인터넷으로 CD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산 음반에 대해 상세한 설명까지 해 주었다. 이루마의 CD는 아내가 골랐고 우리의 애청 음반이 되었다. 또한 일어나자마자 오디오에 전원을 넣는다. 서울에서 음악을 들을 때 ‘시끄러우니 볼륨 좀 줄이라’는 말을 자주 하던 아내였다.
음악을 듣는 환경적인 측면에서 도시는 전원을 따라오지 못한다. 그동안 나는 오디오 취미 생활의 세 가지 요소가 오디오 기기, 음반, 오디오 룸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곤지암에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더 중요한 요소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중 하나는 아내와 교감을 나누면서 음악을 들으면 즐거움이 배가 된다는 점이다. 함께 커피를 마시고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음악을 자주 듣는 기쁨을 알아 가고 있다. 아내는 남편이 만들어 내는 소음에서 해방되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여유롭게 즐긴다. 얼굴에 마음의 평화가 투영되어 있다. 아내를 바라보는 내 마음 또한 덩달아 편안 해진다.
생활의 배경
음악은 집중해서 듣지 않았다. 바람처럼 항상 우리 주변을 흘러 다니게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주 파가니니(Nicolo Paganini)의 기타 쿼텟으로 시작하곤 했다. 바이올린과 기타의 선명하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선율이 흐른다. 몽롱한 뇌를 깨워 준다. 아침을 먹을 때는 이루마의 잔잔한 피아노 연주와 함께 했다. 편안한 리듬에 맞추어 느긋하게 아침을 먹는다. 마당에서 일하면서 듣는 음악은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귀에 익은 음반을 골랐다. 캐럴 키드(Carol Kidd), 노라 존즈(Norah Jones), 웅산을 즐겨 틀었다.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면 노동요가 필요 없다. 어둠이 내려오면 재즈가 적격이다. 어두컴컴한 클럽 안, 피아노 재즈 트리오의 연주를 듣다 보면 졸음이 몰려온다.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듣다
음악을 방 안에서 해방시켜 집 밖으로 내보냈다. 날씨가 좋을 때는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데크에 앉아서 듣곤 했다. 비발디의 사계가 흐른다. 비발디는 사계 악보를 출판할 때 각 계절마다 이름 모를 시인의 14 행시로 이루어진 소네트를 붙였다. 또한 자신이 악보 군데군데에 해설을 넣었다. 1악장에는 다음과 같이 써넣었다.
‘봄이 왔다. 새들은 즐거운 노래로 인사를 한다. 그때 시냇물은 살랑거리는 미풍에 상냥하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흘러가기 시작한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천둥과 번개가 봄을 알린다. 폭풍우가 가라앉은 뒤, 새들은 다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봄’을 알리는 1악장에서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경쾌한 합주가 울려 퍼진다. 세 대의 바이올린으로 묘사되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이어진다. 음악 평론가가 얘기해 주지 않아도 봄의 상쾌함과 활기가 느껴진다. 이 음악을 방 안에서 들으며 상상만 했던 봄의 제전이 실제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와 산들바람에 나뭇잎들은 서로 부대끼는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삽입된다. 뻐꾸기, 까치, 딱따구리 등 각종 새들이 번갈아 가며, 때로는 합창으로 콘서트에 참여한다. 기계음과 자연음이 서로 어우러진 연주다. 우리 집은 우리 부부를 위한 거대한 자연의 콘서트 홀이 된다. 이러한 음악과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몸의 긴장이 완화된다. 신체 내부 체계에 활력이 살아난다. 마음은 자유롭고 평화롭다. 도시 생활로 인한 몸과 마음의 불균형을 회복시켜 주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믿고 있다. 그 어떤 보약보다도 우리 부부의 몸과 정신을 조화롭게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