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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북스 Apr 25. 2024

고구려 왕 중에서가장 불쌍한 왕의 정체

재위 30년간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고구려 제15대 왕인 미천왕.     


하지만 전쟁의 나라라 불리는 고구려의 태왕임에도 전쟁을 증오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미천왕의 아들인 고국원왕이다.


고국원왕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고구려 환도성으로 진군해 온

연나라의 사만여 대군에게 홀몸으로 가서 항복을 청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항복을 청합니다.”


고국원왕을 앞세운 연나라 군사는 싸움 한 번 없이

환도성의 장졸을 모조리 포박하여 무릎 꿇렸다.     

연나라 모용황은 궐의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사유를 꿇어앉힌 채로 물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하였느냐?”     


모용황은 제 아비를 빼앗고, 제 몸을 불태우고,

제 형제들을 죽인 고구려의 주태후를 가리켰다.     


“내어주겠느냐?”     


믿을 수 없을 만큼 간단하게 사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끌려온 주태후의 모습을 보자 모용황은 직접 칼을 들어 휘둘렀다.     

지켜보던 이들의 비명이 궐을 울리는데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는

그녀의 목 바로 한 치 앞에서 모용황은 칼을 멈추었다.


“간단히 죽이지 않으리라.

이 원한은 평생을 두고 갚으리라.”


두 번째 요구는 왕후를 향했다.

고국원왕은 그녀에 대해서도 전혀 배려가 없었고

왕후 또한 아무런 저항 없이 끌려와 모용황의 앞에 꿇려졌다.     

모용황은 길고 공허한 웃음을 터뜨렸다.     


“우습다. 참으로 우습다!”     


더없이 낮은 자세를 유지하며 굴종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가해자인 모용황의 눈으로 보아도 갑갑하고 역한 모습이었다.     


“네놈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원하는 것이 무어냐?

간도, 쓸개도, 염통까지 내어놓으면서 네놈은 무엇을 바라느냔 말이다.


을불이라는 자의 묘를 파헤쳐라.

그자가 잊히면 고구려는 참으로 아무것도 남지 않으리라.”     


모용황은 마지막으로 이런 패악을 남겼다.

미천원의 묘가 파헤쳐지고 을불의 유해가 나타나자 모용황은 침을 뱉으며 욕을 보였다.


고국원왕은 아무 말이 없었다.

잡혀가는 태후와 왕후에게도, 파헤쳐진 제 아비의 유해에도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등을 돌리고 서 있기만 했다.


연나라 모용황에게 잡혀갔던 주태후는

오랜 세월 연나라에서 인질의 고초를 겪다 돌아왔다.     


그녀는 18년 만에 아들 고국원왕을 불렀다.     

주태후는 잘 움직이지 않는 손을 들어 어렵게 고국원왕의 뺨을 때렸다.     


“너는 천하의 불효 자식이다. 못난 형이고, 부끄러운 지아비다.

네 동생 무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고통을 겪으며

아버지의 유해를 돌려받았다.”


주태후는 말을 끝내자 곧 격한 기침을 했고 옷자락이 토혈로 붉게 물들였다.

그녀는 부축을 받아 자리에 누웠다. 


“불쌍한 것.” 


주태후의 손이 고국원왕의 뺨을 매만졌다.     


“그 많은 죄, 그 많은 원성을 한 몸에 어찌 담았을까.

후세에 이르러서도 사람들은 너를 불효자로, 우군으로 손가락질할 것이다.

이 어미조차도 평생을 그러했으니.”     


평생 얼음 같기만 했던 주태후의 얼굴은 이제 너무도 평온히 가라앉아 있었다.     


“이 어미의 시대에는 많은 나라가 피고 졌다.

모두가 한철 붉은 꽃에 불과하더구나.     

모든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내가 너로 하여금 위로를 받았음을

늦게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와 네 아비가 꺼트린 그 많은 목숨을 네가 갚았으니...”     


주태후는 이내 눈을 감았다.

생애 마지막 목소리가 그녀의 굳어가는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너는 고맙고 자랑스러운 자식이다.”


이후 고국원왕 41년 10월.     

백제왕 부여구가 직접 진두지휘하여 3만여 군사가 고구려에 쳐들어오고,

고국원왕은 이 전쟁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한편, 회군길에 오른 부여구는 신료들에게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백제의 옛 백성이든 고구려 백성이든 다 모아들여라.

모두 강성해진 백제로 가고 싶어 할 것이니라.”     


부여구는 직접 고구려에 와 살고 있는 백제인들의 마을을 방문했는데

백성들이 자신의 수레를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죽어라! 이놈들아!”     


백성들의 외침을 듣는 부여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들이 과연 백제에서 온 자들이 맞느냐!

왜 나에게 돌팔매질을 한단 말이냐! 자랑스러운 자신들의 왕에게!”     


“저들은 지난 수십 년간 전장에 끌려간 백성이 단 한 명도 없었다며,

오직 고국원왕만이 자신들의 왕이라 외치고 있나이다.”     


부여구는 말을 잃은 채 백성들의 돌팔매질을 지켜보았다.     


백성을 한없이 사랑했던 군주 고국원왕,

하지만 신료들에게 외면받고 어머니와 한 번도 속 깊은 정을 나누지 못했으며

아내와 살가운 교감을 해보지 못한 지아비.


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그 누구보다도 초라하고 외로운 왕이었던

고국원왕의 일대기가 궁금하다면 <고구려 5>를 읽어보길 바란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역사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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