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난 후의 느낌은 빌리 엘리엇보다는 보이후드에 가까웠다.
그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낸 방법이 예술이었을 뿐이지
가지고 태어난 것과 갖고 싶은 것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인생이란 사실 모두와 크게 다르지 않은.
청소년기부터 쫓아간 인물들의 서사가 중년에 이르는 결말에 다다르고 보니
연민과 동경을 동시에 느끼며 나의 삶도 되돌아보게 되는 먹먹함이 있었다.
'예술'이라는 단어조차 그사세처럼 느껴졌던 어린 시절을 지나와
지금도 '예술가'라는 표현보다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것이 편하다.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그림을 그릴 뿐 그것에 대해서 세상이 무어라 이름 붙이든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그런 마음이었기 때문에 1퍼센트가 되지 못하였을까 하는
그 누구도 검증해 줄 수 없는 분석도 종종 맴돈다.
비교하자면 끝이 없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과거의 내가 열심히 살았기에
그래도 이런 모습으로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삶에 도착하였으나
여전히 정착이기보단 부유하고 있다고 느낀다.
애매함.
잘한다고 하기엔 언저리고 못한다고 하기엔 너무 오래 하고 있다.
이쯤 되고 보니 그럭저럭 이어도 다행처럼 느껴지는 근근한 삶 속에 그래도 내가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마 좋아하는 마음이었구나 한다.
재능보다 훨씬 큰 마음이 나에겐 고통이기보단 축복이었다.
좋으니까 어떻게든 하고 싶어서 계속 방법을 찾았다.
힘들어도 하게 된다. 책임을 진다.
좋아하니까. 헤어지지 못했고 그만하지 않았다.
세상이 뭐래도 내 눈에 가장 예쁘고 가장 아름다운 보물을 잃어버릴 수 없으니까.
그리고 또 나를 여기 있게 한 뻔한 결론에 도달했다.
울지 말고 그림이나 그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