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벌어진 모녀의 눈물쇼

by 따오기

다니는 학교가 5일간 재량방학이었다. 남편은 나랑 놀아 줄 시간 빼기가 애매하여, 혼자 무얼 하고 놀까 궁리하다 이도저도 쉽지 않아 그냥 집에 있기로 했다. 그래도 뭔가 서운해 고향에 있는 친구에게 상황이야기를 하며 ‘너 보러 갈까’ 한다고 했더니, 양평은 아무 때나 올 수 있으니, 시간 날 때 혼자라도 여행을 떠나라고 부추긴다. 시간 내기 쉽지 않을 텐데 이런 기회 놓치면 아깝다며 나보다 더 안타까워했다.


사실 학교는 학기별로 재량방학이 있어 맘만 먹으면 떠날 수는 있는데 이제껏 쉬이 떠나지 못하며 살고 있다. 친구랑 통화한 후, 뭔 마음에서였는지 긴박하게 손가락 검색을 했다. 여행상품을 검색하다 보니 혼자 해외여행하려면 싱글차지도 물어야 하고, 도무지 혼자 여행할 자신까지는 없어 '혹시나'하는 맘에 작은 딸에게 전화를 했다. 웬일로 깐깐한 딸아이가 넙죽 가겠다고 한다. 단, 너도 여행 경비 일부 내야 한다 했더니 얼마까진 낼 수 있다니 더욱 반가웠다. 돈에 무지 치사한 엄마라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결국 월요일 검색하고, 화요일 출발 가능하다는 확답에 결제를 하고, 수요일 환전 하고, 목요일 밤 홍콩으로 향했다.


완전 밤 도깨비 같이 여행을 계획하고 출발하기까지 총 4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홍콩의 백만 불짜리 야경은 역시 감탄사가 연신 나왔고 빅토리아 공원으로 가는 트램은 신기했고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홍콩섬 주변의 빌딩 숲은 장관이었고 음식도 나쁘지 않았다. 단. 쇼핑은 눈요기만 하다 보니 화려한 쇼핑센터들이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게다가 굳이 홍콩까지 가서 구입할 일 없는 소시민이다.


참, 홍콩의 야경을 보던 날. 여행 내내 엄마의 사진 솜씨가 불만족스러운지 딸애가 자꾸 까탈을 부려 심기가 편치 않았다. 자기가 원하는 그림이 영 안 나오는지 ‘이렇게 찍어라 저렇게 찍어라’ 주문을 하는데, 손에 익지 않은 딸애 핸드폰이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특히 여자들은 얼굴도 얼굴이지만 몸매가 날씬하게 나와야 잘 찍은 사진이라는 착각을 하는지 딸애는 자기 몸은 생각 안 하고 뚱뚱하게 찍는다고 핀잔을 줬다. ‘뚱뚱한 걸 나보고 어쩌라고’ 딸애 잔소리와 사진 때문에 스트레스를 연거푸 받다 보니 나중엔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사진이 잘 찍힐 리가 있겠는가. 게다가 한두 번 패키지 약속 장소를 착각해 다른 곳을 갔더니 ‘엄마는 그쪽으로 가지 말라는 데 그쪽으로 간다’고 또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닌가? 원래 모이기로 한 장소와 내가 착각한 장소가 채 5분도 걸리지 않아, 가보고 아니면 다시 돌아오면 되는 것을 딸애는 조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원래 예민한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로 까다로운 줄 집에선 미처 몰랐다. 연거푸 딸의 지적질에 서운하고 긴장하고 민망하던 나머지 홍콩의 백만 불짜리 야경을 보는데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게 아닌가? 아, 주착 맞은 모습이라니.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 좋은 풍경 앞에서 눈물이 나온단 말인가? 비단 딸과의 트러블뿐 아니라 멋진 야경을 보는데 함께 오지 못한 남편과 큰 애 생각이 났다. 다 같이 왔으면 좋았을 걸, 우리 둘만 보는 게 미안해져 왔다. 원수니 악수니 해도 그래도 나에겐 남편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감정이 얽혀 있는 내 눈물이 도무지 멈추질 않았다.


‘아, 어쩐담?’ 멈추고 싶은데 눈물도 내 맘대로 제어가 안되는구나. 그렇게 혼자 울고 있는데 금방 온다던 엄마가 안 오니까 나를 찾아 나선 딸애가 울고 있는 나를 보고 황당해한다. “엄마 우는 거야? 엄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엄마 울지 마”라며 엄마를 달래며 딸애도 함께 눈물을 흘린다. 아! 여행 와서 쌍으로 우는 모녀의 풍경이라니? 동행하던 관광객은 잘 다니던 모녀가 눈물쇼를 하고 있으니 뭔 일인가 으아 해 했다. 정말 내가 생각해도 민망해 그만 울고 싶은데, 몇십 년 만에 나온 눈물보가 그치질 않았다. 그날 나는 남편한테 받는 설움과 비교도 안 되는 설움이 자식한테 받는 설움이란 걸 난생처음 알았다. 그래서 딸한테 받은 설움에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순간순간 자기 생각 많이 했어.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날 젤 위해주는 사람은 당신인데... 담엔 같이 오자>고......


그날 밤, 속 이야기를 안 한 채 그냥 집에 올까? 나의 마음을 이야기할까 고민하다가 호텔방에서 맥주를 마시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했다. ‘엄마도 늘 젊지 않아. 엄마도 실수할 수 있어. 약속 장소를 잘못 이해할 수도 있고. 가다가 아니면 돌아오면 되는데 뭘 그리 까탈을 부려. 그리고 사진이란 게 맘대로 안 되는 걸 어떡하니? 이제 카메라만 들면 손이 덜덜 떨리는데. 그리고 ’ 엄마도 미안해. 네가 이젠 성인이란 걸, 엄마 보다 외국 지리도 더 잘 알고 똑똑하단 걸 여기 와서 알았어. 늘 너를 어린 딸로만 봐서 미안해. 이제 엄마도 늙나 보다 ‘라며 누가 딸인지 엄마인지 모르게 신세타령을 했다.


딸애는 엄마의 속 얘기에 어느 부분 놀라기도 하고, 늘 씩씩한 줄 알았던 엄마의 약한 모습을 보고 황당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미안하다고. 엄마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고 그렇다고 그렇게 오래 울면 자기가 어떡하냐고 나름 자기 입장을 설명했다. 그러더니 ‘엄마 우리 여행 와서 할 거 다 해 본다’라며 웃어 주었다. 그렇게 우린 홍콩 야경을 보며 남들 못 보는 눈물쇼도 보았다. 여행 동안 울고 싸우고 화해하며 드라마틱한 홍콩에서의 2박 4일을 한 여름밤의 꿈처럼 보냈다. 집에서 미처 못 본 엄마와 딸의 모습을 남의 나라까지 가서 보는 소중한 시간을 갖고 돌아왔다.(학교도서관에 근무할 시절에 쓴 글 / 2018.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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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