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처음으로 나의 책상이 생겼다.
아니 ‘내 책상’이라는 이름으로 책상을 갖게 된 게 생전 처음 있는 일이다.
어려서는 주로 방바닥이나 밥상을 놓고 숙제를 하고
조금 커서는 언니 오빠들이 쓰던 앉은뱅이 나무 책상을 썼던 기억이 있고
고등학교 때는 어디서 생겼는지 모를 철제 책상을 사용했다.
스무 살 넘어서는 아래는 서랍장 위는 책장, 그 중간에 상판을 넣었다 뺏다 하는
책장 책상 일체형을 잠시 쓴 적이 있다.
그것도 바로 위 언니가 쓰던 책상이었다.
몇 년 전엔 TV 밑에 두는 장식장 대신 좌식 탁자 위에 컴퓨터를 두 대 나란히 놓고
쓰긴 했지만 책상 용도는 아니었다.
두 아이 키우면서 아이들 책상은 두어 번 바꿔줬지만 그때도 나의 책상은 없었다.
작년 늦은 나이에 대학원 입학을 하고 책상이 필요해 남편이 diy가구 만들 때,
첫 작품으로 만든 티 테이블을 이제껏 내 책상 삼아 사용했다.
원래 용도가 찻상이라 크기가 작아 가끔 책이 떨어지기도 하고 영 성에 안 찼다.
늘 널찍한 책상 하나 놓고 싶었는데 집이 크지 않으니 내 책상을 들인다는 게 쉽지 않았다.
가끔 지나가는 말로 가구를 제작하는 남편에게 책상 하나 짜 달라고 했는데
놓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 그런지, 딴생각으로 가득 찬 남자라 그런지 귀담아듣지를 않았다.
며칠 전 어느 쇼핑 사이트에서 책상이 35,000원이라는 광고가 뜨길래 ‘뭐가 이렇게 싸?’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견고하고 디자인도 심플한 게 안방에 놓고 써도 괜찮다 싶었다. 게다가 가격이 너무 싸서 1년만 써도 괜찮겠다 싶어 사이즈를 재보고 대충 꾸겨 넣을 요량으로 대책 없이 덜컥 주문을 했다.
사실 사용하지도 않는 데스크톱을 올려놓은 좌탁을 치우고 싶은데 그이가 선뜻 동의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핑계 김에 남편에게 ‘책상 샀다’고 선포를 했다. 남편 반응은 ‘그걸 어디에 두려고?’하며 놀라길래 쇼핑몰 사이트를 보여주니 ‘싸긴 정말 싸네, 이러니 누가 만드는 비싼 가구를 사겠어’ 한다.
암튼 통보는 했고, 배달되기를 기다리는데 오늘 드디어 책상이 왔다.
조립식이라 도착하면 남편에게 조립해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큰 딸이 먼저 받아서는 낑낑대고 조립을 해 놓았다고 설치 후 사진을 보내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설명서를 보며 해 버렸단다.
맥가이버 아빠는 어디에 쓰려고, 나 같으면 남편만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그래도 직접 해 보려는 그 마음이 고맙고, 너무 멋지게 조립해 놓아 연거푸 칭찬을 했다.
조금 전 수업이 있는 날이라 학교에 다녀와 제대로 자리를 잡고, 늦은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았다.
가만히 앉아 '내 책상이 있었던 적이 있었나'하고 돌이켜보니, 단 한 번도 내 소유의 책상이 없었다는 점에 놀랐다.
일터가 도서실이라 언제나 젤 넓은 책상이 내 차지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쩜 그래서 내 책상을 강하게 갈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게다가 다시 공부하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시험 기간엔 동네 도서관을 찾았고 가끔 티 테이블에서 그런대로 해결했다.
그런데 막상 내 책상이 생기니 마냥 좋다.
오십이 넘어 장만한 내 책상, 채 5만 원도 안 되는 내 책상.
‘내 책상’이 주는 뿌듯함이 이렇게 클 줄 미처 몰랐다.
이제 널찍한 내 책상에서 남은 나의 인생 2막을 멋지게 설계해야겠다.
당장 제출해야 할 과제도 하고, 서평도 쓰고
오랫동안 뜸했던 블로그에 업데이트도 해 보리라.
어쩜, 이건 지금 당장하고 있는 건지도...
며칠 전 스승의 날에 사서선생님이라는 이유로 '책 상'이라는 상장과 카네이션을 받았는데
올해는 정말 내게 두 개의 책상이 선물로 다가왔다.
진짜 책상과 책 빌려 주는 샘에게 주는 상인 ‘책상(冊賞)’!
이곳에서 진짜 책을 한 권 써 봐야겠다.
오늘 이 마음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내 기분을 자판으로 두드리고 있다.
새로 산 책상 덕분에 황홀하고 뿌듯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2019.5.23. 새벽 1시 30분 즈음에(예전 블로그 글 중 맘에 드는 글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