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만두

혼자만 먹던 남자를 뭐가 좋다고~

by 따오기


"계십니까?"

"안에 아무도 안 계십니까?"


모두 잠들려 하는 토요일 저녁 주홍색 나무 대문이 열리면서 웬 인기척이 들린다.

잠귀가 유난히 밝은 큰오빠가 누가 왔나 하고 파자마 차림으로 문 밖을 내다본다.


"전, 일병 전 길동!

‘그 여자’를 찾아왔습니다.

늦은 밤에 실례인 줄 압니다만, 여기 '그 여자'가 살고 있는 집 맞습니까?"


(어~~)

(누구지?)

(설마?)


큰 오빠가 야릇한 얼굴을 하고 현관문을 연다.

그리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무거운 얼굴로 내 방문을 열더니

"나가봐~~"라고만 하신다.

이 방 저 방,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난 것 마냥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하나 둘 고개를 내밀고.

그 여자는 혼잣말을 하며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정말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차마 어떻게 왔느냐는 공개적인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빨개진 얼굴로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하는 막막한 기분으로

무거운 오빠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오빠 나, 잠깐만 나갔다 올게".


처음부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 오빠의 얼굴은 무척이나 무거워 보였다.

누구보다 더 긴장되고 기가 막힌 얼굴 표정을 하고 있다.

올케도 마찬가지로 혼잣말을 한다.


(인제에서 온 군인인가 보다, 매일 편지하던, 근데 어떻게 여기까지 이 밤에 왔냐?)


그날 그 집 큰 오빠는 하도 기가 막혀 잠도 못 들었을 거고

겸연쩍게 집을 나간 그 여자는 집 근처를 배회했다.


너무도 오랜만에 군복을 입고 나타난 그 남자를 차마 정면으로 바라보지도 못한 채

그리고 아무 말도 꺼내지도 못한 채

어디를 가야 하는지 방향 감각도 없이 걸었다.

걸으면서 나눈 이야기라곤

"어떻게 여길 찾아왔어?"

"응~주소 들고 찾아왔지"

"주소만 갖고 찾아오기 쉽지 않잖아"

"오다가 예비군 중대에도 들려보고, 저 아래 부동산에도 들렸어

그랬더니 세 번째 골목 모퉁이 주홍색 대문집이라고 일러 주던데……."

"그랬구나, 편지에 온단 말도 없었잖아?"

"응~ 갑자기 나오게 됐는데, 널 보고 싶었어."

"그래도 이렇게 사람 놀라게 하는 게 어딨 어?, 우리 큰 오빠한테 뭐라고 하지?"

그런 대화를 나누며 도착한 곳은 집 앞 버스 정류장 앞 분식집이었다.


그래도 배가 고플 것 같다는 짐작으로 저녁은 먹었냐고 물었더니 안 먹었단다.

평소에 집 근처 음식점은 별로 다녀 본 적이 없는 그 여자는

그냥 육교 앞 분식집을 들어갔다.

메뉴판을 보아도 마땅한 끼니가 되는 메뉴는 없고

그저 보이는 거라곤 ‘만두, 찐빵, 라면’뿐이라 그냥 만두를 시켰다.

그때 당시 만두가 천 원에 20개 정도 되었던 기억이다.


가만히 서로의 어색한 모습만 쳐다보면서 만두가 나오길 기다렸다.

아니 시간이 흐르는 걸 그저 바라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결국 만두 1인분은 나오고 그는 허겁지겁 만두를 먹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니 배가 무지 고팠나 보다.

초행길에 그것도 주소하나 달랑 들고 찾아온 제복 입은 군인.

무서운 큰 오빠랑 마주칠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

아마 제복이 주는 자신감 또는 무대뽀 정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 그 남자는 유난히 제복이 어울리는 남자였다.

오똑한 콧날에 크게 쌍꺼풀 진 눈 그리고 적당한 키와 덩치.

카키색 육군모자가 눈부시게 보이던 남자였다.

그런 그가 만두를 먹는 모습은 아주 멋있어 보였다.

최소한 그 여자에게는…….


그렇게 허겁지겁 5분도 안 되는 사이에 그 남자는 만두를 다 먹고,

그걸 마냥 바라보던 여자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기는 하나도 안 먹었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어머 혼자 다 먹어?, 먹어보란 소리도 없네……."

갑자기 겸연쩍은 표정이 된 그 남자는 그제야 자기 혼자만 먹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아님 그만큼 배가 고팠는지...


그렇게 그와의 오랜만의 해후는 그의 만두 먹는 모습만 보곤 마감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늦은 시간에 또 다른 커피숍을 찾아 들어간다는 생각도 못했고

집에서 조바심내고 있을 큰 오빠 모습이 아른거려서 차마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 남자가 주소를 들고 그 여자를 찾아올 정도로 그리움이 절절했다는 것만을 확인했고

서로의 여전한 모습만을 확인했다.


그날 이후 그들은 심심치 않게 그 길을 지나며 그 만두집을 들르곤 했다.

그리고는 만날 때마다

"어쩜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먹어 보란 소리도 없이 혼자 먹을 수가 있어?"

하는 소리를 그 집을 지날 때마다 했고, 그럼 그 남자는 미안해 어쩔 줄 몰라했다.

그 분식집 이름은 다름 아닌 '코끼리만두'집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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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십몇 년 후~

그 여자와 그 남자는 한 지붕아래서 드라마를 보고.

그들이 보고 있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 시장을 돌며 만두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 걸 보던 그 여자


"자기 코끼리만두 생각나?"


"아휴~,이제 그 얘기 좀 그만해라, 창피하게스리..."


"그때, 그 집 만두가 그렇게 맛있었어?"


"그~럼, 그땐 아무 생각도 없었어, 배도 고팠지만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몰랐고

, 너무 긴장했나 봐"


"암튼 내가 그때 자기 인간성을 알아봤었어야 했는데…….

혼자만 만두 먹는 사람을 뭐가 좋다고……."


정말 그 남자의 그날 밤 등장은 그의 인생에 있어 몇 번 안 되는 대단한 사건이었다.

아마 제복이 아니었으면 실행하지 못했을, 그의 일생에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다.

'코끼리만두'와 함께 기억나는 지난 추억의 한 장면으로…….


그나저나 그곳, 그 자리에 지금도 '코끼리만두'집이 있으려나?

갑자기 별 게 다 궁금한 밤이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오래된 메모장에서 옮겨왔다. 200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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