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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잼 Nov 08. 2023

쇼와 레트로와 전후 일본의 양면

<짱구는 못말려 : 어른제국의 역습>과 전후 일본 경제와 사회

어른제국의 역습 편의 주요 장소인 '20세기 박물관'


짱구는 못말려의 9번째 극장판인 '어른제국의 역습'은 21세기의 시작인 2001년에 개봉했다. 영화는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비롯해 전후 쇼와 시대(1945~1989)를 재현한 20세기 박물관에서 시작한다. 전후 쇼와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어른들은 과거의 추억에 빠져 주말만 되면 이곳을 찾는다.


반면 짱구를 비롯한 헤이세이 시대(1989~2019)에 태어난 아이들은 박물관 한쪽의 아이들을 맡겨두는 곳에 있으며, 옛날 것들에 푹 빠진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영화는 20세기와 21세기에 대한 구분임과 동시에 일본에 한정하자면 전후 쇼와 세대와 헤이세이 세대의 갈등을 표현하기도 한다.


20세기 박물관을 만든 켄은 현재의 21세기 정확히는 헤이세이 시대는 희망과 꿈이 없는 시대로 규정하고, 전후 쇼와의 냄새를 이용해 사람들과 세상을 전후 쇼와 시대의 것으로 역행시키려 한다. 어른들은 모두 쇼와 시대 냄새를 맡고 어린애가 되어버렸는데, 짱구를 비롯한 헤이세이의 어린이들이 쇼와의 어린이가 되어버린 어른들을 구하고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현재 일본에서 쇼와라고 하면 1945년 종전 이후 쇼와 덴노가 사망한 1989년까지의 전후 쇼와 시대를 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쇼와라는 말은 낡고 오래된 것이라는 인식과 그리움과 영광이라는 인식이 공존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시사한 쇼와에 대한 그리움은 어떤 것일까. 전후 쇼와 시대는 어떤 시대였고, 이후의 헤이세이 시대는 어떤 시대였던 것일까.



전후 일본 부흥을 이끈 전후 쇼와 시대(昭和, 1945~1989)


사실 쇼와 시대는 근대 일본의 한가운데인 1926년에 시작되었다. 1926년부터 일본이 패전하는 1945년까지는 군부의 독재에 의해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 일본이 굵직한 전쟁을 수행하던 시기였고, 이를 전전 쇼와 시대라 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1945년을 기점으로 쇼와 시대의 흐름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연합국의 간접 통치를 받은 일본은 덴노 중심의 전체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전쟁을 일으킨 군국주의 국가에서 모든 무력을 포기한 평화주의로 전환된다. 쇼와 덴노 역시 일본 최고의 존엄이자 군 통수권자에서 모든 권력이 사라진 상징 천황이 되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 일본은 말 그대로 폐허였다. 전쟁 막바지 연합군에 의한 공습으로 잘 곳도 없어졌고, 해외에 있던 일본인들도 귀국하며 식량난, 주거난은 심각했다.


이런 일본 경제가 반전을 한 것은 한국 전쟁이었다. 일본에 주둔하던 미군이 한국전에 참전하며 일본은 미군의 후방기지로써 쓰였고, 미군의 물자를 보급하기 위해 일본 내 공장들이 가동되며 전후 경제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이를 일본에서는 조선 특수(朝鮮特需)라고 표현한다.


한국 전쟁으로 경제 부흥의 발판을 마련한 일본은 잇따른 베트남 전쟁의 특수도 여지없이 누릴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미쓰비시, 파나 소닉, 소니 등 굴지의 대기업이 등장했다. 이윽고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대량생산과 소비 증대에 따른 내수시장 활성화로 일본은 고도의 경제 성장기를 맞이한다.


전후 고도경제성장의 상징, 1970년 오사카 엑스포


이후 일본의 고도경제성장은 제1차 오일쇼크의 시작과 함께 끝났다. 그럼에도 선진국 대열에 다시 합류한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과 1970년 오사카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미국, 영국, 프랑스, 서독 등과 함께 G5로써 영향력을 행사한다.



찬란한 일본 경제의 종언, 잃어버린 20년의 헤이세이(平成, 1989~2019)


헤이세이 시작된 1989년을 기점으로 일본 경제는 차츰 기울어가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쇼와 말기인 1985년의 플라자 합의다. 엔저가 계속되며 미국의 대일무역 적자가 계속되었고, 달러 가치가 지속적으로 올라가자 미국이 프랑스, 서독, 일본을 상대로 달러 대비 통화 가치를 절상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자 정부는 기준 금리를 내렸고, 은행들도 앞다투어 대출 금리를 내렸다. 그 결과 대출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이렇게 대출로 발생한 자금은 주식과 부동산으로 흘러들어 갔다. 닛케이 지수는 연일 최고가를 경신했고, 부동산 가격은 미친 듯이 올라가며 일본 경제는 이른바 버블(거품)이 형성되었다.


거품이라는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일본 정부는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 분노한 여론을 수렴해 부동산 대출 총량 규제를 시작으로 기준 금리를 단계적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90년대에 들어서면 대출 이자를 견디지 못해 매물을 내놓지만 그와 동시에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며 대출 금액보다 부동산 가격이 낮은 상태가 속출한다.


이러한 불량 채권이 늘어나자 금융기관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하며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에 진입한다. 기업들은 인건비 축소를 위해 정규직 채용을 줄이고 파트, 계약 사원 비중을 늘린다. 수입이 줄어든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소비가 줄어드니 공급자인 기업은 생산을 줄이는 등 저성장의 악순환이 20년간 이어진다.






어른제국의 역습이 개봉한 2001년은 잃어버린 20년, 즉 일본의 장기 저성장의 정점에 있던 시점에서 개봉한 영화이다. 쇼와 시절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어른들은 풍요롭고 정 많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반면 1989년 이후 태어난 세대, 즉 헤이세이 세대는 이러한 쇼와 시대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옛날의 문화라 여기며 촌스러운 것이라 여긴다. 이 세대의 특징은 장기 저성장에 따른 사회에 대한 허무감, 연애, 결혼, 취직의 포기, 히키코모리로 대표되는 사회와 자신을 극단적으로 격리하는 경향까지 보인다.


최근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인 물가 상승은 일본에도 영향을 끼쳤다. 쇼와 세대는 오일 쇼크 등 물가 상승의 경험이 있는 반면, 헤이세이 세대는 태어나서 한 번도 물가가 상승한 적이 없기에 많은 이들이 이번 물가 상승에 적잖이 당황했다.


한국에서도 최근 레트로 열풍이 불기도 했다. 혹자는 한국이 장기 저성장에 돌입할 것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저성장으로 인해 과거 풍요로웠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경향은 어찌 보면 당연히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 유행했던 물건을 사고, 한 거리를 과거와 똑같이 만든다고 그 시대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의 문화로 인식하고,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더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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