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간 주요 현안과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지난 3월 16일, 강제동원 배상 판결과 대(対) 한국 수출규제로 경색된 한일 양국은 4년 만에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관계 정상화를 위한 물꼬를 텄습니다. 이번 회담은 열흘 전인 3월 6일, 우리 정부가 2018년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한 해결책으로 우리 정부 산하 재단(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제삼자 변제 안이라는 해법을 내놓은 뒤 이루어진 회담이었습니다.
이 해법 자체에 반대하는 한국 내 여론이 들끓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의 해법 발표 후 일본 측의 호응 조치에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양국 간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은 성의 있는 호응 조치를 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먼저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과거사: 강제징용 제삼자 변제안 환영, 한일공동선언 포함 역대 내각 담화 계승 입장 표명
· 정치·안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정상화, 양국 정상 간 셔틀외교 복원, G7 히로시마 정상회의에 윤대통령 초대
· 경제: 한국에 대한 반도체 3개 부품 소재 수출규제 해제, 일본에 대한 WTO 제소 취하
이번 회담의 의의를 살펴보면, 우선 한일 양국 간 "정상급 정치적" 교류가 재개되었다는 점과, 일본의 수출규제 해제를 통한 반도체 산업에 불확실성이 제거되었다는 점 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제동원 해법 안의 성의 있는 호응 조치라 할 수 있는 일본의 사과와 반성 입장의 표명이 역대 내각 담화의 계승 수준에 그친 점, 화이트리스트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의 WTO 제소 취하가 성급했다는 점 등은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관계 회복을 위한 물꼬를 틀긴 했지만 양국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산적합니다. 그렇다면 우린 이러한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걸까요. 애초에 양국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관계가 악화되는 지경에 왔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1945년 이후 한일관계를 둘러싼 역사적 사건과 주요 현안을 알아보고, 앞으로 양국의 과제와 해결방안은 어떤 게 있을지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65년 체제와 강제징용 배상 갈등
최근까지 한일 관계가 악화된 원인을 꼽자면 2018년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이 그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90년대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와 일본제철을 상대로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을 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 1심과 2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받은 뒤, 상고심에서 파기환송, 다시 파기환송심을 거쳐 2018년, 대법원에서 피고 기업이 원고에게 각각 1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었습니다(한국 법원 소송 제기 전 일본 재판소에도 소송을 제기했으나 최고재판소가 최종 원고 패소 판결).
당시 재판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피해자에 대한 개인청구권이 소멸되었다는 피고 측 주장을 기각하고 개인청구권이 유효하다 판단했습니다. 또한 일본의 불법적인 식민지배를 통해 일어난 불법행위이기 때문에 피고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굉장히 복잡한 문제입니다.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피해자 개개인의 개인청구권이 유효한지, 또, 일본에 의한 한국 병합이 합법인지 불법인지, 애초에 국가 간 외교문제에 사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심리를 할 수 있는지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①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
먼저 이 판결에 자주 등장하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한국과 일본은 국교를 맺고 있지 않았습니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문제와 한국에 남아있는 일본인의 재산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문제가 있었고,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시까지 일본은 주권이 정지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되고, 일본은 주권을 회복했습니다(제1조). 식민지 통치 당시의 영토를 포기했고(제2조), 한일 간 서로에 대한 청구권은 당사자간 협의하도록(제4조) 규정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1951년부터 1965년까지 7차례에 걸쳐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해 교섭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교섭 끝에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한일청구권협정이 체결되며 양국은 국교정상화를 맞은 것입니다. 이렇게 맺어진 한일 관계를 65년 체제라고도 합니다.
두 조약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양국 간 국교정상화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근거한 것이며, 유엔 결의 195호에 따라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한일조약 전문)
2. 1910년 한국병합조약을 포함한 그 이전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 체결 조약은 이미 무효(위 조약 제2조)
3. 양국 간 청구권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라 최종적으로 해결
4. 일본은 한국에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2와 3, 4입니다. 2는 식민지배의 합법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개인적인 견해로는 당시 국제법상 합법이라고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한국이 식민지배에 대해 불법이라고 주장할 때, 병합조약을 포함 그 이전에 체결된 모든 조약은 일본의 강박에 의해 체결되었기 때문에 무효라는 점입니다.
조약에 관한 비엔나 협약 제42조에 따라 국가에 대한 강박 등이 있었다면 조약이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만, 이 협약이 1980년에 발효되어 그 이전 조약들은 소급되지 않는 점, 그리고 당시 국제 질서 상 이러한 식민지 확보를 위한 조약이 용인되었다는 점은 식민지배가 합법이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우리는 현대의 국제법을 기준으로 하여 당시 식민지배가 불법이라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만, 현대의 국제법은 1945년 유엔 출범 이후 성립된 체제인만큼, 시점과 시대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3과 4는 청구권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선 당시 한일 간 교섭에서는 "강제징용" 피해자에 관해서만 논의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당시의 청구권과 보상안은 강제징용에 한정됩니다. 또, 이렇게 한국에 지급된 차관(일명 배상금)은 당시 정부가 일괄적으로 받아 경제 개발을 위해 사용되었고, 7~80년대에 걸쳐 일부 징용 피해자들에게 지급되었습니다. 다만, 국가 간의 합의가 되었다 하더라도 개인이 가해국 혹은 가해기업에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었다 볼 수 없습니다. 이 경우에는 국가가 피해자의 조력을 이미 완료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따라서 피해자 개개인은 일본 정부나 가해 기업에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보아야 하며, 이 점은 일본 정부 역시 인정하였습니다.
② 사법 적극주의와 사법 소극주의
사법 적극주의와 사법 소극주의는 법 조문 외에 사회적 정의 실현이나 국가 간 문제를 다루는 등의 분야에서 나뉩니다. 한국은 사법 적극주의로 법 조문 이외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냐, 역사적으로 단죄가 이루어졌냐, 외교 협의에 문제가 없냐 등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룹니다. 반면 일본의 경우 재판소의 모든 판결은 법 조문 안에서 이루어지며, 외교문제의 경우 행정부의 고유 권한으로 다루지 않고 각하하는 사법 소극주의를 취합니다.
이번 판결에서 과연 사법부가 국가와 국가 간 외교문제를 다룰 수 있냐는 점입니다. 외교는 행정부의 고유 권한으로 국내에서 국내의 법률을 적용하는 사법부가 국가 간 외교문제까지 적극적으로 다루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보입니다. 또한, 한국의 경우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사법부가 행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었다 할 수 없습니다. 사법 적극주의, 사법 소극주의 어느 것이 옳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만,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행정부의 고유의 권한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일본은 사과를 하지 않는다?
65년 체제 성립 이후 한일조약과 청구권협정이 굉장히 모호하고 이중적인 해석이 가능하게 체결된 탓에 지금까지 많은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병합조약 포함 이전 조약의 무효 시점을 한국은 1910년으로 모든 조약이 불법이다고 보는 반면, 일본은 1948년 대한민국 수립으로 조약 효력이 없어졌기에 무효라는 입장이라는 시각차이입니다(한마디로 합법).
때문에 양국은 냉전 종식 이전까지는 좋든 싫든 우선 서로에 대한 안보·경제 협력을 통해 이러한 갈등을 억지로 묶어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뒤 더 이상 서로에게서 이익을 찾기 힘들어진 양국 사이에 위안부, 독도와 같은 여러 갈등사안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2015 한일 위안부 합의와 같은 약속도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화해·치유의 재단 해산이나, 2018 대법원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해 한국이 약속을 어겼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위안부 합의의 경우 아베 당시 총리가 기시다 당시 외무상을 통해 사과 입장을 밝혔고, 일본 정부 예산까지 들였는데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는 입장이며, 강제동원 배상 판결은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끝난 문젠데 왜 다시 들어내냐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일 위안부 합의의 경우 이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기 때문에 양국 간 합의가 파기되었다 볼 수 없고, 강제동원 배상 판결은 개인청구권이 유효하기 때문에 국가 간 약속을 깬 것이라는 것은 과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정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본을 방패막으로 삼아 국내 문제를 회피하려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본과의 약속을 회피하는 문제는 우리가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생각합니다.
반면, 우리는 일본이 제대로 사과하고 있지 않다 합니다. 그러나 1993년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와 불법성을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담화를 시작으로 1995년 무라야마 담화(전쟁범죄, 식민지 사과), 1998년 한일공동선언(한국에 대한 식민지 가해책임 인정, 식민지배 사죄), 2005년 고이즈미 담화(무라야마 담화 재확인), 2010년 간 담화(한일병합 강제성, 식민지배 폭력성 인정 및 사죄),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총리 이름으로 위안부 피해자에 사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일본은 사과를 해왔습니다. 다만, 이러한 담화와 사과에도 불구하고 일본 역시 국내 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한국에 대한 비난성 메시지나 역사인식 부정, 우경화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일관계 앞으로의 과제와 해결방안
일본학을 공부하는 입장으로서 한일관계가 보다 더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향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양국이 앞으로 탁자에 놓인 과제를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해야 할까요? 본 글에서 저는 크게 4가지의 의견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첫째, 피해자에 대한 의견을 존중하고, 이를 위한 한일 정부 간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피해자들은 돈을 목적으로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에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사과 한마디를 바라는 분도 많습니다. 돈은 사법적으로 할 수 있는, 즉 법이 인정한 사과의 방법이기 때문에 소송을 하면 금전적인 문제로 비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90년대 위안부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아시아여성기금(민간기금)을 제공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일본 관료는 피해자 할머니를 찾아 총리의 사죄 편지와 함께 사과의 말을 전하자 굳었던 할머니의 얼굴이 풀어졌다며 이제 됐다고 말씀하셨다 전합니다. 이처럼 양국 간 피해자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협력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일본은 한국 식민지배에 대해 보편적 인권 침해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반성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이냐 불법이냐로 보는 등 자로 재듯 정확히 자르려 하면 오히려 문제는 풀기 어렵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하는 과정에서 행한 다양한 가해 사실을 역사적 사실이 아닌 보편적 인권 침해 사실로 바라본다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일본의 입장에서도 사과하기 쉬워지는 명분을 찾을 수 있다 생각합니다. 또한, 이러한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가 보편적 인권을 침해했다는 사실을 교과서 등에 정확히 기술하여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민을 향한 교육 정책을 바로 세워야 한국이 일본에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한국은 일본의 사죄를 비롯한 일본의 조치를 평가해야 합니다.
앞서 설명드렸다시피 일본은 상당한 빈도로 한국에 대해 식민지배와 그 폭력성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한국 역시 끊임없이 사과해라라고 말하는 대신 과거 일본이 행한 사죄와 조치를 평가하고, 일본과 협력적인 자세를 취하고 자하는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진정성이 없으니 다시 사과해라, 부족하다 그만하라 할 때까지 사과하라고 한다면, 이미 상당한 빈도로 사과를 한 일본의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일본의 사과와 조치를 평가하며 일본과 협력적 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국민적 의식을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양국이 식민지배 하 발생한 인권 침해 피해자에 대해 공동으로 추도할 것을 제안합니다.
양국은 식민지배 기간 동안 전쟁 등 다양한 원인으로 양국 국민들이 희생당했습니다. 더욱이 한국은 일본의 일방적 폭력으로 독립운동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를 위해 양국이 이러한 인권침해 피해자들에 대한 추도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은 양국 간 공통 된 역사 인식을 가지고, 전쟁 방지와 인권 보호라는 보편적 인류 가치에 도달하는데 효과적일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3.1절 행사에 일본 관료를 초청한다던지, 일본의 전국전몰자추도식에 한국 관료를 초청한다는 식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더욱이 세계적 전쟁 방지라는 가치 실현을 위해 아시아·태평양전쟁전몰자추도식과 같은 동아시아·동남아시아 등 관계국이 모두 참여하는 별도의 공동행사를 마련하는 등 양국이 함께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일 양국은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오래 교류해 왔습니다. 사이가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었습니다만,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교류해오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전쟁이 끝난 지 10년 정도 경과 된 이후 에도 막부에 의해 조선통신사가 초청되며 조선과 일본은 다시 국교를 정상화했습니다. 이 같은 자세는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양국은 서로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많고, 국민 간 교류도 활발합니다. 과거와 역사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그러한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서로 노력하여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의 진정성을 평가하고, 공동으로 보편적 인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한일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상호호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