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내각 출범, 일본 국내외 변화와 과제
2025년 10월 21일, 일본에서는 역사적인 순간이 포착되었다. 1885년 이토 히로부미가 내각 총리대신으로 임명된 이래로 무려 140년 만에 여성 총리가 탄생한 것이다.
그 이름은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자민당 창당 70년 만에 최초의 여성 총재가 된 것에 더불어 일본 최초의 여성 내각 총리대신에 그 이름을 올렸다.
흔히 다카이치라는 사람이 한국의 뉴스에 보도될 때는 '우익', '여성 아베' 등과 같은 표현과 함께 등장하곤 한다. 그만큼 한국에 있어서 다카이치는 아베 전 총리가 그랬듯 역사 문제에 있어 한일 간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염려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이제 막 취임한 다카이치 총리는 언론에 보도된 대로 강경한 우익일까? 이번 글에서는 다카이치 사나에 개인과 그가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배경, 그리고 그가 이끌어갈 일본의 모습과 해결해야 할 과제를 탐구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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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사나에, 나라의 여자입니다.
다카이치 사나에는 1961년 나라현 출생이다. 지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高市早苗、奈良の女です。大和国で育ちました。(다카이치 사나에, 나라 여자입니다. 야마토의 땅에서 자랐습니다.)"라는 표현으로 자신을 소개를 하기도 했다.
나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고베 대학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파나소닉 회장인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운영한 정치, 경제계의 등용문으로도 알려진 마쓰시타 정경숙을 수료했다. 이후 미 연방의회에서 근무하다 귀국해 아침방송 캐스터 등으로 이름을 알렸다.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나라 전현구(중대선거구제)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후 신진당으로 당적을 옮겼다가 1996년 자민당에 입당했다. 2003년 나라 1구 중의원선에 출마했으나 낙선, 2년 뒤 나라 2구로 지역구를 옮긴 뒤 지금까지 10선 중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와 등원 동기로 정계 입문 때부터 가까워 제1차 아베 내각 때 오키나와, 북방영토 담당상을 시작으로 2차 아베 내각에서 여성 첫 자민당 정무조사회장(한국 정당의 정책위원장)을 역임한 뒤, 역대 최장 총무대신에 재임했다. 아베 총리 뒤를 이은 기시다 내각에서는 경제안보담당상에 재임했다.
일본 내에서도 보수적인 신조를 이어간다는 평가와 함께, 역사 인식에 있어서는 식민 지배에 대한 직접 사과를 한 무라야마 전 총리에 대해 "앞선 세계대전에 대해 멋대로 일본을 대표해 사과해서는 곤란하다."라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서는 지난 총재선거 인터뷰에서 "전범은 이미 형을 집행받았기에 죄인이 아니다. 역시 그분들을 참배하고 싶다.(지지통신 2025/09/28)"라고 언급하며 참배 의사를 확고히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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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원하는 총리, 막판까지 변수의 변수
지지통신이 지난 8월에 실시한 차기 총리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가 15.9%로 1위였다(지지통신 2025/08/14). 자민당 지지층에서 이시바(총리)와 고이즈미(농림상)가 앞선 것에 비하면 눈에 띄는 결과다. 그만큼 일반 국민층, 특히 청년층과 보수층에서는 다카이치를 지지하는 결과가 많았다.
이러한 결과는 다카이치의 정책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금리 정상화 중인 상황에서 아베노믹스를 계승해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치겠다는 점, 외국인에 대한 투자 규제, 노동자 수용 거부 등의 배타적 외국인 정책, 소득세 최저 기준인 이른바 '103만 엔의 벽(103万円の壁)'의 기준을 인상한다는 등이 이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청년층과 서민층에 지지를 얻은 것이다.
이러한 지지세를 바탕으로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승리하여 여성 최초의 자민당 총재가 되었음에도 총리가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선 25년 간 연정으로 연립여당을 꾸려온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했다. 표면적으로는 다카이치가 당 주요 요직에 비자금 스캔들의 당사자인 구) 아베파 의원들을 기용했다는 점을 들었지만, 다카이치 당선 이후 내각 수립 시 아베 내각 당시 비협조적이었던 공명당에 대한 각료 기용 등이 힘들 것이라는 점도 연정 이탈에 작용되었다.
자민당이 중의원 465석 가운데 겨우 196석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24석의 공명당이 이탈하며 야권이 단일화를 할 경우 다카이치 총리의 무산은 물론, 자민당이 정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위기에 빠진 것이다. 때문에 지난 10월 2주는 자민당이 정권 사수를 위한 새로운 연정 파트너 물색과 야권의 단일화 논의 속에 일본 정치가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달라지는 정국이 펼쳐진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입헌민주당,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의 야 3당이 정책 이념 등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야권단일화에 실패, 일본유신회가 자민당과 연정수립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며 정국은 한숨에 달라졌다.
일본유신회는 ▶︎국회의원 정수의 10% 삭감(비례대표), ▶︎오사카 부(副) 수도 지정, ▶︎기업, 단체 헌금의 금지 등 정치자금 투명화 등을 포함한 12개의 연정조건을 내세웠다. 당초 일본 내에서도 이러한 유신회의 조건을 자민당이 거부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예상과 다르게 다카이치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자유-유신 연립정권이 탄생했다.
그렇게 다카이치는 중참양원의 지명선거를 거쳐 제104대 내각총리대신이자 일본 최초의 여성 내각총리대신에 임명되었다. 취임 일성은 "첫날부터 전속력, 최고속력으로 정책을 시행하겠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다카이치 내각은 연립 여당인 일본유신회와 어떤 일본을 만들어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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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일본 보수화 예상 속 다카이치가 만들어갈 일본은?
다카이치 총리와 다카이치 내각은 10월 21일 천황으로부터 신임장을 받음과 동시에 업무를 시작했다. 취임과 동시에 10월 말에는 아세안, APEC 등 다자외교 일정이 잡혀있다. 또, 취임 이튿날에는 북한이 동해 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안보 문제도 부각되었다.
그럼에도 일본 국민들이 다카이치 내각에 바라는 가장 큰 정책은 경제 성장과 경기 회복. 휘발유 잠정세율의 폐지와 소득세 부과 최저기준인 103만 엔의 기준 상향이 우선 수행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급등하는 물가상승률을 얼마나 억누를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물가상승률에 걸맞은 소득 성장을 얼마나 이룰 수 있을까가 다카이치 내각의 성공 요인으로 보인다.
외교 면에서는 이시바 내각에서 합의한 미일 관세 합의에 대한 후속 조치, 야스쿠니 신사를 둘러싼 한중과의 갈등 관리 등의 현안 관리 역시 주요한 과제이다. 한국으로써도 이웃국인 일본과의 안보적, 경제적 협력이 중요해지는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가 역사 문제에 있어 야스쿠니 참배 자제 등의 성의를 보이면 이에 응하는 태도도 필요할 것이다.
다카이치 내각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아베 내각 이후 기시다 내각 이외에는 장기간 내각을 유지한 경우가 없기 때문에 다카이치 내각 역시 단명을 피할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여소야대의 형국에서 다카이치가 자민당 내 아베 전 총리와 같은 확고한 지지 기반이 없다는 점, 유신회가 자민당의 정책 수행 능력을 보고 언제든 연정을 파기할 수 있다는 점 등 다카이치 내각이 장기적으로 유지하기에는 위험요소가 상당히 많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첫 여성 총리로 일본을 이끌게 된 다카이치 사나에. 그가 이끄는 내각은 전 세계의 일본 보수화 시각 속에 어떤 일본을 만들어 갈까. 기본적으로는 현재의 내정, 외교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아베 전 총리가 이루지 못한 자위대의 헌법 명기를 비롯한 아베가 이루지 못한 정책을 얼마나 이룩할 수 있는지, 이러한 정책들이 변화하는 국제질서에 부합하는지, 그에 따라 외교적 마찰이 발생하지 않을지는 앞으로 우리가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부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