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도 않고 살지도 않는
일단 태어났으니 살아가긴 했다. 뭐, 사람이 태어나면 살아가는 게 이치이자 순리니까. 그렇게 입 다물고 정해진 일들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나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러니까, 내가 누구지? 여기가 어디지?
사춘기 때나 할 법한 그런 질문들이,
이제 와 나에게 흘러들어왔다.
사실 그런 질문, 한 번도 진지하게 해 본 적 없다. 질문은 딱 질색이었다. 학교에선 특히 그랬다. 질문은 쉬는 시간을 좀먹는 벌레 같은 취급을 받았으니까.
“시험에 나올 테니 외워.” “이건 그냥 그런 거야.”
입을 떼기도 전에 수업은 다음으로 흘러갔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시험에 나온다니까 외워. “라고 하면, 모두가 외웠다. 그 누구도 “왜?”라고 묻지 않았다. 왜냐면, 그건 시험에 나오는 거니까. 시험은 백 점을 맞아야 하는 거니까. 백점을 맞아야만 좋은 대학교를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어린 나이부터 학원을 다녔다. 공부는 아이들이 해야만 하는 당연한 과정이 되었고, 어느샌가 시험은 인생의 결과물이 되어버렸다. 필히 높은 점수를 받아야만 하는 것. 학생이라는 신분은 미래를 위한 발판일 뿐, 지금의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모두가 바삐 살아간다. 그것도, 정말 바삐.
무슨 생각을 하거나, 질문을 던질 틈도 없이 사춘기는 조용히 지나가버린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대학교만 가면 인생이 활짝 꽃피겠다’고 믿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서울대쯤은 쉽게 갈 줄 알았다. 오만함이 63 빌딩을 넘어 하늘까지 치솟았던 시절이다.
지금 와 돌아보면, 서울대는 물론이고 하버드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라도 하고 싶다. 그렇게라도 꿈을 꾼다는 건, 어쩌면 아직 나에게 남은 작은 희망일지 모르니까. 꿈과 희망이 없다는 건 다가올 죽음을 바라게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죽음이 다가오길 기다릴 때, 인간은 모든 무기력을 등에 업고 눕게 된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나는 어리바리하기만 한데, 주변 사람들은 어느새 학교를 다니고, 취업을 준비한다. 그리고 나는 고장 난 시계가 되어 눈만 깜빡이며 누워있다. 쉬는 것도 아니고 편히 자는 것도 아닌 이 기분. 스스로에게 죄짓는 것 같지만 멈출 순 없는 굴레에 빠져 자꾸만 죽고 싶어지는 기분.
“그 시간에 자격증 준비라도 하는 게 낫지 않겠어?”
“이제 사춘기 지났잖아.” 이런 말들 속에서, 나는 더 크게 무너진다. 그러니까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동안 유예 되었던 왜라는 질문이 모이고 고여 머릿속에 쌓였다. 청개구리처럼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 그저, 무너져버렸다. 왜, 왜, 왜 그러다 보니 정말 이 꼴이 났다. 왜 그랬을까.
이런 때가 오면 과거 여행하는 건 더더욱 벅차다. 그때가 좋았지. 다시 돌아가고 싶어지는 그런 시절을 떠올리는 건 너무나도 고역이었다. 마치 그날들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옛 사진 속 웃고 있는 내가, 앞으로의 행복은 없을 거라는 무시무시한 예언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밤에는 카메라를 들지 않고, 사진첩도 열지 않는다. 그저 멍석처럼 가만히 누워 천장만 바라본다. 다음 날이 오기 전에 이 천장이 나를 덮쳐오기를 바라며, 하버드도 서울대도 다 필요 없으니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을 달래며 잠든다.
내가 누구지? 여기가 어디지?
그 질문들을 머리에 이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린 채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