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캐릭터의 발견과 발전
지난 1월에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어 약 2달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어른들의 농구 향수병을 일으켰던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부모와 자녀 모두의 눈을 만족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영화이자, 주인공 역할을 두고 갑론을박이 활발했던 영화로도 기억되고 있다.
그날도 우리 동네 극장으로 네 식구가 손을 꼭 잡고 슬램덩크를 보러 갔다. 이미 만화 시리즈로 슬램덩크의 결말까지 독파했던 나와 와이프는 왠지 새삼스러운 마음으로 각자의 영웅을 이야기하며 걸었다. 사실 우리 가족은 각자 좋아하는 인물이 모두 다르다. 와이프는 채치수를 좋아한다.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의리 있고, 리더십 강하며 심성이 곱고 겸손하다. 외모만 빼면 가질 것은 다 가진 셈이다. 나는 안경 선배를 좋아했다. 북산의 멤버들 중에는 제일 착하고 마음이 여리면서도 의리가 있다. 마지막 장면에는 벤치를 지키면서도 가장 힘든 순간에 친구들과 함께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모습이 마치 나를 보는 듯하여 가슴이 미어졌다. 아들은 빨간 머리 원숭이, 강백호를 좋아한다. 박력 있고 캐릭터가 확실하며 팀에서 제일 많이 성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딸은 정대만을 격하게 좋아한다. 초기 장면에서 장발에 건달처럼 나와 이질감이 있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 농구를 사랑하는 소심쟁이이다. 특히 자기만의 감성이 있고 스토리 있는 친구인 데다 만화 후반부에는 3점 슛을 내리 쏟아부으며 북산의 승리를 이끈다.
이번에도 우리는 각자의 주인공이 가진 캐릭터를 자랑하기도 하고 영화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주길 기대하며 팝콘도 안 사고 바로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 와이프는 채치수가 가진 비중을 은근 기대하며 웃고 있었다.
영화가 끝났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영화의 주인공은 우리가 밀고 있는 캐릭터들 중 누구도 아니었다. 원 작가 겸 감독자인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원픽한 주인공은 바로 송태섭이었다. 태섭의 어릴 때 추억부터 시작해서 형의 비극과 내면의 갈등, 팀 멤버들과의 대립과 화해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그렸다. 나의 안경 선배야 원래 큰 기대를 안 했기에 실망감도 덜했지만, 아들과 딸은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순간부터 머릿속이 복잡해 보였다. 엄마는 그래도 채치수의 강력한 캐릭터로 인해 웬만큼 비중을 차지한 것이 나름 선방했다고 보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환호했던 장면이 있었다. 바로 스케치 장면처럼 송태섭을 중심으로 한 명씩 나타나기 시작하여 마침내 5명의 캐릭터들이 모두 도화지 위에서 걸어 나오는 장면에서 아들은 눈물을 흘릴 뻔했다고 한다. 강력한 사운드의 주제가가 뒤를 밀어주기에 더욱 감동적이지 않았나 싶다.
조금은 유치하게도 우리 가족은 누가 송태섭 옆에 서서 걸어 나왔나, 누가 맨 마지막에 등장했나를 두고 자기들이 밀고 있는 캐릭터의 존재감을 빗데어 자랑해 대었다. 나야 뭐 안경 선배가 없었으니 웃으며 듣고 있었다. 한참을 듣고 보니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감독이 정해준 캐릭터는 따로 있는데 전혀 상관없는 관객이 곁에서 난리를 치는 꼴이 왠지 우습게 보였다. 감독이 이 장면을 보면 뭐라 할까? 일본인이라 한국말을 못 알아들으니 별말 없을지도 모른다. 하여튼 우리 가족의 만화에 대한 열정은 알아줘야 한다. 심지어 가족이 동네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열독하고 있는 장면이 방송을 탈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영어로 character(캐릭터)는 개인의 성격을 뜻하기도 하지만 개인이 가진 고유한 특징을 말하기도 한다. 슬램덩크 속 주인공들의 캐릭터라고 하면 이는 개인이 가진 성격보다 영화 속 개인이 나타내는 개별 특징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캐릭터는 특정 장소의 분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만의 존재감을 형성해 가지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관계가 깊어질수록 개인이 가진 캐릭터는 더욱 뚜렷해지고 이로 인해 한 조직 내에서는 비슷한 캐릭터 간 잦은 충돌이 발생하기도 한다. 강한 캐릭터, 유연한 캐릭터, 소심한 캐릭터 등 개인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요소들 중 하나인 캐릭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무엇보다 개인으로서의 구성원이 가진 여러 가지 요소들 중 가장 중심적인 존재감을 가지게 된다. 그룹의 성격이나 지양하는 바에 따라 다양한 캐릭터들이 매번 다르게 요구되며 이러한 각양각색의 캐릭터들을 적재적소에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이상적인 리더로 각광을 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룹의 구성원으로서 개인은 자신만의 캐릭터를 명확히 파악하고 분석하여 자신에게 맞는 역할과 임무를 적시에 발휘해 냄으로써 조직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
나는 어떠한 캐릭터를 소유하고 있을까? 또한 나의 캐릭터는 단 한 가지로 정의될 수 있는지, 아니면 다양한 캐릭터를 소유하고 이를 사회나 대인관계에서 적기에 구현해 내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캐릭터가 정확히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디서나 주인공으로서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근본적인 기질을 타고났다. 이러한 기질로 인해 다수의 캐릭터들이 부딪히고 섞여 있는 환경에서조차도 자신이 주목받지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해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관종(관심종자)이라고 하는 다소 부정적인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소위 다수의 모임에서 나 자신이 주목받지 못하거나 관심을 받지 못한다면 이에 대해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이런 감정을 표출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은 결국 주위의 누군가에게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끼치기도 한다.
캐릭터에 너무 목을 메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내가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너무 충격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캐릭터가 있듯이, 상황에 따라 두각을 나타내는 캐릭터는 매번 달라지게 된다. 송태섭이 가드로서 그의 캐릭터를 분명히 가졌기에 매 경기의 시작은 그의 손에서 시작되듯, 그리고 채치수가 센터로서 그의 캐릭터를 확고히 하였기에 골대 앞을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듯, 자신의 캐릭터에 맞는 역할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나의 캐릭터가 당장 오늘 인정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서운해하거나 자존감이 낮아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만의 캐릭터를 확실히 파악하고 그 캐릭터를 부각할 수 있도록 꾸준히 단련하고 키워가야 할 것이다. 요즘 같은 멀티플레이어 세상에 본캐도 중요하지만 부캐도 필요하다. 할 수만 있다면 두 개 이상의 캐릭터를 잘 개발하여 본캐만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또 하나의 강력한 부캐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의사 겸 국회의원, 판사 겸 색소폰 연주자, 연기자 겸 가수 등, 세상에는 멋진 멀티 캐릭터의 소유자들이 즐비하다.
우리라고 못할 것은 없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본캐외에 내가 평소에 관심이 있거나, 하고 싶었던 분야에서 부캐를 키워보자. 시간이나, 돈, 능력이 없어서 못하겠다는 말은 잠시 접어두자. 그런 말을 굳이 밖으로 내뱉고 싶다면 현재 유명한 유튜버나, 인플루언서, N잡러 등으로 성공한 멀티플레이어들의 이야기를 확인해 보길 바란다. 본캐가 활동하는 낮 시간이 부족하다면 새벽 기상, 저녁 자투리 시간 등을 활용해 보면 좋겠다. 하루 30분 독서로 인생을 바꾸거나 전직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다수의 SNS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참고 바란다.
천호식품 김영식 회장님이 평소에 하시던 말씀처럼, '생각나면 즉시 행동'으로 옮기자. 힘들더라도 10미터만 더 뛰어보자.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님이 말씀하시던 대로, '한 번 해보고 말해 보자'. 자신만의 클루지를 깨고 도전을 시작한 당신에게 성공과 행운의 여신이 아주 가까이에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