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라면서요, 그런데 안 먹히네요?
번아웃과 불안장애, 그리고 이 모든 걸 악화시킨 내 시야 장애 탓에 난 고등학교 1학년 내내 악몽 같은 시간에 시달렸다. 매일매일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했고, 울며 겨자 먹기로 성적을 챙겼다. 전매특허인 '괜찮은 척'을 하느라 에너지도 쪽쪽 빨렸다.
그렇게 여름 방학이 왔다. 이대로는 '정말 못 살겠다' 하는 위기의식을 느꼈던 나는, 휴식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어차피 이대로 가봤자 시야만 더 악화될 테니. 결정적으로 나는 학업을 일 년 동안 중단하기로 했다.
난 다짐했다. 이 1년 간 난 반드시 행복해질 것이고, 건강한 멘탈을 가지고 돌아올 것이라고. 꾸준히 심리치료도 하고 약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내 멘탈을 원상복구시키겠다고.
그런데, 지금의 난 4개월 전의 나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난 정말 행복해지려고 노력했고 정말 갖은 애를 썼는데. 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눈물이 질질 흐른다.
행복해지기 위해 난 정말 다양한 시도들을 해봤다. 우울에서 벗어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취미를 만드는 것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달에는 평소 시간이 없어 하지 못했던 독서를 했다. 사회경제 관련 매거진들도 많이 읽고, 매일매일 내가 느꼈던 점들을 기록하고 독서록도 썼다. 그런데 그게 꽤 버거웠다. 재미있을 줄 알고 시작한 건데. 그동안 철두철미한 계획 속에서 수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왔던 내 뇌가 본능적으로 계획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해보기로 했다. 일명 'P' 작전.
하지만 그 작전을 실행하자마자 난 행복이 아닌 우울이 내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비생산적인 시간은 생각보다 무척 버거웠다. 시간을 쓸모없이 흘려보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시간이 답답했다. 명상을 하면서 머릿속을 비우라던데 하나도 안 먹혔다. 책을 읽으면서 힐링하라던데 집중도 안 됐다. 그나마 효과가 있었던 것은 산책. 하지만 육상 학원을 다니다가 인대가 뜯어지고 눈 상태도 비정상인 관계로 마지막 하나 남았던 취미마저 사라졌다. 병원 처방으로 인해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2주 동안 나는 체기로 인해서 응급실을 두 차례나 방문해야 했다. 쓰기만 해도 숨이 막힌다.
어쩌면, 소비가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축해 뒀던 용돈들로 거금을 들여 방을 리모델링했고, 평소엔 잘 사지 않았던 옷 같은 것들도 많이 사봤다.
문화생활을 한답시고 전시회도 자주 다녔고 홍대도 자주 다녔다. 집에 오면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덕질을 하고, 유튜브를 보고 소설 쓰기를 했다.
그런데 그 아무것도 내게 장기적인 효과를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밤에 누우면, 어딘가 텅 빈 기분이 계속해서 들었고 우울해졌다.
하루의 시간을 빈틈없이 촘촘히 사용하려는 내 습관과 아무것도 안 해야 한다는 강박은 계속해서 부딪혔다.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내 뇌는 이것이 효율적인지 아닌지를 검열했다. 행복하지 못했던 하루는 나에게 있어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실패작이었다. 매일매일 최대한 행복하게 살기 위해 기를 썼고 행복해지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허나 '휴식'을 취한 지 장장 4개월. 난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난 행복해지지 못했다.
도대체 난 '어떻게' 쉬어야 하는 걸까? 이제는 어쩌면, 지금 이 상태가 내가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 아무리 우울하고 재미가 없어도, 그냥 이렇게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인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매우 억울하지만 난 내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했다 생각하기에 더 이상 손을 뻗을 의지조차 생기지 않는다.
이미 난 겪은 게 너무 많다. 갑작스레 찾아온 시야장애, 편두통, 우울증, 불안장애, 번아웃 등등...
지금이라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난 신체적으로 아주 건강한 대가리 꽃밭으로 태어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