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mmer Oct 29. 2023

열일곱에 희귀병

정말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열일곱. 살 날이 아직 팔십 년은 더 남았는데 벌써부터 삶의 큰 걸림돌을 마주한 느낌이다. 그 이유는 '비주얼 스노우'라고 불리는 불치병 때문이다.


 현재 내게 벌어지고 있는 시야 증상들을 나열하자면 대충 이렇다.



 * 하늘을 보면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하얀 지렁이들이 마구잡이로 꿈틀거림 (블루필드)

 * 비문증 (세포가 날아다니는 증상)

 * 심각한 수준의 빛 민감, 빛 번짐

 * 비주얼 스노우 (TV 화면처럼 지지직거리는 현상)

 * 복시

 * 고스팅 (빛이 시야의 방향에 따라 내려오는 것)



 그냥 대충 눈에 거슬리고, 찝찝하고, 아픈 건 다 있다고 보면 된다.


 웃긴 건, 이 모든 증상들이 눈에 관련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안과를 가도 소용이 없다. 그나마의 해결책을 찾으려면 대학병원의 신경과를 찾아가야 하는데, 그곳에서도 처방약 이외에는 별 해결책을 주지 못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효과가 없는 처방약이다.


 온갖 병원을 다 다녀봤다. 대치동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신경과도 가보고, 국가 승인을 받은 안과도 가보고 정신과도 가봤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해결책은 없었다.

 

 대부분의 원인은 스트레스 때문이라는데, 경험상 이 증상은 한 번 악화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정신과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친 직후 바로 비행기를 타고 내려서 밤에 택시를 타게 된 적이 있다. 그때 주변의 불빛들이 너무 무서워 스트레스를 잔뜩 받았는데, 다음 날 아침에 난 온몸이 화끈거리는 느낌과 함께 비틀댔고 불빛은 전보다 훨씬 더 환했다. 그 이후로 내 상태는 돌아오지 않았다. 영원히.


 그래서 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극도로 두렵다. 뭐든지 너무 열심히 한 대가로 내 증상이 더 나빠질까 봐. 난 하고 싶은 것도 정말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정말 많은데, 그 과정들 사이에 혹여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빛에 더 민감해질까 봐 두렵다.


 난 보는 게 정말 좋았다. 도시의 반짝거리는 야경과 한낮의 풍경을 좋아했다. 산책은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였고,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뉴욕 루프탑에 가서 야경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보는 것이 정말 피로하고 힘들다. 한밤의 고속도로에서는 명도 90%짜리 선글라스를 껴야만 그나마 버틸 수 있고, 맑은 날에는 차에 반사되는 눈이 아플 정도로 날카로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 차에도 커튼을 치고 선글라스를 껴야만 한다. 문제는, 선글라스를 껴도 여전히 눈이 아플 정도로 빛이 밝다는 것이다.

 

 전에 보던 세상을 난 영원히 볼 수 없다. 이젠 어딘가로 향하는 것이 정말 두렵다. 언제, 어디서, 밝은 빛이 날 괴롭힐지 모르니까.


 영문으로든 한글로든 아무리 검색해 봐도 이 증상에 관란 논문들은 잘 나오지 않는다. 원인도 불명확하고, 증상을 앓게 되는 계기도 다양하다. 라식/라섹 수술이나 갑작스러운 스트레스 등등. 나의 경우엔 편두통인 것 같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앓기 시작했는데 비문증을 시작으로 점점 증상이 확대되어 나가기 시작했다.


 정신과에서는 이것이 '신체화 증상' 일 수 있다며 약을 먹으면 무조건 나아질 것이라 장담했으나, 증상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약을 먹은 지 4개월이나 지났는데도 말이다.


 유명한 편두통 병원에서는 내 증상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내가 준비해 간 스케치북이 흥미롭다는 듯이 사진만 찍어갔다. 안과에서도 비슷했다. 그들은 나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두렵다. 증상이 악화될 것이. 내 증상이 악화된 특정 시기가 있는데, 그건 내가 미친 듯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엄청난 공부량을 소화해 냈을 때였다.


 난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좋은 인맥을 형성하고 싶다. 또 세계의 많은 곳들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아름다운 풍경들도 많이 보고 싶다. 그래서 난 항상 최선을 다했다. 나의 삶이 만족스러울 수 있다면.


 그런데,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의 증상을 악화시키는 주범이라면, 난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또 증상을 더 악화시키지 않으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정신과 의사도, 심리상담사도, 심지어는 대학병원 교수도.


 부모님은 항상 '여유롭게 살아라',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라고 말씀하신다. 당연히 그러고 싶다. 하지만 원하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고통은 언제나 따른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가 분명히 필요하다. 인내와 고통이 정말 중요하다는 뜻이다.



 어쩌면 이건 다 내려놓고 살라는 신의 계시일까?

 난 그러기 싫은데.

 난 대단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고 싶은데.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고 싶은데.


 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틀린 지, 효율적인지 비효율적인지,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를 끊임없이 따지고 검열한다. 그래서 난 잘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 인지를. 어떻게 살아야 내가 행복할 수 있는지를.


 아마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욕심이 너무 많아서, 신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간 걸지도.

 

 어렸을 때도 난, 장애인 이야기가 나오면 다른 누구보다도 시각장애인이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어떠한 사람들은 그걸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이젠 그게 내가 됐다. 말이 씨가 된 꼴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 여겼던 사람이 내가 되었다. 난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겼다. 욕심 많은 인간에게 깨우침을 주려던 신에게.


 신의 말씀임에도 난 그걸 받아들이는 게 죽도록 어렵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더 멘헤라인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원래 정신이 병든 사람들은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딸 하고 싶은 거 다 해"의 정석인 방목형 엄마 아빠, 탄탄한 경제적 뒷받침,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같은 것들이 모두 레드카펫처럼 내 앞에 깔려있는데도 난 여전히 그 상황을 즐기지 못하겠다. 대가리 꽃밭으로 살면 인생의 많은 교훈들을 놓칠 것 같아서. 평생 성장하지 못하고 죽을 것 같아서.


 어쩌다가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 인생의 목표가 불분명하다. 난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나서서 불행을 찾는 것일까?


 후자라면, 난 정말 희대의 멍청이인 셈이다.


 정말 대가리 꽃밭으로 살고 싶다. 모든 걸 내가 떠안고 책임지려는 본능을 버리기가 참 어렵다. 내 주위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만난 정말 좋았던 친구처럼. 누군가가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주었으면 좋겠다. 뻔한 거 말고.


 그리고 가끔은, 정말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불행한 휴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