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얼마 전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아주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현재로써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1999년 전 대한항공은 전 세계에서 가장 사고가 잦고 위험한 항공 중 하나였다. 흥미롭게도 책에서는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을 ‘언어소통체계’로 꼽았다. 한국어의 존칭적 특성과 ‘mitigated speech’, 즉 에둘러 표현하는 문화가 크루 간의 원활한 소통을 막고 그것이 다발의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후 대한항공은 소통 시스템 언어를 영어로 전면 수정했고, 이후 세계에서도 가장 prestigous한 항공사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스몰톡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실 그것보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말을 걸 수가 없다. 상대방이 누구이냐에 따라서 붙여야 할 미사여구, 존칭과 존댓말의 유무 등이 달라진다. 그래서 말을 걸기가 꺼려진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 할 수도 있지만, 태생부터 귀찮고 잡다한 것들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그런 걸 생각하는 것부터가 짜증난다. 그래서 난 왠만해서는 한국어로 말을 걸지 않는다.
영어에도 존칭 문화는 존재한다. 다만 그건 가벼운 존중에 가깝지 한국어처럼 필사적이지는 않다. 한국어로 말을 할 때 말의 내용에 집중하기보다는 상대방에게 맞추려는 의지가 더 강하게 든다.
언어마다 인격이 다르다는 말은 진짜다. 언어의 인격은 실제로 존재한다. 일본어와 한국어, 그리고 영어를 쓸 때 내 인격이 달라지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들과 영어로 소통하면서 권위보다는 사람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경험을 했다.
이건 싱가포르가 내 우울증을 해결해준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계급, 눈치, 존칭 등 알게 모르게 날 피곤하게 하고 짓눌렀던 것들에서 벗어나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다는 아니더라도, 많은 부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