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남자아이의 슬픔
엄마의 죽음이 두려운 아이
40대 후반에 장가든 남동생은 현재 6살 난 아들이 있다. 동생은 걱정인지 아니면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건지 아들이 “엄마가 죽으면 자기는 따라서 죽을 거야”라고 말했다며 담담히 얘기한다.
엄마가 '인생의 전부'이고 '신'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안쓰러웠다. 6살이면 보통 엄마의 나이가 30대 중반 정도의 나이일 것이다. 올케는 현재 40대 후반이다. 아이도 그것을 인지한 것인지, 아니면 올케가 항상 위가 좋지 않아 병원에 자주 드나드는 것을 알아서 그런지....
어떻게 아이에게 말해주었는지 궁금했다. 동생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래 사시니까, 엄마, 아빠도 오래 살 거야”라고 말해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말해주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되었다. “엄마가 주현이 보다 먼저 갈까 봐 많이 무섭고 걱정이 되는구나” “엄마는 오래오래 주현이와 함께 하고 싶어” “그래서 엄마는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할 거야, 주현이도 잘 먹고 운동하자."라는 정도의 표현이 좋을 듯하다. 만약 아이가 더 커서, 임종을 혹여 맞이한다면, "엄마가 없어도 우리 주현이 씩씩하게 행복하게 잘 살 거야 엄마는 믿어."라고 표현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엄마의 느낌, 욕구, 바람을 대화에 넣어준다면 상대의 죄책감 없이 수용하고, 엄마의 심리적 유산을 잘 간직할 것이다.
어린 주현이에게는 엄마는 절대적인 의존자이다. 얼마나 두려웠으면 엄마가 죽으면 따라 죽겠다는 말을 할까? 내면에 죄책감과 더불어 아이에게 엄마의 아픈 모습이 깊게 각인되었는 가보다. 아이들은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는다. 알지 못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아이에게 남겨줄 수 있는 유산, 즉 심리적 유산을 남겨줘야 한다. 부모가 죽어도 자녀는 씩씩하게 잘 살아야 한다.
지금은 보통 한 두 자녀를 출산한다. 한 자녀를 둔 가족이 대부분일 것이다. 특히 가족애를 중요시하는 우리나라는 형제가 없다는 것은 의존할 대상이 없으며, 외로움을 더 가질 확률이 많다. 친구, 자연환경, 동물과의 교류를 통해 적절한 정서적 의존대상을 찾아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결국은 홀로 왔다 홀로 가야 할 인생이지만, 좀 더 정서적 안정과 행복을 위해서는 정서적 교류를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다양한 측면에서 해줄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다행히도 주현이는 씩씩하게 유치원에 잘 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