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근무한 지가 벌써 몇 해인가. 이러다가 공항 지박령이 될 것 같다.
지방 자그마한 공항에서 근무하다가, 인천공항으로 발령 났을 때 처음 몇 년은 3층 출국장에서 일을 했었다. 국제공항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방 촌년은 시골 뱅기와 인천 뱅기는 크기부터가 달랐다. 탑승한 승객에게 뭔가를 확인하러 들어간 기내는 왜 그리도 크게 느껴지던지, 기내에서 길 잃어버리는 줄 알았다. 항공기 출발 시간 임박시점에 다급하게 들어간 기내는 또 왜 그리 길고 길었던지, 비행기 출발시간에 기내에 들어온 지상직원이 못마땅한 승객들의 시선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어리바리 초짜의 티를 팍팍 내며 기내에서 식은땀 줄줄 흘렸던 시절이 있었다.
그 후 2층에서 오랫동안 근무를 했었다. 2층에서는 환승객들이 이동하는 경로에서 주로 일을 했었다. 어눌한 언어보다는 손짓 몸짓으로 의사소통하며 많은 외국인들을 만났었다. 당시는 억울할 정도로 힘들어 마흔만 되면 때려치운다고 다짐하며 버텼던 날들도 많았는데, 지나 보니 나쁘진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이제 진짜 떠날 나이가 되었나 보다.
나의 어설픈 외국어보다는 비영어권 승객들과의 바디랭귀지가 기똥차게 통했었다. 타고자 하는 자와 태우고자 하는 자가 서로 간절히 원했으니 눈빛과 몸짓만으로도 통했던 것 같다.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욕(컴플레인)을 들으면서 진정 내공이 쌓이기 시작했던 시기였었다.
지금은 1층에서 일하고 있다. 1층에서는 수하물과 일하고 있다. 수하물은 말이 없고 나에게 컴플레인을 하지 않아서 좋다. 그런데 말이 없어서 더 무서운 건 목적지가 다른 비행기에 실려도 말없이 간다는 게, 사람 살 떨리게 만든다는 거다.
어제는 특수 수하물 긴 장대가 있어서 비행기 앞까지 나가 보았다. 장대를 꾸겨 넣어야 하나(농담) 고민하며 나간 스팟에서 한낮의 태양이 정수리만 때려 머리에서 불이 나는 줄 알았다. 아직 6월 초인데 9월까지 이 땡볕에 일해야 하는 직원들은 얼마나 힘들까, 정말 고생한다 싶었다.
날씨에 상관없이 쾌적함을 유지하는 공항이지만, 승객들이 없는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정말 허허벌판에서 비행기 매연에 소음에, 변화하는 날씨를 온전히 온몸으로 모든 것들을 받으며 고생하고 있는 것을 가족들은 아는지 싶다. 요즘처럼 자외선에 예상보다 더운 날씨에 우산이라도 받쳐 쓰고 일하면 좋으련만. 비행기 안에서 편안히 여행 갈 때 창 밖에서 손 흔들어주는 조업자가 보이면, 그들이 보지 못하더라도 같이 손 한번 흔들어 주시길.
나는 30도 되지 않는 날씨에, 엔진 시동 켜져 있는 비행기 앞에 고작 몇십 분 서 있었다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속까지 좋지 않았다.
수하물 관련하여 작업자들이 실수하면, 지적을 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시정 조치를 하긴 하지만, 정말 고생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매 건 족족히 지적하기가 거시기하고 참 어렵다.
서론이 길었다.
일과 사람 사이를 구분해야 하는 게, 난 너무 어렵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그렇다. 예전에는 못됐다는 소리 참 많이 들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일에서 인간적이다 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으니,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나이 드니, 보이는 게 많아서 그런가.
일과 사람 사이를 구분해야 하는데, 나는 그게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