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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남아 사랑꾼 Apr 02. 2024

겨울 오이 따 보셨나요

겨울 오이  따기 체험담


지난 주말, 유기농 겨울 오이를 재배하는 동생의 비닐하우스를 다녀왔다.


근처 부모님 선산에 가려고 하루 일찍 함창에 왔다. 오이 따기 전에 회룡포 노래로 유명한 삼강이 흐르는 삼강 주막에서 주모 세트인 막걸리+배추 전+파전에 시골 칼국수를 배불리 먹으며 추억의 고향 맛을 찾았다.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엄마가 솥뚜껑을 뒤집고 전을 부칠 때 옆에 앉아 달래 간장에 찍어 먹던 그리운 엄마 맛이다. 동네 아줌씨들이 전통 비법 그대로 살린 솜씨라고 한다. 하여튼 맛있었다.


동생은 서울 명문대 화학과를 나와 대기업 실험실 연구직 과장까지 지내다가 화학 약품에 몸이 안 좋아 고향 근처로 15년 전에 귀농했다. 화학 제품에 대한 몸의 이상 신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기농 겨울 오이 재배를 시작했다. 일체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농법이다. 무슨 대단한 친환경 의식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몸 때문에 시작한 유기농 농법인데 전국에서 이 분야에서 유일한  농군이다. 세상사가 다 계획대로 되지 않나 보다.


나도 아침에 도움이 될까 싶어 오이 따기를 도와준다고 하자 동생은 한사코 말린다.  그럼에도 내가 우기자 따야 할 오이 견본을 주며 하우스 오이 한 이랑을  따보라고 한다. 한 바구니에 100개 정도 들어가는데 굵은 놈 위주로 20개를 골라 땄다. 옆 이랑에서 오이를 딴 동생 바구니는 꽉 찼다. 동생이 내가 땄던 이랑을 다시 따는데 뒤따라가며 보니 싹수가 없는 놈은 따서 버리고, 아얘 진드기가 붙은 줄기는 정리하면서 오이를 따는 솜씨가 전문가 수준이다. 한 바구니를 꽉 채웠다. 돈으로 따지면 나는 2만천 원어치만 딴것이다. 나 같은 초보자가 도와준다고 오이 따면 십중팔구 적게 따거나 아니면 상품 가치가 없는 놈들을 따 손해로 이어진다는 말을 한다. 또 어차피 초보자가 딴 이랑은 자신이 다시 따야 하니 일도 많아지기 때문에 초보자 체험이 별로란다. 하기야 선무당이 사람 잡긴 한다.


오이 따기가 쉬워 보이지만 이것도 몇 개월은 배우고 실수를 해야 된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으니  어느 일이든 다 그렇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뇌리를 스쳐갔다. 머리의 생각과 현실 간 괴리가 일어나는 순간이다.


또 내가 겨울 오이는 겨울에 심어 놓고 통상 4월 경까지 5~6개월 정도 일하고 나머지 6개월은 노니 참 좋겠다고 하자, 동생은 보기엔 그렇지만 실제로는 6개월 동안 휴일 없이 주 7일을 일하고, 나머지 반년에도 다음 농사를 위해 물을 데 벼를 심고 엎어 거름을 만들 좋토양을 다시 만드는데 많은 품이 든다고 한다.


그래도 요새 60살이면 정년이고 전문가들도 은퇴 후 5년 정도 일하는데 오이 농사는 제 몸 관리만 잘하면 70~75살까진 하겠다고 하니, 동생이 그건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문화시설이 없고 갈 곳이 딱히 없는 시골에서 일만 오래 하는 것도 좋은 것만은 아닌 듯싶기도 했다.


동생은 농사짓고 나서부터 몸무게도 줄고 건강해져 귀농을 잘해다 싶다. 하지만 겉만 보고 오이 재배는 차치하더라도 오이 따기 정도는 아무나 하는 거 아닌가 했는데 이 또한 전문가의 영역이다.  세상일이 다 그렇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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