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탁 막힐 정도의 찜통 더위다. 여기 서울은 지난주 다녀온 필리핀보다 더 덥다. 작년 이 맘 때도 이렇게 더웠는지 모르겠다.
숲으로 둘러싼 녹지 공간의 일터는 안에는 에어컨, 밖엔 녹지 그늘 때문에 그나마 견딜만하다. 전기 아낀다고 온도 조절해 놓은 집은 창문에 성애가 낄 정도로 안팎의 온도차가 있으나 여전히 덥다.
여주서 서울 나들이를 온 우리집 강아지 히꼬는, 그 좋아하는 산책을 하자고 해도 궁둥이를 땅에 붙이고 거부한다. 또 소대변 할 때도 볼일만 보면 금방 집으로 가잔다. 사시사철 우리의 가을 날씨에서 나고 살다가 밍크코트를 입고 한여름을 지내자니 그럴 만도 하다.
이렇게 사람이나 동물에게 힘든 여름이지만, 여름의 풍경 또한 있다. 한낮의 쬐는 햇볕에 당당히 서있는 가로수 녹색 양산 역할을 하는 아름들이 나무들도, 각종 과일이 익어가는 모습이다. 일터의 여백에서 자라는 모과는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며 영글어 간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작은 봉우리였던 여주 집 뒷산의 밤송이도 부풀어간다. 저 너머 숲 속 사이로 말매미가 바리톤의 음정으로 불어 대고, 꾀꼬리 소리 같은 소프라노의 참매미가 요란히 도 운다. 그들은 짧은 삶이 아쉬워 우는지, 짝을 찾는 소리인지 알 수 없지만, 저리 끊임없이 소리 지르다간 목도 쉬겠지만 호시탐탐 먹이를 찾아 한낮의 상공을 가로지르며 날고 있는 새들의 먹잇감 되기가 십상일지 싶어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양 날개에 선풍기를 단 잠자리들도 떼를 지으며 공중 비행 중이다.
서울집 단지 내 동네 할머니가 심어 놓은 수탁의 빨간 벼슬처럼 맨드라미가 자태를 뽐내고 있고, 코스모스도 제철을 기다리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아직 더위는 여전하지만 코스모스가 꽃피기를 준비 중이고, 밤송이며 모과며 들판의 벼며 각종 추석상에 올라갈 곡식과 과일들은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그 가을은 올 것이다. 가을을 당겨 생각하며 174년만의 폭염을 보낸다.
ㅡ 8월의 詩 ㅡ
<오세영>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 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참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인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에 한 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하는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