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남아 학술대회 후 서울 가는 주말 기차다. 역방향 자리다. 생각보다 일찍 부산역에 도착해 기존 예약을 바꾸려다 보니 남은 좌석이 그 자리밖에 없어서다.
그간 수없이 오고 갔지만 처음 타본 역방향의 차창 밖 모습이다. 타기 전엔 좀 어지럽지 않을까 했는데 타보니 새로운 묘미다.
앞만 보고 달리는 순방향 자리와는 사뭇 다르다. 순식간 지나가는 풍광이 지나온 세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70년대 경북 상주에서 부산으로 유학 간 초등학생 시절의 완행열차의 헤아리 어려웠던 수많은 터널도, 그렇게 길어만 보였던 터널도 지나간다.
9월을 앞둔 들판은 노랗게 익어가는 벼들과 좀 늦은 파종 탓인지 여전히 파릇한 논들이 수놓은 듯 펼쳐진 들판도 손쌀같이 지나간다. 내가 지난 60년 살아온 인생의 들판도 그렇게 지나갔다.
10월부터 서울을 떠나 부산에 둥지를 튼다. 35년 인생 1막에 이어 인생 2막의 장들이 펼쳐진다. 은퇴 후 1년 6개월의 서울 적응기인 2막 1장은 그간 경험 바탕으로 여러 일을 경험한 프리랜스의 여유있는 삶이었다. 이제 정규직 3년 임기의 인생 2막 2장이다.
그런데 혼자서 간다. 집사람도 같이 가자고 꼬셨으나 1년 전 우리 집 강아지와 여주로 간 그녀는, 여주 마당의 나무며 꽃들이 걱정도 되고, 그 무엇보다 우리 히꼬가 고층 해운대 아파트에서 살면 똥오줌 싸기 어려워 나보고 혼자 가고 주말마다 올라오란다. 물론 체리 피커식으로 가끔 부산온다는 말은 한다. 개만도 못한 처지지만 어쩔 수 없다. 평생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방랑객 신세로 사느라 지쳐 이제 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그녀의 소박한 소망을 나도 외면할 수 없다.
이리되면 수없이 서울과 부산행 기차를 탄다. 그럴 때 오늘 처음 타본 역방향 자리에 일부러라도 가끔 앉아 새로운 풍광과 새로운 인생의 묘미를 맛보려고 한다.
이런게 나에게 말걸기를 하다 보니 벌써 서울역이 다가온다. 또 9월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