몆 주 만에 9월의 여주집에 왔다. 작년 이맘때 몰랐던 게 눈에 보인다.
# 양손을 펼쳐도 닿지 않을 길이와 그보다는 짧지만 애법 높은 직사각형 유리창
그 유리창에 빼곡히 잎으로 덮인 거목과 그 사이사이로 빼꼼히 드러내는 파란 하늘이 꽉 차 보인다. 풍경화치고는 대작의 풍경화다.
침대에 누워 '만일 나에게 단 한 번의 이침이 남아 있다면"이라는 책을 마저 읽으며 창문 밖 그림을 가끔씩 쳐다본다.
뒷산 쪽으로 난 화장실의 조그만 창문엔 곧 터질 듯한 밤송이가 주렁주렁 달린 밤나무가 꽉 채운다. 작은 창문 사이로 아른 아침의 가을 공기가 들어온다.
창문 아래 뒤뜰에선 집사람과 히꼬가 전용 축구장(집 뒷담장과 집사이의 10미터 길이에 1미터도 채 안 되는 공간)에서 1시간 넘게 공놀이하는 소리가 들린다. 집사람은 이런 전용축구장을 가진 개는 1%밖에 안된다고 한다. 하기야 우리 집에서 속세의 무슨 기준이든 상위 1%에 드는 건 히꼬밖에 없다. 히꼬의 소리 지르기를 들으니 그의 토파민이 솟는 모습도 그려진다. 찌는 더위에 감히 엄두도 못 냈던 공놀이라서 히꼬의 9월은 더 좋은 게 분명하다.
# 9월이면 여는 여주 도자기 비엔날레가 신륵사 앞 여주 도자세상에 갔다. 며칠 전 개막식에 가수 박정현이 나왔다는데 못 봐 아쉬웠지만, 여주 도자기 명인들의 천막 가게를 둘러보며 '과연 여주 하면 도자기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어느 가게에 가니 강아지용 밥그릇을 도자기로 만들어 팔아 하나 샀다. 위생에도 보기도 좋았다. 가게 주인이 자기가 강아지도 오는 무인 카페와 도자기 공장을 한다며 명함을 줘 언제 한번 가보기로 했다. 도자기 수요가 예전만 못해 다들 어렵다고 한다. 도자기를 둘러보고 여주산 맥주(한잔 5천 원인데 집사람은 두 잔 마신다. 만원이다), 떡볶이(2천 원), 어묵(3천 원), 쌀국수(7천 원)로 점심을 때우고 집으로 갔다.
# 집 근처에 CU 표지판이 눈에 띄어 무작정 갔더니 CU 편의점이 있었고, 노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남편은 도자기 공예가였고, 부인은 판매하다가 CU 편의점을 열었다고 한다.
파라솔 의장에 앉아 동네 토박인 그분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여주집이 오금 분교였다는 얘기며, 동네 누구누구는 어떻다 든 지 등 동네 이야기를 소상히 도 털어놓는다. 가끔씩 지나가던 사람들이 소소한 물건을 사러 오면 잠시 수다를 중단하곤 했다.
평소 낯선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는 집사람도 유난히 말이 많다. 이유인 즉, 둘째가 곧 결혼해 나가고, 나도 지방에 가면 우유며 계란 먹기가 쉽지 않을 텐데 걸어서 가는 곳에 CU가 생겼으니 안심이 되어서 그런 모양이다.
온라인으로 다른 건 다 주문해 먹어도 우유와 달걀만큼은 차 몰고 10분 정도는 가야 사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으니 천군마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싶은 게다. 운전은 30년 전 미국에서 처음하고 그 이후 무임승차해 온 그녀이기에 차가 있어도 소용이 없다. 한편 CU가 생겨 좋지만, 속으론 없으면 나를 기다릴 텐데 하는 속 좁은 이기심 마저 들었지만, 어차피 내가 다 못해줄 것인데 자급자족 생태계가 생긴 것은 다행이다 싶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노부부는 2대째 개를 키웠고 최근 이별을 해서 개를 좋아한다며 히꼬를 연신 쓰다듬고, 히꼬도 눈치를 채곤 자기를 좋아하는 그분들에게 귀를 내리고, 때로는 배를 벌렁 뒤집어 친근감을 표시한다. 그 모습을 본 노부부는 필요하면 강아지를 맡아준다고까지 한다. CU가 장사 잘 돼 계속 영업 잘하기 기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9월 여주는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