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0.2부터 부산에서 재한유엔기념공원 상징구역에서 헌화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부산 대연동에 있는 재한유엔기념공원(UNMCK:UN Memorial Cemetery in Korea)이 새로운 자리다. 35년 공직을 정리하고 1년 반 정도 정부 산하기관에서 일하다가 이번에 외교단 소속의 국제기구인 재한유엔기념공원에 왔다. 원래 명칭은 유엔묘지였으나 주민 친화적으로 재한유엔기념공원으로 바뀌었다.
재한유엔기념공원 관리처장(Custurdian)은 조선시대로 치면 능을 지키는 현대판 능참봉이다. 조선시대 능참봉은 계급으로 보면 정 9품이니 미관 말직이지만, 능을 지키는 보직은 국가 경조사 중 조사와 의식에 관여된 중요한 자리였을 것이다. 우리가 사극에서 익히 아는 조선시대 한명회도 출발은 능참봉이었다고 한다. 공직을 1급으로 퇴직했으니 굳이 세속적으로 공직 전후와 비교한다면 신분이 급강하한 셈이다.
은퇴 후 비정규직으로 매일 출퇴근하지 않는 자유로움을 포기하는 대신에, 매일 출근하는 자리다. 나이 60이 넘어 매일 나갈 곳이 있어 감사할 뿐이다.
재한유엔기념공원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묘지이자 불가침권이 명시된 성지로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용사들 중 총 13개국 2,328 명이 안장되어 있다. 영국(892), 미국(40), 호주(281), 터키(462), 캐나다(381), 프랑스(47), 뉴질랜드(32), 남아공(11), 화란(120), 노르웨이(1), 콜롬비아(4), 벨기에(1), 한국(38, 카츄사,무명용사(4), 기타(11) 등 13개국 국적의 군인들이 묻혀있는 경건한 장소다.
유엔기념공원은 한국전 당시 1951년 조성되어 유엔군사령부 관할 하에 있다가, 1959년 유엔과 한국 간 협정체결을 통해 영원히 유엔기념묘지로 지정되어 유엔이 UNCURK(유엔통일부흥위원회)를 통해 관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유엔에 13만 m2(약 4만 평)의 토지를 유엔에 기증했고, 지금도 이 토지는 유엔 땅이다.
1974년 묘지관리를 해오던 UNCURK가 철수함에 따라 이곳에 안장된 주한 유엔군 파견 국가 대사들 대표로 구성된 재한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로 이관되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51년 조성부터 카운트 다운하면, UNMCK는 73년이나 되었고, 1974년 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로 이관 때부터 따지면, 금년이 50년이 된 곳인데 이때부터 관리처장 임명되어 내가 16대이다. 내 앞에 15분의 선배 관리처장이 지나갔다.
6월 보훈의 달, 10월 유엔의 날, Turn Toword Busan(11월 11일 11시 전 세계인들이 부산을 향해 묵념하는 행사) 등을 비롯해 연중 120회의 크고 작은 행사들이 개최된다.
일반 참배객도 연 40만 명이 유엔기념공원을 찾는다. 부산 10대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2007년 이곳이 근대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재한유엔기념공원 팸플릿은 재한유엔기념공원을 의미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재한유엔기념공원은 한국전쟁으로 희생된 유엔군 전몰장병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동시에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다음 세대가 이 공원이 가진 역사적, 외교적 가치에 공감하고 평화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나는 경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일찍 자녀 교육에 힘써 70년 초 부산 감천 국민학교로 유학 와 몇 년간 부산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 후 2014년 부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시 외교부 담당국장으로서 부산에 아세안 문화원 설립을 주도해 2017년 오픈하는데 기여했다. 또 부산에서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열렸을 땐 이번엔 행사 의전과 홍보를 맡아 회의 개최 전 1달 동안 부산에서 지냈다.
이런 인연이 닿았는지 이번에 3년 임기로 부산에 오게 되었다. 약 천일 정도 된다. 부산 천일 살기를 시작해 본다.
재한유엔기념공원(UNMCK)이라는 삶고 죽음의 경계공간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