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동, 구기동, 평창동에 오래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고 시내로 가자면 자하문위로 걸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부암동이 생활공간이다. 광화문 직장에 다닐 때 운동할 요량으로 출근길에 걸어 다닌 코스다. 빠른 걸음으로 40분이고 천천히 걷다 보면 왼쪽으로 과거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이, 오른쪽으로 인왕산이 있다. 자하문이 있는 부암동은 두 개 산사이의 협곡 같은 지형이다.
자하터널 기준으로 시내 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엔 윤동주 문학관과 서시를 돌에 새긴 시비가 있고, 그 뒤로 인왕산이 있다. 인왕산에서 부암동 쪽으로 내려오는 형태가 지네 모양을 띄고 있다 하여 지네의 천적인 닭의 형상이 자하문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내 얘기가 아니고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0 서울 편" '자하밖'에 나온 말이다.
이 일대에 35년은 살았지만 동네 역사를 모르고 그냥 귓가로 들은 이야기와 내는으로 본 풍광만으로 동네 자랑을 잔뜩 했다. 근데 오늘 유홍준 선생의 자하밖을 읽고 우리 히꼬와 함께 무계원에 왔다. 이곳은 많이 지나갔지만 무계원을 들어온 건 처음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샛째 아들 안평대군의 호를 따 무계원(안평대군의 별서, 죽 별장)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곳이 안견의 몽유도원도 배경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무계원 입구의 오동나무와 개축된 한옥 여러 채(안채, 별채, 사랑채로 구성된 한옥의 본래 건축물과 오동나무는 조선시대 마지막 내시이자 수집가였던 송은 이병직이 살던 익선동에 있었고, 2014년 이곳 무계정사 터로 이전)가 널찍한 자갈 마당에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 보니 오른쪽으로 인왕산 봉우리가, 정면으론 북악산이 보인다. 가을바람이 기분 좋게 분다.
예술도 아는 만큼 보이듯이 이렇게 유서 깊고 아름 다운 곳도 알고 보니 그 옛날 현인들이 이곳에서 시와 문장을 짓고 머리를 식히던 장소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이 근처엔 서울미술관이 들어선 석파정이 있다. 입장료가 1만 원이었는데 2만 원으로 올라 미루고 있었는데 다음은 그곳에 가봐야겠다.
저 멀리 북한산, 가까이 있는 북악산, 인왕산에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10월 마지막의 무계원이다. 내가 글을 찍고 있는 동안 우리 히꼬도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무계원 정원과 높은 산들을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