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장 후 일터인 부산서 점심 약속이 있어 이른 KTX 타기 위해 서울역으로 간다. 출근 시간과 겹쳐 버스 안은 젊은이들이 많다. 어떤 이는 어젯밤 잠을 설쳤는지 고개를 떨구고 졸고, 나머지 눈 뜬 이들은 작은 스마트폰 액정을 뚫어지게 보고 또 연신 손가락을 움직여 장면 전환을 한다. 새롭지 않은 그런 일상이지만 고개 돌려 창문밖 저물어 가는 가을 모습을 눈에 넣는 이는 드물다.
이런저런 관찰을 하는 사이에 버스는 서울역에 도착했다. 버스에 내리자 첫 번째로 오줌 냄새로 찌든 보도, 그 언저리에 나이 든 노상 거주자들이 밀려드는 인파의 눈길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문지와 박스를 깔고 자고 있다. 아침 햇살이 그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 생각과는 달리 평온해 보인다.
인근에서 하나님, 주님을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신념인지 믿음에 차 천국에 가려면 하나님을 믿으라고 고함을 지른다.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냉담 신자로 살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KTX 대합실을 지나면 계단식 쉼터가 있다. 그 계단에서 우유와 빵으로 아침을 때우며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눈에 들어온다. 많이 오고 간 이곳이지만, 왠지 오늘은 그들이 서글퍼 보였다. 나의 자화상은 아닌가 하는 연민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마음 정리를 한다.
일찍 KTX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여학생들이 우르르 내칸 쪽으로 온다. 다들 여행용 가방을 선반에 올려놓고 연신 재잘 거린다. 다들 엷은 화장에 머리도 길고 큰 키에 옷도 세련되게 입고 있어 대학생들인가 해서 옆에 앉은 인솔 선생님에게 '대학생들인가요'라고 물으니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부산으로 가는 중이라며 퉁명스레 답한다(나중에 이분이 친구하고 통화하면서 귀동냥한 것에 따르면,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이고 기차로 부산 갔다가 배로 제주도로 간 후 비행기로 서울 귀경인 모양이다).
요새는 전세버스가 아닌 KTX로 수학여행을 가는구나 하며 세상이 이제 붕괴하고 있다는 피터 자이한의 책을 다시 꺼내 들고 읽다가 여고생들의 수다가 자장가처럼 들려 졸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보니 벌써 탑승 1시간이 지나고 기차는 손쌀같이 가고 있었다.
창밖 산에는 그 무성하던 잡초 덩굴 줄기가 꺾여 말라 드러눕고 바닥마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여름을 거쳐 가을을 지나 가며 만물도 따라 움직인다. 문태준 시인이 어느 알간지에서 '이 가을의 시간이 떨어져 내리고 있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지금 재잘거리는 이 소녀들도 머지않아 버스 안 출근하는 젊은이처럼 세상 일상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