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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남아 사랑꾼 Nov 06. 2024

명화 그림 보려고 전화했어

그저 그런  부산 일상


부산살기가 달포가 넘었다. 사무실과 집 안착 때문에 해외 살 때 겪는 정착의 새로움과 호기심, 생경함, 불편함이 섞인 날들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둠을 뚫고 나오는 해운대의 아침 태양, 동백섬 해변가를 치는 흰색 비늘 같은 파도, 창문 열면 다가오는 바닷 냄새, 동백섬 아침 산책에서 들려오는 부산 사투리, 어둠이 내려앉은 해운대 해변엔 여러 장르의 버스킹, 이 모든 것이 서울도 없고 내가 여기저기 살던 외국에도 없는 모습이다.


특히 36년을 같이 산 마누라 몫으로 여겼던 아침과 저녁 먹을 궁리는 이제 혼자 살아 보는 나에겐 새로움, 생경함 그리고 불편함 모두 짬뽕이다. 어찌 그 오랜 기간 밥을 먹여주었을까 하는 생각에 세상 부인들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런저런 혼자 넋두리에 잠겨 있는데 마누라 전화가 왔다. 먼저 전화하는 법이 없고 필요하면 카톡 문자만 하던 그이기에 웬일인가 했더니 얼마 전 오래 사용해 작동이 안 되는 전화기를 바꿨는데  강제 옵션에 바흐 피아노 곡과 명화 같은 그림이 자꾸 나와 실험차 해 본다는 거다. 이런 핑계는 되지만 혼자 지내는 내 걱정에 안 하던 짓을 한다는 내 편의의 생각을 한다.


여느 때처럼 일장 잔소리가 길다. 가스 잘 잠가야 한다. 화장실 변보고 물 잘 내려야 한다. 어디 가서 말 많이 하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욕심과 욕심이 부딪혀 세상에 갈등이 많아 나이 60이 넘으면 이젠 내려놓는 연습을 남은 인생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30년이지만 본질은 욕심 내려놓기라고 한다. 누가 그걸 모르나, 머리나 가슴으로는 알지만 몸이 원초적 본능이 다른 방향을 향하니 문제지라고 나 혼자 생각하곤 말로는 '네, 네' 하며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하지만 난 내일도 모레도 이런 잔소리 듣는 전화를 은근히 기다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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