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칼로리가 ‘맛의 지표’라지만
다이어트 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유혹은 아무래도 디저트가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삼시 세끼에 먹는 음식들은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고기처럼 단백질과 지방이 많은 것들도 너무 많이 먹으면 안 좋지만, 그래도 그건 부위를 잘 선택해서 먹으면 칼로리를 많이 줄일 수 있고 또 생각보다 그렇게 열량이 높지 않다. 그리고 저탄고지 다이어트가 있듯 총 섭취 열량이 너무 많지 않다면 단백질과 지방 비중이 좀 높아지는 건 건강에 도움이 됐으면 됐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 그치만 트랜스지방과 포화지방은 예외다.)
한편 배 용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끼니에 먹을 만한 음식은 참기 쉬운 것도 있다. 다이어트라고 해서 매번 쫄쫄 굶지는 않고 평소에는 채소 중심으로 양껏 먹는다. 그러면 의외로 배가 많이 찬다. 영양 밸런스를 위해 다른 음식들도 같이 먹지만 전반적으로 건강하게 먹는 식단으로도 열량이 낮으면서도 배가 부를 수 있다. 이렇게 식사를 하면 식사 전에는 배고파서 이것저것 다 먹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어도, 정작 식사 후에는 배가 불러서 다른 음식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배부른 상태에서 또 끼니 수준의 음식을 먹기는 부담스럽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루게 되고, 그게 반복되면 결과적으로 점점 안 먹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원래 먹던 식단을 유지하면서 다른 음식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는 방법이랄까.
하지만 디저트는 다르다! 배가 불러도 디저트를 보면 갑자기 배에 없던 공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실제 실험 영상으로 증명하는 것도 봤다. 게다가 머릿속에서는 디저트는 끼니와 별개의 카테고리라는 생각에 심리적 경계가 느슨해지기 쉽다. 그리고 요즘은 디저트가 얼마나 많이 발달했는가. 비주얼도 아주 탐스럽고 맛도 달달 꼬소한 것이 끝내준다. 먹어봐서 아는 맛인데도, 아니 아는 맛이기에 더 먹고 싶어지는 것 같다.
그런 주제에 디저트들은 대부분 칼로리가 높다. 요즘은 낮은 것도 많이 나오지만 굳이 찾아먹지 않는 이상 보통 접하기 쉬운 디저트는 하나같이 칼로리가 높다. 그 성분도 정제탄수화물과 당류 비중이 높다는 건 둘째치더라도, 먹는 양에 비해 칼로리가 높다는 건 매우 안타까운 점이다. 많이 먹으면서도 칼로리가 적은 걸 찾고 싶은 다이어터들의 본능에 정면으로 반하는 비효율적인 존재들 아닌가. 허나 논리적으로는 먹어서 도움 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맛’ 하나로 모든 것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요즘은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디저트별 칼로리를 표시해놓는다. 아예 영양성분표를 제공하는 친절한 곳도 있다. 어쨌든 그걸 보면 칼로리가 정말 무시무시하다. 비주얼을 보면 침이 고일 정도로 입맛이 돌다가도 칼로리를 보는 순간 입맛이 싹 가실 정도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 눈으로만 구경하고 먹다가 이내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한편 칼로리가 맛의 지표라는 말을 들었다. 칼로리가 높을수록 맛있다는 뜻이다. 정말 공감된다. 저칼로리 디저트가 개발되고 있지만 아무래도 오리지널 디저트보다 맛이 덜한 경우가 종종 있고, 높은 칼로리의 디저트를 먹었을 때 맛이 없던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보니 카페에서 엄청난 칼로리의 디저트를 보면 과연 뭘 얼마나 넣었으며 얼마나 맛있을까 하는 배덕적인(?)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그런데 디저트의 칼로리가 얼마나 높은지 알고 있는가? 다이어트를 하는 동안 디저트를 먹을까 말까 고민하면서 칼로리를 유심히 살펴보다 느낀 건 이 녀석들, 여간 무시무시한 놈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이걸 가장 잘 느낀 계기는 끼니 때 먹는 음식과 비교해보면서였다.
자, 디저트 칼로리를 보기에 앞서 몇 가지 기준을 둔다.
- 닭가슴살 : 보통 100g 기준 110~120kcal
- 밥 : 즉석식품 백미밥 일반 사이즈 기준 약 310~315kcal
- 라면(일반) : 종류별 차이가 있지만 평균 약 500kcal. 물론 이보다 높은 것도 많다.
- 라면(건면) : 평균 약 350kcal. (라면왕 김통깨는 390kcal)
- 각종 육류 : 동물별·부위별 천차만별이지만 100g 기준 지방이 적은 건 100~250kcal, 지방이 많은 건 300~400kcal 정도. 이조차도 1인분(150~200g)이 아닌 100g 기준이다.
이번에는 카페에서 파는 디저트나 빵집에서 파는 빵들에 적힌 칼로리를 보자. 아주 간단하게 밥 한 공기 이하로 끊을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있더라도 ‘밥 대신 이걸 먹으라고? 배고프게……?’ 싶은 양일 것이다.
여기서 온갖 디저트를 다 얘기할 수는 없으니, 내 기준 디저트에 신경을 많이 쓰는 프랜차이즈 카페인 투썸플레이스와 스타벅스 정도를 예시로 들어보겠다.
[투썸플레이스]
그릭요거트 딸기생크림 : 315kcal
뉴욕치즈 : 335kcal
투썸 얼그레이 밀크티 쉬폰 : 385kcal
떠먹는 티라미수 : 430kcal
쿠키앤크림 : 435kcal
클래식 가토쇼콜라 : 470kcal
레드벨벳 : 480kcal
딸기 초콜릿 링딩동 : 490kcal
퀸즈캐롯 575kcal
떠먹는 마스카포네 딸기 생크림 : 580kcal
떠먹는 아이스박스 : 630kcal
이외에도 메뉴는 많지만, 전반적으로 300kcal를 가뿐히 넘어가고 기본적으로 400kcal대 내외에 퍼져있다. 이 정도면 ‘조각 케이크 하나 = 라면 하나 끓여서 국물 좀 남긴 정도’로 볼 수 있다. 기초대사량이 충분히 높지 않거나 총 섭취 칼로리를 많이 줄이려는 사람에게는 이 정도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치다. 게다가 당류가 많기 때문에 같은 칼로리라도 혈당이 더 빨리 많이 오르는 건 덤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스타벅스를 보면 투썸은 나름 힘 조절(?)을 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스타벅스]
The 촉촉 초콜릿 생크림 케이크 : 456kcal
마스카포네 티라미수 케이크 : 472kcal
레드벨벳 크림치즈 케이크 : 510kcal
클라우드 치즈케이크 : 532kcal
슈크림 가득 바움쿠헨 : 564kcal
부드러운 생크림 카스텔라 : 575kcal
7 레이어 가나슈 케이크 : 576kcal
마스카포네 치즈 타르트 : 610kcal
블루베리 치즈 케이크 : 670kcal
크림치즈 당근 케이크 : 795kcal
상큼한 레몬 케이크 : 870kcal
블루베리 쿠키 치즈 케이크 : 985kcal (이 글을 쓸 때는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없어졌다. 최근 비슷하게 '클래식 블루베치 치즈 케이크'가 새로 나왔지만 그것도 750kcal나 된다.)
일부 매장에서만 파는 특별 메뉴가 아닌 일반적인 메뉴들만 정리해 봐도 이렇다. 정말 압도적이지 않은가? 단순 비교를 하자면 블루베리 쿠키 치즈 케이크 하나 먹는 게 삼겹살 300g(약 1.5인분)을 구워먹는 것과 비슷하다. 크림치즈 당근 케이크 하나 먹는 게 라면 한 봉지에 햇반까지 말아먹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좋아하는 슈크림 가득 바움쿠헨은 비록 위 목록에서 중위권이지만, 칼로리만큼은 돼지 목살 300g을 구워먹거나 내가 평소에 먹는 닭가슴살과 삶은 계란과 치즈를 곁들인 샐러드를 점심·저녁 두 번 먹는 수준이다. 즉 저 디저트를 한 번 먹는 사이에 나는 무시무시한 식사를 한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다만 내 경험상 스타벅스의 디저트가 다른 프랜차이즈와 비교해서 독보적으로 칼로리가 높다. 위 목록에서 가장 칼로리가 낮은 케이크가 투썸으로 넘어가면 최소 중위권은 한다는 점만 봐도 느낄 수 있다. 안 그래도 디저트 세계는 다이어터에게 하드코어 던전인데, 그중에서도 스타벅스는 입구에서부터 엘리트 보스들이 즐비한 대악마 불지옥 수준이다. 투썸에서 레드벨벳 케이크를 혼자 다 먹어도 스벅에서 블루베리 쿠키 치즈 케이크를 친구와 반반 나눠먹는 것보다 칼로리가 낮다니……. 글을 쓰면서도 다시금 충격적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다른 곳들은 대부분 칼로리가 투썸 수준이거나 그 이하였다. 저가형 카페들도 그렇고 이제는 중~저가 이미지가 된 이디야도 비슷하다. 다만 스벅과 투썸을 제외하면 특별한 디저트 종류가 많지 않은 점이 약간 아쉬울 뿐이다. 하지만 먹고 싶은 거 다 따져가면 다이어트의 의미가 없는데 그마저라도 즐길 수 있는 건 얼마나 감사한가. 그래서 가끔씩 디저트를 먹더라도 스벅만 아니면 내 기준 크게 부담이 가지는 않는 수준이다.
어찌 보면 높은 칼로리는 맛있는 음식의 대가이자 책임이라는 생각도 든다. 마치 권리와 책임의 관계처럼 말이다. ‘디저트를 먹으려는 자, 그 칼로리를 견뎌라’ 랄까. 그렇게 생각하면 디저트를 볼 때, 먹을 때 억울한 마음이 조금은 덜해지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마음먹고 선택한 대로 먹고 즐기는 거니까. 반대로 칼로리가 높은데도 맛이 없으면 그 배신감이 배가된다. 마치 책임은 잔뜩 지워졌는데 권리는 거의 보장받지 못한 블랙기업 노동자가 된 것처럼.
한편 앞서 투썸과 스벅 예시를 들며 칼로리가 높다고 성토하듯 말했지만 사실 두 브랜드에 악감정은 전혀 없다. 오히려 다른 곳보다 맛있는 걸 많이 만들어주니 고맙기도 하다. 그리고 칼로리를 비롯한 영양성분표를 하나하나 게시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솔직해서 좋다. 특히 스타벅스가. 다이어트 하는 입장에서 모르고 먹었다가 칼로리 뒤통수를 맞으면 상당히 기분이 나쁘지만, 적어도 미리 고지된 상태라면 먹고 난 다음은 내 책임이니 불만도 없다. 그래도 스벅의 칼로리 안내표를 보면 가끔씩 “어~ 먹을 테면 먹어봐~ 이 칼로리 다 소모할 수 있으면 해봐~” 하고 도발하는 듯한 느낌을 받지만.
하여튼 디저트는 그냥 먹어도 무시무시한 녀석들이고 다이어트 하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공포스러운 녀석들이다. 그런 만큼 가끔씩 먹어서 혼내주면 그렇게 통쾌하고 짜릿할 수가 없다. 내가 평소에 먹는 것을 열심히 조절하고 관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맛있고 무서운 디저트들을 때때로 ‘먹어서 해치우기’ 위함이기도 하다.
최상의 건강을 유지하며 살려면 이런 걸 전혀 먹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난 그렇게는 못살겠다. 물론 그렇게 살면 오래 살고 건강하기야 하겠지만 저런 걸 전혀 먹지 못한다면 오래 살 이유가 없다. 건강을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가끔씩 적당히 먹으며 즐기는 것이 내 방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