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우리에게 계절을 선물하는 방법
수년 전 영국에 '냄새 자판기'란 이색적인 자판기가 등장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자판기 속의 병에는 여름휴가의 추억을 상기시키는 냄새가 담겨있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여름 냄새라. 상상만으로도 설렘이 새어 나오는 향기다.
계절에는 특유의 향기가 있다는 사실에 동감하는가? 난 무척이나 동감한다. 향기라는 우아한 말보단 냄새라는 직관적인 말이 더 어울리겠지만, 감성적인 느낌의 '향기'라는 단어가 난 더 마음에 든다. 사계절의 각기 다른 향기는 내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생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모든 사람들이 계절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거란 단순한 생각을 했던 시절, 계절마다 나는 냄새가 어떻게 다르냐며 코웃음 치던 친구에게 열심히 그 향기를 설명했던 기억이 있다. 결말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지만 아마 설명과 설득 둘 다 실패했을 것이다. 이후에도 계절이 바뀔 때면 종종 계절 향기가 대화 주제로 등장하지만 계절 향기를 설명하는 건 늘 쉽지 않았다.
지구는 돈다. 늘 돈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언제일지 모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돈다. 지구도 어지러움을 느낄까. 46억 년 동안 쉴 틈 없이 돌아온 지구는 정말 힘들었을 텐데 말이다. 코끼리 코를 하고 10바퀴만 돌아도 어지러워 방향 감각이 사라져 버리는 나로서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멈출 줄 모르는 지구의 회전이, 미안하게도 우리에겐 참 감사한 부분이다. 자전과 공전은 지구가 우리에게 계절을 선물해 주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이기 때문이다.
자전과 공전만으로 계절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우주에 있는 모든 행성에 계절이 깃들 텐데 말이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다음 단계가 남아있다. 그건 바로 자전축의 적당한 기울어짐이다. 완전히 기울어져서도, 조금만 기울어져서도 안된다. 자전축이 적당한 기울기로 기울어져야만 매일매일 지구로 유입되는 태양빛의 양이 달라져 계절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함께 태어난 쌍둥이들이 모두 같은 성격을 갖지 않는 것처럼, 함께 생겨난 태양계의 모든 행성들에게 계절의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다. 지구는 여러 형제들 중 운 좋게 적당히 기울어지게 되어 우리에게 계절을 선물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설레며 느끼는 계절 향기는 사실 당연한 결과가 아니다. 우주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칙에 더해 여러 우연이 겹쳐 생겨난 행운이다.
다른 행성에서도 계절 향기를 느낄 수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지구와 가장 유사한 환경을 가진 행성으로 화성을 꼽는다. 그렇기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화성에서도 인간이 잘 살 수 있을 거란 착각을 한다. 물론 어림없는 일이다. 쾌적한 환경을 기대하며 우주선의 문을 여는 순간 극한의 추위와 함께 질식의 위험이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테니 말이다. 우리가 화성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지구와 닮은 점은 하루의 길이와 계절의 변화뿐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다양한 환경을 가진 우주의 수많은 행성들 중에선 닮은 점이 두 개나 있는 화성이 반갑기도 하다. 특히나 계절이라는 귀한 조건을 만들어낸 화성이 기특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화성으로 가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가 화성에 첫 발을 디디는 순간이 언제 찾아올지는 모르지만 점점 그 시기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화성에서 자유롭게 거니는 세대가 우리 세대는 아닐 테지만 그 세대에게 물어보고 싶다. 화성에서도 계절 향기가 느껴지냐고. 어리석은 상상일지도 모른다. 만약 화성에서도 계절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나처럼 계절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