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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든솔 Jul 21. 2024

수성 같은 복근

수성 관측은 하늘의 별따기

"드디어 떴구나!


 행성이 보이기 시작하면 천문대 직원들은 쾌재를 부른다. 아이들에게 수십, 수백, 수천 광년 떨어진 천체들을 보여주며 몰랐던 우주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도 즐겁지만, 행성 관측은 별다른 설명 없이도 망원경에 눈만 대면 감탄사를 불러일으키며 1차원적인 즐거움을 선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행성을 보여줄 때면 한껏 올라간 어깨와 자신감에 찬 얼굴로 아이들 앞에 선다. 매년 우리는 행성이 뜨면 아끼는 자식을 기다렸던 부모의 마음으로 반긴다. 행성은 우리에게 효자 같은 존재다.


 행성 관측이 특별한 이유는 볼거리가 많아서다. 별이나 성단처럼 머나먼 곳에 있는 천체들은 작거나 흐릿하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들은 기대한 만큼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힘들다. 반면에 행성은 굉장히 가까이 있어서 '점'이 아니라 '면'으로 관측된다. 따라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행성들의 특징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특히나 금성, 목성, 토성 세 행성은 각자의 매력을 발산하며 천문대를 방문하는 모든 이들과 눈인사를 나눈다.




 금성은 해가 진 직후 서쪽 하늘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밝게 빛난다.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천체 중에선 달 다음으로 밝다. 지구에서 가장 밝게 보이는 별인 시리우스가 약 -1.5등급, 금성이 약 -4.5등급으로 밝기 차이가 약 15배 차이가 나는 걸 보면 금성이 얼마나 밝게 빛나는 천체인지 알 수 있다. 별을 보러 아이들과 함께 관측소로 올라가면 가장 눈에 띄는 녀석이기 때문에 "선생님. 저기 엄청 밝은 별이 보여요!", "오늘 저거 꼭 봐요!"라며 먼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듬직한 효자다.


 목성은 태양계의 행성 중 가장 큰 행성이다. 지구와의 거리는 금성과 비교하면 훨씬 멀지만 지구의 약 1300배나 되는 크기 덕분에 늘 밝게 빛난다. 금성만큼 밝게 빛나진 않아도 망원경을 통해 커진 목성을 보게 된다면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목성의 줄무늬를 직접 확인하는 아이들은 선생님의 우스갯소리에 다시 한번 공감한다. 교실에서 목성 사진을 보며 "저 줄무늬... 마치 삼겹살 같지 않아?"라며 종종 우스갯소리를 건네곤 하는데, 진짜 목성을 본 아이들은 "삼겹살 있어요!"라며 그제야 우스갯소리에 답한다. 그런 아이들의 목청에서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한층 두터워지는 듯한 기분까지 든다. 또한 목성을 돌고 있는 수많은 위성들 중 가장 큰 4개의 위성들도 목성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게 해주는 요소다. 목성만 잘 관측하고 돌아간다면 그날의 관측은 여러 천체들을 보는 것 그 이상의 성공과도 같다. 목성 역시 부모님께 용돈을 챙겨주듯, 꼬박꼬박 아이들의 신뢰를 챙겨주는 든든한 효자다.


 토성을 관측할 땐 아이들보단 내가 더 설렌다. 지구에서 목성까지의 거리보다 두 배 이상 떨어져 있어 그 크기가 비교적 작아 보이지만 토성에겐 너무나도 아름다운 고리가 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토성과 그 고리는 늘 대칭적으로 빛나는 원형의 천체들을 보는 지루함을 단숨에 깨뜨려버린다. 특히나 고리와 토성 사이에 있는 빈틈 때문에 마치 돼지코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돼지코 같은 토성을 보며 웃음을 챙겨간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나도 웃음이 난다. 명절에 고향집에 찾아와 재롱을 떠는 귀여운 손주 같은, 그런 효자가 바로 토성이다. 

금성 (좌측 상단) / 목성 (우측 상단) / 토성 (하단) ⓒNASA


 그리고 아주 가끔, 천문대에선 수성을 관측할 때도 있다. 수성 관측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관측하기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옛날부터 수성을 관측한 사람은 운이 좋아 수명이 늘어난다는 속설이 돌 정도다. 수성을 만나기 어려운 이유는 태양 때문이다. 수성은 태양과 가장 가까이서 돌고 있기 때문에 늘 태양빛이라는 그림자에 가려 우리와 눈맞춤할 기회를 잡지 못한다. 키 큰 배우도 센터 출신의 농구 선수 앞에서는 작아 보이는 것처럼, 나름 밝은 수성이지만 태양빛 옆에서는 그저 작은 점일 뿐이다. 태양빛을 피해 관측해야 한다는 힘겨운 미션을 이겨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성을 관측할 수 있는 기회는 분명 있다. 태양이 하루를 시작하려 하늘을 물들이기 전의 찰나와, 태양이 하루를 마치고 지평선 뒤로 숨은 직후의 순간을 노려야 한다. 너무 늦거나 너무 빨리 수성을 찾으려 한다면 망원경으로 밝은 하늘을 휘저으며 눈만 끔뻑이게 될 것이다. 마치 수십 통의 연락에도 고향집에 한 번 내려오지 않는 불효자 같은 행성이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조건 속에서 결국 수성을 찾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다른 행성들을 보았을 때처럼의 감탄은커녕 "저 수성을 봤으니까 더 오래 살 수 있는 거죠?"라는 대답뿐이다. 아이들에게 수성은 다른 행성에 비해 그리 예뻐 보이진 않은가 보다. 


수성 ⓒNASA


 꾸준히 운동을 하다 보면 몸의 모든 부분이 조금씩 커지는 것이 자연스레 보인다. 하지만 죽어도 보이지 않는 근육도 있다. 그건 바로 복근이다. 어느샌가부터 옷에 채워지며 금방 눈에 띄는 팔뚝이 금성이라면, 내게 복근은 수성 같은 존재다. 복근을 보기 위해선 태양빛처럼 강력한 뱃살을 모두 걷어내야만 한다. 옷을 입어도 티가나는 다른 부위들이 있는데 굳이 복근까지 만들어야 할까. 

다른 행성들은 별다른 부연설명 없이 보아도 좋아하는 아이들이지만, 수성을 보여줄 때면 "수성은 보기가 진짜 어려운 거라 이거 보면 오래 산대!"라는 달콤한 말이 필요하다. 수성 관측의 이유는 자체의 예쁨보단 '평소엔 보기 어렵다'라는 엉뚱한 곳에 있다. 태양빛을 가까스로 피하고 봐야 하는 수성이지만 다른 행성에 비해 큰 아름다움이 없는 것처럼, 뱃살을 어렵게 걷어내고 본 내 복근도 별 거 없을 것이다. 가끔 봐야 반갑고 귀하다. 그래서 나는 복근을 만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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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며 눈물을 머금고 올해도 나를 위로해 본다. 혹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헬스인들이 있다면 내년에는 '보면 오래 살 수 있는 근육' 따위의 이유를 붙여 복근 만들기에 성공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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