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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목 May 04. 2024

자유와 사랑, 그리고 믿음

소설(당신들의 천국)을 통한 가치의 실현

자유는 그 자체로서 가치를 지닌다. 또한 가장 얻어지기 힘든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토록 자유를 염원하고 고대해 왔던가, 거기다가 자유는 실로 많은 피를 요구하기도 한다. 자유가 주는 보상은 그 어느 것보다도 값지지만 그 대가 또한 그 자유라는 이름의 보상에 걸맞게 전혀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유만큼이나 가치를 지니는 개념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자유와 다르게 투쟁보다도 베풂으로써 믿음을 바탕에 두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이 없으면 사랑도 없으며 사랑이 없으면 믿음도 없다.

자유와 사랑, 이 두 가지의 가치는 실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소중한 가치이다. 하지만 자유와 사랑이 실천적으로 우리들의 삶과 일상에 자연히 스며들고 그 가치를 온전히 누리기란 쉽지 않은 난관들이 있다. 이청준의 소설인 (당신들의 천국)은 이 자유와 사랑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소중하고 또 그것이 우리들의 삶에 실질적으로 실천되기까지 어떤 시련이 있는지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본 작품은 나병(한센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재활을 위해서 마련된 섬인 소록도(小鹿島)에 군인인 조백헌 원장이 부임을 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 작품이다. 작가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작품은 실제 역사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차용한 작품인데 이야기의 주인공격인 조백헌 원장은 실제로 군의관 출신으로 소록도에 원장으로 부임했었던 ‘조창원 원장’을 모델로 하고 있으며 이야기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과거 이야기 속의 등장하는 섬을 천국으로 만들고자 했으나 끝내는 지옥을 만들어낸 일본인 ‘주정수 원장’은 과거 소록도에서 훌륭한 모범적인 환경 개선으로 원생들의 삶을 개진한 일본인 ‘하나이 젠키치(花井善吉)’와 그가 과로로 죽은 뒤 원장 직을 부여받은 악독한 폭정을 일삼았던 ‘스오 마사스(周防正季)’를 섞어 만든 캐릭터인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당신들의 천국)은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과 인물들을 참고한 작품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단순히 르포적인 작품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인 조백헌 원장과 과거 인물인 주정수 원장뿐만이 부수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인 ‘이상욱 보건과장’과 건강인이지만 자진해서 섬으로 봉사를 위해서 들어온 ‘서미연’, 누이 때문에 섬에 들어왔지만 오히려 나병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윤해원’, 그리고 섬의 어두운 역사를 함께한 ‘황희백 노인’ 등이 있다. 이들은 실제 역사에서는 등장하지는 않는 이청준 본인이 만들어낸 순수한 인물들이다. 작품에서는 이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섬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 왔고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어떻게 섬을 가꾸어나가야 하는지를 탐구한다.

거기서 가장 핵심적으로 등장하는 주제 의식이 바로 자유와 사랑, 그리고 믿음이다.

작품에서는 자유는 자유대로 행해지고 그 자체로서만 기능하기보다는 ‘자유에 사랑이 깃들거나, 혹은 사랑에 자유가 깃들여야만’ 비로소 온전한 자유의 가치를 발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유만이 행해진다면 배반의 위험이 있으며 자유를 얻기 위해서 투쟁은 불가피하기에 자유를 얻기 위한 과정에서 그들은 자유뿐만이 아니라 원망과 증오, 미움을 배운다. 그렇게 오랜 싸움으로 버릇된 원한은 굴레처럼 그들의 삶을 옭아매고 그들로부터 믿음을 결여 되게 만들어 버린다. 이는 지배자의 대한 경계와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고 오직 자유만을 믿는 이상욱 보건과장을 통해서 그 기능과 한계를 보여준다. 이상욱은 자유를 진심으로 행했고 자유가 승리해야만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고 했지만 결국 결여된 믿음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섬을 떠날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뿐만이 아니라 불신의 눈을 결코 걷을 수 없이 그 어떤 ‘재심’의 여지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다.

믿음이 사라진 자유는 이렇게 불신만을 낳았다. 불신은 끊임없이 타오르고 그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2부에 이르기까지 조백헌 원장을 보좌하면서도 끝끝내 그를 인정하지 못했던 이상욱처럼 말이다.

그래서 황희백 노인은 그런 이상욱의 한계를 깨닫고 자유에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말을 조백헌 원장에게 하게 된다. 진정한 사랑만이 자유를 온전히 서게 끔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주장은 이야기의 최종부에서 보다 명확하게 제시된다.

자유와 사랑은 믿음을 기초로 하고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우리들은 공동운명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자유와 사랑만 있다면 그것은 자유만 행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서는 기능을 할지 모르나 한계를 지닌다. 그 한계란 바로 실천성의 부재이다. 조백헌은 원장이었을 때와 원장이 아니게 되었을 때 섬에서의 자신의 범위의 한계를 느끼면서 이를 깨닫는다. 믿음을 얻기 위해서 섬으로 돌아왔건만 그는 이제 더 이상 원장이 아니기에, 즉 지배자의 위치가 아니기에 힘을 실현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청준은 추상적 가치들을 현실로 끌어들인다. 그것은 바로 자유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힘이 필요하다는 것, 확연한 힘의 질서 속에서 자리 잡아야만 비로소 자유와 사랑의 실천이 완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현이 초판 해설에서 제목으로 붙인 (자유와 사랑의 실천적 화해)가 이 뜻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실천은 말에 앞선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사랑과 믿음과 윤리는 그 말 자체로도 아름답고 뜻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실천이 없다면 그 개념의 가치들은 현실에 실현될 수가 없으며 막연한 관념으로밖에 존재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힘이 필요한 것이고 실천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그를 통해서 그 가치들을 실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

가치의 실천이야말로 실로 인간이 가장 진실되고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먼저 그 가치들에 대한 사유를 게을리해서는 안되고 자신을 자각하고 성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끝없는 성찰을 통해서 스스로를 알고 세상과 화해를 모색하고 운명을 함께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조백헌 원장의 변모를 통해서 이청준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가치의 실현 가능성이자 자유와 사랑과 믿음에 대한 주제 의식이며 한 가지의 대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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