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그 외의 인물들
<죄와 벌>을 보다 보면 주인공인 라스콜니코프와 소피아 외에도 주목할 만한 인물들이 눈에 띈다. 각 인물들도 각자의 내면의 슬픔과 고민이 있다. 먼저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읽으면서 눈에 띄는 인물은 바로 마르멜라도프 가족이다.
주정뱅이이자 제대로 된 돈을 못 벌고 있는 세묜과 명망 있는 집안의 딸이었으나 지금은 궁핍하게 허덕이고 있는 카체리나, 그리고 그녀의 딸과 아들은 가난의 고통을 지독하고 서글프게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 인상 깊은 부분은 바로 카체리나이다.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는 가난으로 인해서 셋방의 집세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자식들의 옷도 입히지 못하고 있는데도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딸 폴리냐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어린 시절 숄을 두르고 춤을 춘 것으로 받은 상장을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다. 이 상장은 카체리나라는 인간을 상징하는 것으로 나름대로 가난할지언정 인간으로 있고 싶다는 마음을 보여준다.
큰딸인 폴리냐도 왠지 마음이 가는 인물이다. 그녀가 라스콜니코프에게 보인 포옹과 미소는 어쩌면 소피아와 함께 라스콜니코프가 사랑을 깨닫게 한 소중한 것들 중 하나일 지도 모른다. 그 뒤로 라스콜니코프에게 벌어지는 변화를 생각한다면 더욱이 말이다.
셋방의 인물들 중에는 레베자트니코프라는 청년도 있다. 그는 코뮌주의자로 저속하고 경솔하며 아둔한 면이 있지만 불의에 대한 저항심과 거부감도 있다. 그는 루쥔이 소피아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헐 때 그를 고발했다. 그 장면에서 볼 수 있는 점은 경솔하고 어리석은 이의 선량함이다. 그가 조금은 이상할지언정 그는 선에 속한다. 그것이 중요하다. 선의 손을 잡고 있는 한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
선량한 인간 하면 라스콜니코프의 든든한 친구인 라주미힌 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소피아와 함께 헌신적으로 라스콜니코프를 돕는다. 헌신에 대해서는 앞서 설명했듯이 자의적인 희생이 필요하다. 그런 희생을 무릅쓸 만큼 라주미힌은 선량한 인간이다. <죄와 벌> 해석의 제목에 축복받은 죄인이라는 표현이 쓰인 것은 아마도 라스콜니코프의 곁에는 소피아와 라주미힌이라는 든든한 존재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잘 만든 인물이라고 생각이 드는 인물은 스비드리가일로프다. 서사 내부에서 스비드리가일로프는 흡사 정욕의 화신처럼 묘사되고 온갖 소문을 달고 다니는 사내이다. 그 소문들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확실하게 알 방도가 없지만 본인은 그런 소문들을 부정한다. 그러니까 이 인물은 여러 레이어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가장 본질적인 자신(두냐를 향한 진실된 사랑을 품고 있는 자신)과 그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이 그리고 있는 스비드리가일로프라는 두 번째 레이어, 마지막으로 이를 통해서 독자가 스비드리가일로프를 보게 되는 세 번째 레이어까지.
그러나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변화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두냐에게서 본래의 방식, 즉 정욕의 화신이었던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한다. 거기서 그의 변화가 시작된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지금까지의 자신에서 벗어나 새로운 존재가 되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이전과는 다른 시간을 채운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라스콜니코프와 비슷하다. 그리고 이들이 사랑을 통해서 변하는 것 또한 비슷하다. 사랑의 힘이란 이토록 불가사의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이다.
<죄와 벌>에서는 다양한 인간들이 다른 소설에서보다도 유동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타고난 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