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고골의 <코>, <외투>
사람은 자신이 속한 곳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와 동시에 그 누구의 신경도 쓰지 않고 자유롭고자 하는 마음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는 자신의 일로부터 성취감을 얻고자 하는 것에서 사회와 인습이 정한 인간의 가치의 척도의 고압적인 자세에 괴로워하거나 자신이 톱니바퀴 굴러가듯 좁은 틈새에 답답하게 끼여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면 막연하게 자유를 갈망하거나 해방되고 싶을 때 두드러진다.
니콜라이 고골은 단편인 <코>와 <외투>에서 일찍이 인간이 지닌 불안정한 마음과 사회의 강압적이고 타산적인 면모를 예리한 시선으로 도려내어 자신만의 환상성을 덮어 부조리하면서도 유쾌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먼저 <코>를 살펴보자면 단편 <코>는 특이한 소설이다. 어느 날, 이발사인 이반이 아침을 먹기 위해서 빵을 쪼개는데 그 사이에서 8 등관 코발료프의 코가 나온다. 그것을 본 이반의 부인은 펄쩍 뛰면서 화를 내고 이반은 코를 처리하기 위해서 강물에 빠뜨리지만 경찰에 들키고 만다. 이후 코발료프는 코를 잃어버려서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그런데 그런 난관 속에서 자신의 코가 자신보다 훨씬 높은 5 등관 행세를 하면서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본다.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다가 어느 순간 마치 꿈에서 깬 것처럼 코는 원래대로 코발료프의 얼굴로 돌아온다. 이 기이하면서 엉뚱한 이야기에는 고골 특유의 사회적인 비판과 신랄함이 담겨있다.
5 등관과 8 등관이라는 숫자로 인간의 가치가 척도화 되는 관등사회는 인간의 가치를 단순화하고 다른 요소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8등 관인 코발료프가 자신의 코를 마주했음에도 불구하고 5 등관이라는 제복 때문에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웃픈 상황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관등이 인간의 가치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나 관등이 반드시 이토록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다. 관등을 얻기 위해서 성실하고 노력을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고골은 단순히 어떤 사람은 5 등관이기 때문에 5 등관이고 어떤 사람은 9 등관이기 때문에 9 등관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의 불공 편한 처우를 말하는 것이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광인일기>에서 주인공인 포프리신은 어째서 자신은 장군이 될 수 없는지에 대해서 한탄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와 같은 묘사도 고골의 생각을 보여준다.
또 <외투>라는 단편에서도 이런 웃픈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일에 소임을 다하는 9등 관인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장서를 하는 서기이다. 그는 항상 자신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는 작은 사람으로 다른 관리들이 놀리거나 비웃어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일에서 소탈한 행복과 만족을 찾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순진하고 선량한 사람이지만 그가 사는 페테르부르크의 혹한은 그가 입고 있는 오래되고 낡은 외투로는 추위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탓에 결국 그는 외투를 새로 장만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문제는 외투의 비싼 값이었다. 그가 일 년에 받는 급료는 400 루블이었는데 외투 하나의 값은 80루블이나 되는 것이었다. 조금 싸게 한다고 해도 여전히 엄청난 부담이 되는 금액이어서 아카키는 외투를 사기 위해서 저녁을 굶거나 구두를 덜 닳게 하기 위해서 까치발을 하면서 걷거나 하는 절약을 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생활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된다. 그에게 삶의 목표가 생긴 것이다. 아카키는 생기를 띄게 되고 새롭게 입을 외투를 상상하면서 기쁨과 기대를 느낀다. 그렇게 마침내 외투를 얻게 된 그는 기분 좋게 거리를 걷거나 동료들의 축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외투를 장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외투를 강도에게 빼앗기게 된 것이다. 깊은 상심에 빠진 그는 외투를 다시 찾기 위해서 경찰서장과 고위 인사를 찾아가지만 그들에게 모함만 받게 되고 충격을 받은 아카키는 혹한의 거리를 돌아다니다 열병에 걸려 죽게 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뒤, 페테부르크의 거리에서는 계급과 관등에 상관없이 외투란 외투는 전부 빼앗아버리는 유령이 돌아다니게 된다. 그리고 아카키에게 모함을 줬던 고위 인사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그 유령을 만나게 되고 공포에 질린 그는 외투를 유령에게 던져 주게 된다. 그 후로 유령은 나타나지 않았다. 외투가 유령에게 딱 맞은 것이다.
여기서도 고골의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읽어낼 수 있다. 소심하고 과묵하지만 선량한 아카키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장난을 통해서 사회의 관계의 날카로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보다 낮은 사람을 거칠게 하대하는 고위 인사를 통해서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을 볼 수 있다.
사람을 온전히 사람으로서 대하지 않고 그에게 달린 어떤 숫자나 수치로만 그를 취급하는 사회는 회색사회이다. 그 사회의 색은 오직 하나이며 그 외의 색은 존재할 수 없으며 존재한다고 해도 좋은 색이 아니다. 그런 회색사회에서 다른 색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아카키처럼 소심한 작은 사람들은 장난감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도시의 장난감 병정들은 망가지든 부서지든 아무도 그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직 단 하나의 색을 위해서 이토록 잔혹해지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코>와 <외투>는 기발한 소재를 통해서 사회를 단순하게 비판하지 않고 유쾌함의 가면을 쓴다.
약한 인간들, 우리는 사회라는 거대한 거인 앞에서는 약한 인간이 된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든 간에 마찬가지이다. 그럴 때, 고골은 웃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웃음은 잠깐동안이라도 자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체호프의 비관 속의 긍정과도 어느정도 맞닿는 점이 있다.
고골이 특별한 작가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는 결벽에 가까운 도덕적 강박을 지녔기 때문에 편집증적인 정도로 사회의 숨은 범속성을 날카롭게 통찰하는 작가였다. 그러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희극과 웃음이라는 요소와 환상성을 뒤섞여 웃기면서도 생각을 하는 만드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어떤 작가는 그 작가이기 때문에 읽는 작가들이 있다. 예를 들어 도스토예프스키는 도스토예프스키이기 때문에 읽는다. 고골도 고골이기 때문에 읽는 작가이다. 그의 개성이 대체 불가이기 때문에 매력적인 것이다.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 분하고 가끔씩 신랄함에 빠져 한바탕 웃고 싶다면 고골의 <코>와 <외투>는 짧으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