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것 1
다음날, 루드의 집으로 의사 선생님이 왔다. 어제 모메와 나눴던 대화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왔다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이 모메와 함께 루드의 방으로 들어오자 루드는 다시 화가 났다.
의사 선생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루드의 몸을 살폈다. 그의 두 손에는 온화한 배려가 묻어 있어서 화가 난 루드라고 해도 차분해지는 힘이 있었다. 천천히 진찰을 마친 의사 선생님은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음. 좋지 않군요. 입원해야 합니다.”
의사에 말에 차분했던 루드는 다시 화를 냈다.
“나는 입원하고 싶지 않아!”
“입원을 하지 않으면 더 심각해질 겁니다.”
의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모메는 의사 선생님과 할아버지를 번갈아 돌아보았다. 둘 다 만만치 않게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의사 선생님은 청진기를 착용한 채로 한 손은 루드의 해진 이불에 대고 또 다른 손은 안경을 들고 있었다. 그의 눈에 의지가 엿보이기 시작하자 루드는 회색 눈을 창밖으로 돌렸다. 창밖에는 벌써 태양이 햇빛을 쬐고 있었다. 초봄의 밝은 빛이었다.
“입원하셔야 합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에 루드는 차라리 입을 다물기로 결심했는지 고개를 돌리고는 팔짱을 끼고 가만히 있었다.
“지금도 좋지 않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일이 날 겁니다.”
루드는 가만히 있었다.
“모메씨를 위해서라도 입원하셔야 합니다. 입원을 하면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루드는 여전히 가만히 있었다.
“입원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목청을 높여 말했다. 루드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는 고개를 휙 돌리더니 베개를 안고는 소리쳤다.
“나는 살고 싶지 않아! 너무 아프단 말이야!”
깜짝 놀란 모메는 눈을 크게 뜨고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루드는 소리를 지르면서 베개를 의사 선생님에게 던졌던 것이다. 베개에 맞은 의사 선생님의 얼굴에서 청진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의사 선생님의 코에서 붉은 방울이 떨어졌다. 모메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루드는 살짝 당황했는지 회색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두 손이 떨렸다. 의사 선생님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코를 닦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신을 차린 모메가 거듭 사과를 했다. 의사 선생님은 다시 미소를 지으면서 모메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가방에 청진기를 넣고는 문으로 향했다. 문밖으로 나가면서 그가 말했다.
“어쨌든 입원은 하셔야 합니다. 언제라도 병원은 열려 있으니 마음이 바뀌시면 찾아와 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돌아가자 모메는 화가 나서 루드에게 말했다.
“왜 그렇게 화를 내?”
루드는 할 말이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이불을 꼼지락 거리기만 했다. 모메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로 문밖으로 나갔다. 루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구름이 태양 곁을 지나가는지 방 안이 그늘졌다. 음영이 진 방 안에 루드가 외롭게 있었다.
루드에게 화를 내고 난 후에 모메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원래라면 하지도 않을 실수를 두 번이나 했다. 반죽을 하는데 소금을 넣지 않거나 계란 껍데기를 실수를 넣기도 했다. 빵집 주인이자 훌륭한 제빵사인 쿠르는 모메의 수심 가득한 표정을 보고는 할아버지와 싸웠다는 것을 알아챘다. 루드가 아프고 그 때문에 화를 자주 낸다는 사실은 모메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나 고양이들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쿠르는 조용히 모메 곁으로 와서는 모메의 제빵사 모사를 벗겼다. 깜짝 놀란 모메는 뒤를 돌아봤다. 쿠르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녀의 모자를 푹 하고 접었다. 모메는 슬픈 표정으로 쿠르를 응시했고 쿠르는 주머니에서 작은 쿠키를 하나 건넸다.
“생강쿠키.”
쿠르가 건네준 쿠키를 먹고 모메는 두려운 마음을 쿠르에게 조심스럽게 건네는 것처럼 조바심이 나고 초조함으로 얼룩진 얼굴을 들어 키가 큰 쿠르에게로 향했다. 쿠르는 그 두려운 마음을 따스하게 받아주는 것처럼 두 손을 내밀었다. 모메는 쿠르의 포근한 품에 안겼다. 쿠르에게는 언제나 진한 버터향이 기분 좋게 풍겼다. 그의 품에 안기면 마치 갓 구운 거대한 빵을 껴안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쿠르는 모메가 어쩐지 딸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난해 겨울에 쿠르의 딸은 남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혼자 남겨진 쿠르는 예전보다 더 바쁘게 지내기로 했다. 쿠르는 가끔씩 추운 날에 오한이 드는 것처럼 외로움에 떨었지만 모메나 함께 일하는 늙은 고양이 준 덕분에 잘 이겨낼 수 있었다. 특히 모메의 주끈깨는 자신의 딸과 거울을 통해서 본 자신의 얼굴을 떠오르게 만드는 것이었다. 쿠르의 딸은 모메보다 두 살이 많았는데 모메보다는 작았다. 그 점은 쿠르보다는 아빠를 닮은 것이었다. 쿠르는 모메를 보면서 작은 위로를 얻었는데 그 위로의 달콤한 맛은 자신이 지금껏 만들어 왔던 그 어떤 초콜릿보다도 달콤한 것이었다. 쿠르는 모메에게 물었다.
“할아버지가 또 화를 냈니?”
“의사 선생님에게 베개를 던졌어요.”
“아......”
쿠르는 루드에 대해서 무어라 말하려고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쿠르는 루드와 아는 사이였다. 쿠르가 처음 마을에 빵집을 열었을 때, 활발하게 화가로 활동하며 마을 곳곳을 일하러 돌아다니던 루드가 그녀의 새로운 빵집의 간판을 그려줬던 것이다. 그 간판이 아직도 쿠르의 빵집에 붙어 있었다. 여기저기 낡고 금이 갔지만 아직은 선명했다. 그 뒤로도 쿠르는 루드와 몇 번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으며 언제는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지친 몸을 이끌고는 가게를 정돈하고 늦은 발걸음을 서두를 때, 밤하늘에 뜬 푸른 달빛을 지붕에서 바라보고 있는 루드를 바라본 적이 있었다. 루드는 달빛을 받아 환한 얼굴을 하고는 반짝이는 은하수를 담은 것과 같은 총명한 눈을 달빛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쿠르는 조금은 신기했다. 루드는 화가로 지내던 시절에도 어딘가 시큰둥하고 무뚝뚝한 면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심하고 무정한 모습만 기억하고 있던 쿠르에게 그 광경은 과연 루드도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고양이들이나 사람들은 상처를 받거나 공격을 받으면 쉽게 화를 낸다. 아빠를 닮은 그녀의 딸도 화를 잘 냈다. 딸도 무척이나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쿠르는 과거에 대한 상념에 잠기다가 문득 자신도 늙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병으로 고생하고 괴팍해진 루드를 생각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쿠르는 모메에게 위로를 건넸다. 하지만 모메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눈빛으로 쿠르를 봤다. 쿠르는 자신이 직접 루드에게 찾아가서는 큰소리로 ‘병원에 입원하세요!’라고 외치는 상상을 했다. 그녀는 답답한 순간에 당도하면 그 문제를 외면하거나 회피하기보다는 직접 부딪혀서 해결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그러나 그러지는 않았다. 모메에게 더 큰 걱정을 안겨 주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루드는 덩치가 큰 쿠르를 은근히 두려워했다. 화가시절에도 다른 고양이들이나 사람들한테는 거칠게 굴어도 유독 쿠르 앞에서만큼은 겸손해지고 유순해졌다. 왜 그런지는 쿠르도 잘 몰랐다.
“할아버지가 잘못되면 어떡하죠?”
모메가 안고 있는 두 손을 떨면서 쿠르에게 물었다.
“걱정하지 마. 루드 씨는 병원에 갈 거야.”
“그래요? 어째서요?”
“소중한 사람 때문에.”
“할아버지가 절 소중히 여길까요?”
모메가 침울하게 물었다. 쿠르는 잠시 허공의 천장을 응시했다. 천장에서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가 보였다. 아직은 겨울의 잔향이 남아있는 초봄이라 선선한 바람 덕분에 더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빵집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이곳에는 초봄의 시원한 미풍도 접근하지 못하는 무더운 열기가 있었다. 하루종일 선풍기를 돌려도 빵집에 있는 사람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일순간 쿠르의 머릿속에 루드가 모메 얘기를 할 때, 유일하게 활짝 웃었던 기억이 났다. 그에게 손녀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그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게 해 주는 존재였다. 어린 나이에도 밝게 빛나며 작은 일에도 기쁘게 웃어주는 모메를 루드는 행복을 느끼며 바라보았다. 모메는 어린 시절부터 루드와 함께 지냈다. 모메의 부모는 서쪽의 섬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둘은 과학자였는데 중요한 연구로 항상 바쁜 탓에 모메와 놀아줄 수가 없었다. 편지를 보내지만 자주 오지는 못했다. 정말 가끔씩만 올 수 있었다. 그래서 모메는 부모와의 기억보다도 할아버지와의 기억이 더욱 많았다. 쿠르는 오랜 시간 동안 친구도 없이 외롭게 살아온 루드가 밝은 손녀 덕분에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았는지, 그리고 그가 얼마나 손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분명히 모메는 루드에게 소중한 사람이 분명했다. 또한 쿠르에게도 모메는 이제 소중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쿠르는 아까보다 더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하지!”
쿠르의 강한 말에 모메는 살짝 위로를 얻은 듯 그 뒤로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사실 모메는 성숙하면서도 동시에 미숙했다. 올해로 열아홉 살이 되지만 감정을 대하는 태도는 풋풋한 면이 있어서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에는 종종 예의 마을 사람들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모메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모메는 성숙해지고 싶어 했다. 자신이 감정에 잘 휘둘린다는 사실이 못마땅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쿠르의 용기 어린 격리로 그 부분은 어느 정도 극복을 했다. 감정에 투철한 것은 솔직하고 마음이 맑은 덕분이라는 쿠르에 말에 힘을 얻은 것이다. 맑은 마음. 솔직하고 맑은 마음, 모메는 그 말이 좋았다. 모메는 솔직한 것이 좋았고 맑은 것도 좋았기 때문이다. 슬픔이 오거나 아픔이 와도 솔직하고 맑다면 잘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자신에게는 오지 않았지만 할아버지에게 아픔과 슬픔이 왔을 때, 그녀의 솔직하고 맑은 마음은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인 것 같기도 했다. 모메의 솔직한 말에 루드는 고개를 푹 숙이거나 울적해져서는 침대에 가서 이불을 덮고 종일 누워 있었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모메는 걱정이 되었다. 하나 거짓말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거짓말은 더 큰 상처를 남긴다. 당장은 그렇지 않더라도 반드시 언젠가는 거짓말의 말들이 돌고 돌아서 상처로 돌아올 것이다. 이는 모메가 살면서 배운 많지 않은 것들 중 하나였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모메는 점차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뜨근한 것이 머리로 흐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모자를 벗었다. 모자의 왼쪽에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그녀는 구멍에 눈을 가까이 갖다 댔다. 구멍을 통해 본 세계는 어둠이 다스리고 있는 세계였다. 모든 것이 그늘에 갇혀 있는 것처럼 어둑했다. 무서운 마음이 들어 모메는 구멍에서 눈을 떼었다. 하늘은 아직 밝았다. 태양이 조금 서쪽으로 기울긴 했지만 아직도 태양은 부지런하게 자신의 빛을 마을에 나누어 주고 있었다. 조각구름들이 푸른 하늘을 오고 가고 있었다. 구멍 속 세계와는 다르게 두 눈으로 보는 세계는 낮의 세계이자 빛의 세계이다. 이곳은 모메가 사는 세계다. 모메는 다시 구멍에 눈을 갖다 댔다. 빛의 세계가 가고 그늘이 진 어둠의 세계가 나왔다. 그곳은 왠지 춥고 슬픈 듯 보였다. 모메는 어쩌면 이곳은 할아버지가 보는 세계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눈을 떼자 다시 세계는 낮의 세계, 빛의 세계가 되었다. 모메가 사는 세계다. 순간, 모메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집으로 뛰어갔다. 아침에 의사 선생님과 소동을 부리고 화를 낸 뒤 그대로 나와버린 후에 남겨진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모메는 할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살기 싫어하는 할아버지에게 유일하게 소중한 사람도 없다면 그 추운 어둠에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모메는 미안함을 품고 뛰어간다. 솔직하고 맑은 마음으로 말이다.
집에 도착하자 해가 기울어서인지 어둠에 반쯤 가려진 붉은 집이 눈에 들어왔다. 어둠에 잠긴 부분에는 루드의 방이 있었다. 모메는 집으로 들어가면서 곧바로 계단을 올라 루드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활짝 열며 루드의 이름을 불렀다. 루드는 침대에 있지 않았다. 당황한 모메는 곧바로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거실은 어두웠다. 모메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구운 감자 냄새가 났다. 부엌에서 나는 냄새였다. 그녀는 곧장 부엌으로 달려갔다. 부엌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그곳에 루드가 있었다. 모메의 긴 앞치마를 접어서 두르고 루드가 잔기침을 하면서 감자를 요리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요리를? 왜?”
“작년에도 요리를 했는데.”
“하지만 아프잖아.”
모메가 모자를 들고 다가오며 말했다. 모자의 구멍이 루드에게도 보였다.
“모자에 구멍이 났네.”
“응.”
“새로 사야겠네.”
“응......”
모메는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참으며 루드를 끌어안았다. 루드는 숨이 막혔지만 아픔보다도 그 숨 막힘이 더 나았다. 이 숨 막힘에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옆에서 감자가 모락모락 김을 내뿜고 있었다. 둘은 식탁에 앉아서 저녁을 먹었다. 먹는 동안 둘 사이엔 말이 오가지 않았다. 루드도 모메도 아무 말도 없이 감자를 먹었다. 저녁을 먹고 루드는 또다시 아픔을 호소했지만 침대에 눈을 감고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당겼다. 빨리 잠들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아픔이 더욱 극심해졌다. 여태껏 이토록 극심한 고통을 느낀 적은 없었다. 심장을 누군가가 꽉 쥐고는 흔드는 것 같았고 몸 여기저기를 장미가시로 찌르는 것 같았다. 머리가 뜨겁고 어지러웠다. 갑자기 더워진 루드는 이불을 팽개치고 몸무림을 치기 시작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파서 그는 소리를 질렀다. 자기도 모르게 낸 소리에 당황한 루는 자신의 소리가 손녀에게 들리지나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소리는 힘 없이 꺾여서 방문까지 가기도 전에 급속도로 희미해져 버렸다. 수차례의 번개와 같은 고통이 머리를 통해서 발끝까지 전해지자 루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제발 그만!’이라고 루드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고통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숨이 거칠어지고 비틀비틀거리면서 계단 쪽으로 향했다. 세면대로 가기 위해서다. 계단을 내려가려고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계단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시야가 흐려졌다. 루드의 눈에는 수도 없이 오르내린 계단이 흐물흐물해 보였다. 거친 숨을 토해내면서 발을 한 발짝 디디는 순간에 잠이 든 것 같이 어둠이 그에게로 찾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