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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목 Jul 20. 2024

전쟁이여 잘 있거라 1

<전쟁과 평화>에서의 전쟁의 묘사

   <전쟁과 평화>애 대하여

   <전쟁과 평화>는 톨스토이가 쓴 흔히 알려진 대표적인 세 편의 장편소설(안나 카레니나, 부활, 전쟁과 평화) 중 역사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톨스토이의 방대한 시야를 느낄 수 있다. 

작가가 쓰는 소설은 어느 공간과 시간을 다루든 간에 작가의 시야에 의해서 범위가 정해진다. 똑같은 집을 배경으로 다룬다고 가정을 해도 작가에 따라서 현관문에서부터 거실까지 만 일지 이층부터 시작하여 옥상의 작은 발코니의 걸린 넝쿨까지 일지가 달라지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매우 거시적인 작가였다. <전쟁과 평화>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점은 서사의 방대함보다도 이 거대한 시선의 범위였다. 그는 뛰어난 필치로 온갖 러시아 귀족사회의 인물들을 그려냄과 동시에 사건을 다룬다. 이 모든 일들이 격리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유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대로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경우는 미시적인 작가로 한없이 정교하고 깊게 어떤 인물이나 현상에 깊이 들어가는 작가였다. <죄와 벌>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주인공인 라스콜니코프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래서 <전쟁과 평화>와 비교해 보면 두 작가의 전개방식이 어떻게 다른지를 느낄 수 있다. 어쨌든 톨스토이의 작가적 감각 덕분에 <전쟁과 평화>는 군상극의 아주 모범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과 평화>의 전쟁에 대한 반응과 묘사

<전쟁과 평화>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 소설로 전쟁에 참전하는 젊은 귀족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작품에는 크게 다섯 가문이 등장하는데 드루베츠 코이 가문과 베주호프가문, 쿠라긴가문, 로스토가문이다. 각 가문들의 젊은 청년들은 전쟁에 크게 동요하며 젊음으로 빛나는 명예에 대한 열망과 야망으로 강한 참전의사를 밝힌다. 볼콘스키가문의 안드레이 공작이나 로스토프 가문의 니콜라이 같은 경우가 그렇다. 안드레이는 나폴레옹을 내심 동경하면서 그에게도 자신만의 툴룽(나폴레옹이 두각을 드러낸 전투)이 나타나주길 바라면서 기대감에 차 있다. 니콜라이도 마찬가지로 어떤 강한 무언가를 기대하는 마음을 품고 전쟁에 참여한다. 그러나 전쟁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내와의 싸움과 혹독한 자연의 채찍질, 더러운 진창과 같은 지형과 상황들은 그들에게 자존심을 버리도록 요구하고 거기다 더해서 무질서와 혼돈이 감도는 대열은 짜증과 신경질을 부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투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프랑스군과의 대면에서 니콜라이는 칼을 빼들고 그들을 베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는 말에서 떨어져 사경을 헤매고 기적적으로 러시아군에게 구조를 받는다. 그가 바라던 전쟁은 명예롭거나 숭고한 것과는 거리가 먼 말 그대로 진흙탕에서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고 끈질기게 찌르고 피를 흘리고 그 피가 섞인 진창에서 뒹구는 고통스럽고 끔찍한 광경 그 자체였다. 그 사실을 니콜라이는 막연히 깨닫는다. 포탄이 날아들고 짙은 안개로 누가 아군인지조차 분간이 제대로 되지 않는 곳에서 싸움을 하고 파편이 튀기고 부상자들이 신음하고 사상자들이 널브러져 있는 전장은 그야말로 죽음의 순간들이 가득한 장면이며 지옥을 방불케 한다. 안드레이 공작도 부상을 입고 땅에 누웠을 때 광활한 하늘을 보며 이를 깨닫는다. 멀리서 본 하늘, 단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푸른 하늘을 보자 그는 이 전쟁이 얼마나 무익하고 끔찍한 일인지를 깨닫는다. 멀고도 모두에게 동등하며 무한하게 펼쳐져 있고 광활하고 웅대하며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우지 못할 푸른 하늘과 비교해 보면 이 전쟁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보잘것없고 해로우며 고통스럽고 짜증스럽다. 안드레이 공작은 이후 자신이 그토록 동경하던 나폴레옹과 마주했을 때도 하늘의 이러한 인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전쟁과 평화>의 1권은 러시아 군이 패배한 아루스터리츠 전투에서 끝난다. 앞서 감상적이게 말한 마지막 부분은 <전쟁과 평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였다. 사실 전쟁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우리에게 깨닫게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이성적으로나 말로는 전쟁이 무시무시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해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로는 약간의 관념상의 이물질이 끼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전쟁은 마치 엄청나게 멀고도 먼 일처럼만 여겨지는 일종의 정서적인 벽이 있는 것도 한몫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분명 끔찍한 것이며 결코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이 말이 진부하게 들리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전쟁의 어두움을 제대로 아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전쟁과 평화>을 보면 전쟁의 무서움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여기서는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가만히 서성이다가 혹은 무언가를 준비하다가 혹은 유쾌하게 수다를 떨다가 죽음을 맞는다. 단말마도 남기지 않고 일순간 사라져 버린 것처럼 순간적으로 죽음이 찾아오는 전장이 평온한 자연 속에서 이루어진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죽는다는 것은 전쟁의 무서움 중 하나이다. 


톨스토이는 전쟁에 일상성을 부여한다. 병사들의 대화나 장교 간의 대화, 보병과 포병 간의 신경전이나 장군의 짜증이나 만성적인 피로와 유쾌한 농담들이 잔뜩 등장하고 이는 전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열이 흩트러져서 서로가 욕을 하고 화가 잔뜩 나거나 흥분에 도취되는 광경들은 전쟁을 벌이는 모든 이들도 결국은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마치 장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나 조금만 더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그 끔찍한 이면을 볼 수 있다. 비일상의 일상화는 <전쟁과 평화>의 사실적인 묘사의 밀도를 높여줬다. 

<전쟁과 평화>는 방대한 소설이기에 전쟁과 역사뿐만이 아니라 사랑과 세속적인 이야기들도 등장하지만 1권은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전쟁에 대한 이야기들을 했다. 그리고 전쟁이 언제나 우리에게는 가까이 있기에 더욱이 <전쟁과 평화>을 읽는 것은 우리의 무뎌진 전쟁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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