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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목 Aug 03. 2024

새들의 편지

기다림

때는 2월의 막바지로 아직은 여전히 문을 열면 차가운 바람이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와 발을 오슬오슬 떨리게 만들었기 때문에 아루씨는 어쩔 수 없이 창문을 닫았다. 창밖에는 구름들이 줄지어 하늘을 꼼꼼하게 메꾸고 있었고 그 아래로 나무의 가지들이 보인다. 멀리에는 숲이 보였는데 숲의 나무들도 가지만 남아있었기에 그런 가지들이 얽혀서 복잡한 미로 같았다.

아루씨는 창밖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의 방은 2층이었고 남쪽으로 나있어서 전망이 좋았다. 특히 신록이 푸르고 맑은 하늘에 태양이 쨍쨍하고 따스한 미풍이 불어와 커튼을 살랑살랑 간지럽힐 때면 아루씨는 커다란 행복을 느꼈다. 그 행복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으로써 그녀의 감정들 속에 괴로움들을 쓸어보네 주었다. 또한 갖가지 꽃들이 1층의 관목들 사이에서 은하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아루씨는 꽃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의 상큼하고 아름다운 백성들이여. 그대들이 나에게 이토록 따스한 행복을 선물해 주니 정말로 고맙구나. 나 역시도 그대들에게 축복이 스며들기를 간절히 기도할 것이다.’

아루씨는 꽃의 공주로서 꽃들을 위해서 항상 기도를 했다. 기도는 사계를 가리지 않고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기도들을 통해서 꽃들이 더욱 무럭무럭 자라났고 해마다 꽃가루를 날려 세계 곳곳에 꽃들을 배달했다. 달콤한 꿀들을 운반하는 꿀벌들이 그 일을 착실하게 수행했다. 꽃들은 봄부터 시작하여 가을에 이르까지 열심히 자신들의 직무를 수행했고 초겨울이 되면 사그다 드는 불꽃처럼 하나둘씩 지상으로 떨어졌다. 아루씨는 사그라드는 꽃들에게 슬픔을 느꼈지만 이는 자연의 순리로써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었다. 아루씨는 꽃의 공주로서 사그라드는 꽃들에게도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겨울은 모든 푸른빛들을 사라지게 만들고 풍성했던 잎새들마저도 전부 날려버린다. 아루씨는 그런 무자비한 겨울에 조금은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냉랭하고 차가운 겨울을 향해서 이렇게 생각했다.

‘겨울은 지나치게 차갑고 정이 없어. 색감이 마음에 들지만 나머지는 별로야.’

그러나 겨울은 언제나 한 번씩 찾아오는 손님이었다. 이번 겨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아루씨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아루씨에게 새들이 편지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그 편지는 새들의 왕자 루다씨가 아루씨에게 보낸 편지로 그녀를 보고 싶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루씨는 편지를 읽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편지에 답장을 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편지에 쓸 내용이 마음속에서 떠오르지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는 항상 마음속으로 다양한 생각들과 감정들을 품고 있었며 필요할 때마 마음속에서 마음껏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을 꺼내서 사용할 수 있었다. 근데 이번만큼은 그러기 어려웠다. 아루씨는 생각했다.

‘왜 이럴까? 나는 루다씨에게 나의 마음을 보내주고 싶은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이야기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혹시 겨울 때문인가? 그렇다면 어떡하지? 겨울이 끝나려면 아직도 한 달이나 남았는데......’

그녀는 걱정이 되었다. 지금 즈음 루다씨는 따뜻한 곳에서 편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만약에 편지가 오지 않는다면 그는 크나큰 걱정을 할 것이고 상심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들이 아루씨의 머릿속에서 들자 아루씨는 더욱 마음이 조여와서 다시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럴 때 나의 백성들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 별안간 아루씨는 좋은 생각이 나서는 책상에서 힘껏 일어났다.

‘바로 그거야!’

그녀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방 한쪽으로 가서 서랍을 뒤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작은 붓 하나를 꺼냈다. 그다음에는 방문을 열고 1층으로 내려가 어머니가 있는 서재에 들어가 캔버스를 가지고 올라왔다. 그녀는 캔버스를 창문이 보이는 곳에다 옮기고 하얀 종이를 끼운 다음 붓을 들고 가운데에 대칭을 맞추어보았다. 대칭을 예쁘게 맞아떨어졌다. 그녀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하나 무언가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또다시 들었다.

‘아!’

다시 1층으로 내려가서 황급히 무언가를 들고 다시 올라왔다. 그것은 바로 물통과 물감이었다. 이제 완전한 준비를 마친 아루씨는 그곳에 꽃들을 수놓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완성된 그림을 돌돌 말아서 루다씨에게 보내주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하루가 넘는 시간 동안 그녀는 그림 그리기에 매진했고 잠도 자지 않고 그림을 그린 결과, 그림은 아주 예쁘게 완성이 되었다. 그곳에는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가지각색의 개성을 담고 있었다. 그녀는 완성된 그림을 한번 더 보았다. 그리고 또다시 대칭을 맞추어 보았다. 대칭은 맞았다. 그녀는 뿌듯했다. 그리고 그림이 마를 때까지 따뜻한 차를 마시며 빨리 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마른 그림을 돌돌 말아서 가을에 꽃들이 선물해 준 마른 줄기로 묶었다. 그리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쏜살같이 너도나도 방 안으로 들어오려고 기승을 부렸다. 아루씨는 참을 수 없는 추위를 느꼈지만 그래도 루다씨에게 보낼 그림을 위해서 참았다. 콧물이 나왔다. 기침이 나오고 다리가 오슬오슬 떨렸다. 그럼에도 그녀는 참고 기다렸다. 그러자 저 멀리서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바람과 함께 날아와서는 꽃의 공주는 그녀에게 예의를 갖추고 인사를 했다. 그녀는 독수리의 인사를 받고 그림을 건넸다. 그림을 받은 독수리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고는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멀리 날아가는 점과 가는 독수리를 바라보다가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생각한 아루씨는 창문을 닫았다. 아루씨는 생각했다.

‘이제 독수리가 그림을 받았으니 루다씨는 안심하고 그림을 볼 수 있겠지. 그리고 곧 있으면 차가운 겨울도 가고 따스한 봄이 올 거야 그때는 나의 백성들도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루다씨는 수많은 새들을 거느리고 나에게 오겠지. 그 순간을 생각하면 그리고 그것의 의미를 생각하면 나는 지금의 추위, 겨울 따위 얼마든지 버틸 수 있어. 그러니 콧물이 나와도 다리가 오슬오슬 떨려도 기침이 나와도 참을 수 있어!’

그녀는 거듭 그렇게 생각하고는 다음에는 어떤 그림을 그릴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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