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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Dec 30. 2023

울어라, 지옥참마도!

어느 사회복지학과 학생의 푸념

지난 11월 초, 우리 사회의 그림자가 빛을 보았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경기가 한창이던 그때, 티켓은 없으나 팬심 하나로 일말의 희망을 가진 노년층이 잠실야구장으로 몰렸다. 이번 한국시리즈 경기는 이전과 같이 온라인으로 예매를 진행했고, 때문에 온라인 예매에 능한 팬들이 전석 티켓을 가져가 나이든 골수팬들은 표를 구할 수 없었다.



사복특

앞서 한국시리즈 경기장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노년층의 이야기에 대해 ‘평소에는 외면하던 일종의 책임감이 샘솟는 이야기’라고 칭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난 사회복지학과 학생이다.


사회복지학과 학생이라면 대학 생활을 하기 전, 하는 중에 백 번은 넘게 듣는 이야기가 있다.

“착한 일 하네~”

“착하네~”



실제로 겪어보면 안 착한 애들도 더러 있다. 그런데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야.”라고 계속 말하면 실제로 운이 좋아진다는 말이 있듯이, 착하다는 소리를 계속 들으면 착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든다. 이에 더해 온갖 사회문제에 가장 민감하고, 이상적으로 반응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


그러나 나는 사회복지에 흥미가 없다. (그 이유는 아무도 안 궁금해 할 것 같아 쓰지는 않겠다. 별로 특별한 이유도 아니다!) 따라서 사회복지학도로서의 책임감은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편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사회복지학과인 에디터 덧니는 사회문제에 민감하고, 이상적으로 반응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토록 원하던 LG 트윈스 한국시리즈 우승을 온라인 예매를 못한다는 이유로 직관하지 못한 노년층이 있다.
평소 회피하던 책임감이 샘솟았다.


의문의 주어 자동완성(?)

우리 사회는 보통 이러한 상황을 두고 [ 디지털 격차, 정보 격차, 디지털 장벽, 디지털 소외 ] 등의 용어로 표현하곤 한다. 정형화된 의미는 이렇다.


디지털이 보편화되면서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계층(階層)은 지식이 늘어나고 소득도 증가하는 반면, 디지털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전혀 발전하지 못해 양 계층 간 격차가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할 부분이 있다. 대체 디지털 격차에 주어가 어디 있는가? 그 어디서도 ‘노년층’을 주어로 고정시킬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보통 ‘소외된 노인’이라는 뉘앙스와 함께 디지털 격차의 주어를 자동완성 시킨다.


디지털 격차의 주어는 남녀노소 다양하다. 단지 노년층의 모습이 자주 비춰질 뿐이다. 비춰지지도 않는 그림자 속에는 저소득층 아동・청소년, 생계가 곤란한 중년, 장애를 가진 청년 등 수많은 이들이 있다. 우리는 그 점을 똑똑히 기억하고 다시 본론으로 넘어가야 한다.


학교 강의 중에 세대갈등을 주제로 질적 인터뷰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30명 남짓 되는 학생들이 각자 한 명씩 붙잡고 세대갈등에 대해 40분 간 인터뷰를 해왔는데, 그 내용들이 참 흥미로웠다. 요약하자면 ‘요즘 청년층이 느끼기에 세대갈등이 가장 심한 계층은 청년층-노년층이고, 그 주된 요소는 디지털 격차’라는 것이다.


에디터 덧니의 팀에서 작성한 과제


명색이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인데, 그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이라 말했냐면 “잘 모르겠다”고들 답했다. 정말 잘 모르겠다.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고자 교육을 실시한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그 교육의 실효성은 얼마나 될 것이며, 대상자는 노년층의 몇 퍼센트나 커버할 수 있냐는 말이다.

그리고 세상이 잠시 그들을 기다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올 것을 강요할 게 아니다. 기다려주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작은 물결이 모여 어쩌구란다

어떻게 하느냐고? 아주 작은 변화면 된다. 실제로 애카이브에서 디지털 격차를 주제로 카드뉴스를 올린지 며칠 안 돼서 좋은 변화가 일어났다. 애카이브가 그러한 영향을 끼쳤다는 말은 아니지만 우연이 겹쳐 기분이 좋았다. 부천FC에서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두 즐길 수 있는 경기장을 만들고자 현장 판매 전용석을 시범 운영한다는 소식이었다. 어려운 변화도 아닌 것들로부터 시작이 이뤄지면 된다. 현장 판매 전용석이 정식으로 운영되고, K-리그, KBO, KBL, V-리그… 그리고 KTX, 고속버스까지 퍼져나가면 된다.



개인적인 노력은 어떻게 하느냐고?


대학생활 3년이 무색하게도 아무것도 모르겠다… 허무한 결론이지만 이것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여튼 난 ‘노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감정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 되도록이면 ‘노년층’이라는 단어를 쓰고는 있다. 비 오는 날 우산이 없는 할머니께 내 것을 드리고 난 비 맞으며 우수에 차오르기도… 작은 선행이 모여 큰 변화가 된다는 맹목적 믿음에 의지한 채 살아간다.


생각보다 맹목적 믿음의 힘은 크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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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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