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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Jan 29. 2024

사투리 사냥을 나간다

“내가 사투리를 쓴다고?”


발표를 할 때, 여러 명이 내게 집중할 때, 급박하게 말해야 할 때 나도 모르게 툭-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그럴 때면 친구들은 저마다 토론을 한다. “고향이 경상도인가 보다~” “아니야 끝말이 전라도야” “엥 충청도 아냐?” 다 아니다. 본인은 구리 출생 남양주 토박이로 토종 경기도인이다. 부모님이 사투리를 쓰지도 않는다. 근데 왜 사투리를 쓰느냐? 정확히 말하면 사투리는 아니고 들었던 모든 억양을 뇌에서 적절히 섞어 급할 때 입으로 뱉어진다고 설명할 수 있다.



메타몽 같은 그녀의 언어 구사능력 이대로 괜찮은가?


한때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늦바람 들었을 때 특유의 먹먹하고도 고아한 대사에 푹 빠져 자기 전 몇 번이나 들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되도 않는 사극 말투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엄마한테 ‘밥은 언제 먹을 것이오?’라 묻고 지금 먹고 싶냐 물으면 ‘좀 이따가 좋겠소’라 답했다. 그러면 엄마는 쟤 또 시작이구나 하는 식으로 넘겼다. 사극 말투가 오래 가지는 않았다. 곧이어 <사랑의 불시착>이 등장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평소 흔히 볼 수 없는 말투는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그런데 왜 사투리는 급할 때마다 튀어나오는 것인가.




내가 사투리를 사랑하는 몇 가지 이유


유추해 보자면 내가 사투리를 좋아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사투리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하나만 꼽으라면 우선 귀엽다. 모에화가 아니라 정말로 귀엽다. 분명 같은 언어로 익숙한 말을 하는데 특유의 높낮이가 가득한 사투리로 말하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가끔 노래를 듣는 듯하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한 문장을 내뱉는데도 음표가 통통 튀듯 다채롭다. 만약 누군가 사투리가 왜 좋냐고 묻는다면 가장 처음 떠오르는 말은 ‘귀엽다’일 것이다. 허나 귀엽다는 말이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건네는 대답은 그냥 혹은 매력있어서~ 일 테지만 뒤로는 귀엽다를 남발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초등학교 때 잠깐 사귀었던 남자애는 울릉도 사투리를 썼었다. 열두 살이었던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여름이 물러갈 무렵, 진작에 개학한 학교를 오래 비우다 돌아간 교실. 내 자리를 물어본 후 가보니 처음 보는 남자애가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전학생 이랬다. 어디서 전학 왔냐 물으니 돌아온 단 세 글자 ‘울릉도’. 그때 울릉도 사투리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직 변성기도 오지 않는 남자애의 사투리 섞인 말투는 꽤나 귀여웠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모든 아이들이 서로서로 만나는 시기였고, 이후 그 애와 사귄 건 친구들 등쌀이 80퍼센트는 차지한다. 나머지 20퍼센트의 이유를 찾자면 사투리가 귀여웠기 때문이라 확신한다.


스물셋, 대학교 연합 동아리에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또 한 번 사투리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유독 귀에 잘 들리는 음성이 있었다. 목소리가 크다기보다는 발성이 좋다. 그래, 이영지 같다. 근데 이제 사투리를 사용하는 영지 소녀. 아마 이 글을 읽는다면 자신인지 단박에 알아차릴 것이다. 우리 동아리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아차릴 그 아이는 사투리를 쓴다. 귀엽다. 어쩌면 과격하게 우다다다 말하다 뜬금없이 ‘사랑한데이~’라 외치며 배시시 웃는 모습이 귀엽다. 확실히 사투리는 사람의 매력을 배로 증가시킨다.




조선팔도 호소인

최근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속 동창회 장면에서 다들 사투리가 엉터리라 별로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진짜’들의 사투리에 홀린 듯이 귀를 열다가도 ‘가짜’들의 사투리에는 귀를 닫고 입을 열었다. 왜 이리 엉터리냐고. 참 웃기는 일이다. 생전 사투리는 써볼 일도 없는 사람이 사투리의 능력을 평가한다는 것이 말이다. 애초에 돌이켜 보면 나만큼 엉망진창 사투리를 쓰는 사람도 없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 장터 같은 사투리를 쓰는 나였다. 자칭 부산 남자 피식대학의 이용주가 경상도 호소인이라 불리는 것을 넘어서 나는 조선팔도 호소인이다.


하나 짚고 갈 점은 나는 내 자아 없는 사투리를 기꺼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고향이 어디길래 사투리를 쓰냐 물을 때면 부끄러워 어물쩍 넘긴다. 왜냐면 나도 모르게 나오는 사투리가 엉터리리라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얼마나 어떻게 썼을지 감도 안 오기 때문이다. 그저 뱉어진 내 말투가 우스워 보이지 않기를 우습게 느껴지지 않기를, 무엇보다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조롱으로 들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문화와 지역의 정서가 잘 드러나고 이를 보존하는 데에는 사투리만 한 게 없다. 사투리는 가만히 잠들어있는 문화유산이 아닌 사람들의 입방아로 옮겨가며 이어가는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이라 생각한다. 내가 그 지역에 살지 않았더라도 사투리가 들리면 괜스레 정겨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사투리로 뭉쳐지는 그들만의 역사와 문화가 부러울 때가 종종 있다. 최근에는 90년대 서울 사투리에 푹 빠졌었다. 홀로 우물우물 연습하다 친구들한테 들려주고 나 잘하지? 물으면 다들 북한 말투 같다고 말한다. 웰메이드 사투리는 못 쓰지만 언젠가 나도 멋진 사투리를 써보고 싶다. 호소인이 아닌 진정한 조선팔도인이 되어 살아있는 문화가 되어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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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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