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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Jul 26. 2024

내 감정 본부에는 누가 있을까?

 최근 드.디.어 인사이드아웃2를 봤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봐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사람들이 하도 “너무 슬프다, 눈물샘 폭발이다”라는 말을 하길래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 화장실에 들러 휴지를 넉넉히 챙긴 후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고 보러 들어갔다. 그런데 눈물이 나기는커녕 답답하고 약간 몇 가지 이해가 안 되는 행동들도 있었다. 그래도 누적 관객 수 800만을 넘은 영화인만큼 전체적으로 재밌었다. 특히 나의 동심을 다시 상기시키면서 교훈까지 주는 영화는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돈이 아깝지 않은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시간이 조금 지나 다시 인사이드아웃2를 생각하니 이런 물음이 떠올랐다.


 과연 내 감정 본부에는 누가 있을까?


1. 까칠부장

“엄마 나 무조건 핑크색!! 아 싫어 치마 입을 거야!!”


 어릴 적부터 나는 취향이 뚜렷했다. 엄마의 유일한 낙이 내 옷을 사고 입히는 것인 그 시절부터 나에게는 고집이 있었다. 안 그래도 바쁜 아침은 나의 고집으로 인해 전쟁통이 되었고 엄마는 출근하기 전부터 깐깐한 손님을 상대하느라 진이 빠질 정도였다고 하니… 나는 태생부터 까칠한 사람이었나 보다.

 성인이 된 지금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생각도 많고 예민한 편이라 사소한 것에도 까칠해질 때가 있다. 그냥 까칠함이 베이스라고 보면 된다. 사회에 융화되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나의 까칠한 모습을 세상에 대놓고 보여줄 수는 없기에 모든 사람이 알지는 못하지만, 사실 나의 감정 본부에는 까칠이가 제일 큰 권한을 쥐고 있다.


 한 가지 변명을 해보자면, 인사이드아웃 속 까칠이는 까다로움의 성격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섬세함이 기저에 깔려 있다고 하는데 나도 마찬가지이니 이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2. 불안차장

“아 나 까칠해 보였으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미워하면 어떡하지?”

 

 이렇게 나의 까칠부장 모멘트로 인해 매일 눈치를 보는 불안차장이 있다. 나는 사람들이 걱정 인형이라고 말할 만큼 걱정이 많은 사람인데 걱정이 많아 질문도 많다. ‘의문세’라는 별명이 붙여졌을 정도로 엄청난 질문 폭탄을 할 때가 있으니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대처 방법을 한 가지씩 가지고 있는 것을 추천한다.

 나의 가까운 사람 중 당당이(당당함을 가진 감정_내가 만들었다)가 감정 본부에 리더일 것 같은 쿨 ‎걸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그 쿨 걸은 나에게 항상 “너 자신을 이제 좀 사랑해”라고 당부하는데 불안한 감정 때문에 쿨 걸의 간절한 외침을 받아주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인사이드아웃2를 보면서 불안이가 엄청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까칠부장 발동) 답답하기보다는 너무 나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내 안에 불안 감정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감정이기에 언제까지 미워하기만 할 수는 없다. 이를 모든 사람이 알기에 인사이드아웃2 불안이가 현재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제부터는 나도 불안차장을 사랑해 보려 한다.


3. 따분과장

“아 하기 싫어, 쓸데없는 일을 왜 해야 해?”


 나는 완벽주의자 기질을 가졌다. 아니 사실 완벽주의자라고 말하면서 시작도 하지 않는, 그냥 게으른 사람일 수도. 그리고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쓸데없는 일이나 관련 없는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밸런스게임 중 황밸(황금밸런스)이라는 평을 받는 질문이 있다. ‘열심히 하는 데 정말 도움 안 되는 사람 vs 아예 안 하는 사람’ 나는 이 둘 중 후자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극 효율 추구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인사이드아웃2 따분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분이는 그저 모든 일에 따분해하는 것이 아닌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나서서 하는 성향을 가졌다. 따분이도 완벽주의자인가 보다.


4. 기쁨사원

 

 지금까지 나의 감정 본부를 보면 “이 사람은 살아가는 재미가 있는 사람일까?”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렇지만 나도 사람이다. 나도 기쁨을 알고 즐거움을 안다. 그러나 아직 사원 직급이라 기를 못 펴고 있을 뿐! 까칠부장의 눈치를 보고 까칠부장으로 인해 불안한 불안차장의 눈치도 보고 그냥 따분한 완벽주의자 따분과장의 눈치까지 보느라 기쁨사원이 기뻐할 날이 많지 않지만, 매일 작은 것에 기쁨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모든 하루의 일을 끝내고 누워서 쇼핑할 때, 길 가다 귀여운 강아지와 아기를 볼 때,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마음 맞는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뻥 뚫린 풍경을 볼 때 등 소소한 것에 매일 기쁨을 맛본다. 이렇게 적고 나니 꽤 기쁨을 많이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기쁨사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정말 고맙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기쁨 사원조차 없었다면 나는 신경외과를 달고 살았을 테니! 기쁨사원 고마워.


"어른이 된다는 게 이런 건가 봐. 기쁨이 줄어드는 거"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 기쁨이의 말에 동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 감정 본부 직급을 보면 그저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보면 볼수록 그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과정에 놓인 평범한 사람의 감정 본부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파지곤 한다. 내가 그렇게 특별히 힘든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감정 본부가 저런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도 다르게 생각해 보면 까칠부장 덕분에 좀 더 섬세하게 사람을 챙길 수 있고 불안차장 덕분에 미래를 대비할 수 있으며 따분과장 덕분에 내 할 일을 더 잘할 수 있다.


즉,

어른이 된다는 건 기쁨이 줄어드는 것이 아닌 더 큰 기쁨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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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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