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알을 가지고 있다. 마음의 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되고 싶은 나의 모습."
부캐의 뜻을 듣자마자 귓가에 울리는 내레이션이다. 미디어 속 다양한 부캐가 날뛰는 현재, 미디어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캐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연예인들의 새로운 컨셉의 캐릭터가 대부분이다. 현실로 넘어가면 우리의 새로운 모습은 부캐와 어느 정도 뜻을 같이 하는 페르소나. 또 그 의미가 '나의 겉모습' 자체보다 '내 안의 여러 모습이 겉으로 분출된 모습'으로 뜻하는 현재.
이는 '되고 싶은 나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라는 소원에서 시작된 <캐릭캐릭 체인지> 속 세계관과 흡사하다. 그렇기에 나는 부캐니 페르소나니 하는 말들을 유치하지만 마음의 알로 빗댄다.
집에서부터 학교나 직장, 또 친구와 지인들 사이에 '나'는 동일한 모습인가? 그렇지 않다. 실제 나와 보여지는 나의 모습이 달라 보이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떤 상황과 마음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마음의 알들을 제대로 까보도록 하겠다. 여기서 까볼 마음의 알은 숨기고자 하는 가면 따위가 아닌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위해 장착했던 캐릭터들이다.
학창 시절 나를 표현하라면 왈가닥 그 자체였다. 지금도 크게 다를 바는 없다. 하지만 대충 만족하며 사는 지금과 달리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싶었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조신하고 얌전한 아이처럼 보이고 싶었다. 딱 '스우'처럼 말이다. 부드럽고 가정적이며 상냥한 성격의 캐릭터. 다정하면서 항상 차분한 텐션을 유지하기 위해 홈베이킹도 해보고 뜨개질 등 손으로 만드는 취미도 가졌었다. 나긋한 말투를 장착하고 최대한 평소보다 느리게 말하려 노력했다. 이 짓을 반 학기 정도 하다가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왈가닥을 그만 제어하지 못하고 접어버렸다.
감투를 쓸 일이 많았다. 나서는 일을 좋아하고 누군가의 앞에 서는 것에 겁이 없었기에 여러 자리를 맡았었다. 하지만 상황이 사람을 바꾼다고 없었던 겁이 생기고 자신감도 자존감도 떨어지게 만드는 사건이 생기고야 만다. 그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장착했던 캐릭터가 바로 '프린스'. 강인함과 자신감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때론 약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독설도 서슴지 않았던 고슴도치같이 날 선 모습이 프린스 그 자체로 보였다.
남을 웃기는 데 희열을 느끼며 그 어떤 말보다 재미없다는 말이 싫은 사람이다. 사실 누군가를 웃기고 즐겁게 만드는 일은 재능의 영역이라 보기에 나는 어떻게든 그 영역을 침범하기 위해 노력으로 승부한다. '쿠스쿠스'처럼 광대가 되는 것이다. 상대를 웃기는 데 필요한 재능은 재치와 유머라고 한다면 노력의 영역은 스스로를 내려놓고 뻔뻔함을 갖는 것. 이도 익숙해진다고 지금은 누군가를 웃기기 위해 어느 정도 내려놓는 것은 쉬운 일이 되었다.
내 마음의 알들을 캐릭터에 비유해 보니 원하는 모습이 여럿이었구나 싶다. 그리고 지금도 때때로 다른 모습들을 장착하고 산다. 어쩌면 자주. 그러다 보면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진짜 내 모습은 무엇일까?
수많은 모습으로 행동과 말투를 달리하는 나는 어떤 사람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한 적이 있다. 결론은 뻔하지만 전부 나였다. 보통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가면을 쓴다고 하지만 나는 이를 노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도덕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당시 실제 내 본 모습은 아니었지만, 다른 모습으로 보이고자 새로운 캐릭터를 장착했던 그 시기의 경험과 마음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일조했음은 분명하다.
앞으로도 수많은 마음의 알을 품고 보여주며 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X알을 품은 듯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볼 때가 종종 있지만 아직 찬란하게 빛나는 마음의 알들은 남아있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 부캐를, '또 다른 나'를 장착해 보는 캐릭터 변신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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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