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올림픽 시즌, 유난히 나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 선수가 있다.
바로 오직 3명으로 이루어진 차드 올림픽 선수단의 주장이자 기수인 '이스라엘 마다예 선수'이다. 마다예 선수는 2008년부터 독학으로 양궁을 시작해 이번 파리 올림픽이 첫 올림픽 출전이었는데, 우리나라의 김우진 선수와 맞붙은 64강 경기에서 1점을 기록하면서 이슈가 됐다. 처음엔 '1점 궁사'라는 웃픈 사연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그의 숨겨진 노력이 알려지자 진정한 올림피 정신을 가진 선수라는 찬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다예 선수는 옷이나 단추에 화살 현이 스치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비인 체스터 가드도 없이, 아무런 스폰서도 적혀 있지 않은 민무늬 티셔츠를 입은 채 올림픽 무대에 섰다. 누구나 최고의 장비, 최고의 코치와 함께하는 전쟁터에서 오직 조국과 양궁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무대에 선 마다예 선수. 기본적인 양궁 장비와 물품조차 갖추지 못한 혈혈단신 상태였지만 마다예는 그 누구보다 강인해보였다. 과거 식민지였고 현재도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열악한 환경에서, 전문적 지도는 꿈꿀 수도 없는 곳에서 독학으로 양궁을 배워왔다는 그의 사연. 차드의 사정상 인터넷도 잘 되지 않아 국제양궁협회에서 보내준 종이 신문에 실린 양궁 선수들의 연습법을 참고하며 홀로 실력을 키워왔다고 한다.
아프리카 차드 양궁 국가대표 이스라엘 마다예(36·차드)
사실 여기까지만 보아도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대단한 영웅기 같지만, 더욱 대단한 것은 그의 단단한 마인드였다.
1점? 0점이었어도 별로 아쉽진 않았을 거다.
이 자리에서 최고의 선수와 경쟁한 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하다.
1점을 쏜 경기를 끝내고 그가 남긴 말, 바로 "응? 0점이었어도 별로 안아쉬워 skrr ㅋㅋ".
경기에 대한 아쉬움이나 부끄러움을 토해내기 보다는 오히려 쿨한 소감과 함께 차드 국민들이 올림픽에서 펄럭일 차드의 국기를 보며 힘을 얻길 바란다는 격려를 남긴 그. '중요한 건 꺾여도 다시 일어나는 마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나를 찾아온 패배나 좌절에 휩쓸려 내 앞에 펼쳐질 더욱 중요한 것들을 놓치기 보다는 실수를 담담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더욱 성장하는 마음, 또 그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 나아가는 마음. 옆을 돌아보며 남과 비교하기 보다는 나만의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는 마음.
사실 나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보다는 말 보다는, 앞서 말한 '중요한 건 꺾여도 다시 일어나는 마음'이라는 말이 더 좋다. 마음이란 당연히 언제든 꺾일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에. 한 달만 살아도 긍정인이 된다는 그 맑고 화창한 캘리포니아에도 비가 오는 날은 있는 것처럼, 사람 마음이 어떻게 늘 꼿꼿하게 그대로일 수 있을까? 꺾여도 괜찮다! 당연히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럴 때도 있는 거고, 그런 날도, 그런 일도 있는 거다. 무슨 일이 있었든 아 - 무 상관 없고 그저 다시 툭툭 털고 잘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 등산을 할 때, 정상에 다다르기 전 잠시 앉았다 가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긴 산을 오르는 거다. 그것도 쉼터는 꽤 여러 번 있고, 우리는 원할 때 잠시 쉬었다 가면 되는 거야.
항상 남들보다 앞서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먼 미래를 불안해하며 눈 앞의 오늘을 낭비하기엔 이 청춘이 너무 아깝더라고! 나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이니까. 조금은 바보 같아도 되고, 실수할 수도 있고 그런 거 아닐까? 수험생 시절부터 스스로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작은 실수도 과장되게 생각하던 습관도 이젠 관두기로 했다. 남들에겐 그렇게도 쉽게 나오던 관대함, 이젠 나에게도 좀 써보려고. 아 뭐 그럴 수도 있지 ~ 꼭 나쁘지도 않아! 오히려 좋은데?
마다예 선수가 이번 올림픽에서 남긴 것은 1점을 쏜 과녁만이 아니었다. 그는 그의 바람대로 세상에 차드를 알렸고, 더 넓은 양궁 세계에 그를 알렸으며, 그가 남긴 족적은 지구 정반대편의 있는 이에게까지 닿아 따뜻한 용기가 되었으니까. 나도 나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일지는 모르겠지만, 마다예 선수처럼 앞만 보고 정진-! 하며 내 앞에 놓여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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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예 선수에게 존경을 표하며,
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