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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Sep 30. 2024

AI라고? 너 누군데?

바야흐로 AI 시대다.

 AI라는 단어가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며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한창 사람들의 일자리를 대체하네 마네 말이 많아서 지레 겁먹기에 바빴다. 실체도 명확하지 않았기에 더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당시 교사를 꿈꿨던 나는 ‘아이들의 감정까지 섬세하게 다뤄야 하기에 대체할 수 없을 거야.’라며 교사의 경쟁력을 찾기도 했다.

 그러다 AI의 위력을 체감했던 때가 있다. 바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다. 이세돌과 같은 9단 프로 바둑 기사는 몇백수 넘게 내다본다던데 알파고를 상대로 고전했으니.. 당시에는 꽤 충격적이었다. 사람들도 기술의 발전에 많이 놀라 했었다. 그러니 1승을 한 것이 아직도 회자되는 거 아닐까? 그런데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AI가 나와는 먼 기술이자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AI가 점점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챗GPT 상용화부터 최근에는 광고 또한 기획에서 제작까지 모두 AI로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랐다. 기술이란 참으로 빠르게 발전하는 것 같다. 벅차도록..^^


난 가끔 내가 90년대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한다.

 AI와 같이 무한하게 발전하는 기술을 보면 ‘와 이거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 생각이 가장 많이 드는 게 바로 스마트폰이다. 근데 한편으로는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기에 살아보고 싶다.

 2001년생인 나는 2G와 스마트폰 모두를 경험했다. 슬라이드 폰부터 폴더폰인 ‘고아라’를 거쳐 초등학교 4학년 때 첫 스마트폰인 삼성의 ‘미라클 A’로 바꿨다. 그래도 초등학교 때 2G 감성을 경험해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스마트폰 없을 때의 감성을 조금이라도 경험해 봤으니 말이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 연락 수단이 크게 없어서 친구들과 N시까지 놀이터에서 모이기로 약속하고 냅다 모이거나, 오지 않는 친구는 직접 집 앞에 가서 ‘나와라~!~!’하고 소리쳤었다.

 주로 대면으로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필요하면 문자 메시지를 했던 그때 그 시절.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스마트폰 하면 누구든, 어디든 연락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요즘과는 확연히 다르다. 당연시되는 게 적어서 소중해지는 것들이 많았달까? 그래서 성인 때까지 좀 더 그러한 몽글몽글한, 낭만적인 감성을 경험하며 2G 세상에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할미는 힘들다 (AI 챗봇 극뽁~)

 나는 빠른 기술의 속도가 버겁다. 얼리어답터와 거리가 너무나도 먼 자칭, 타칭 할미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재미로도 사용한다는 AI 챗봇을 이번 여름 방학에 공모전을 하며 처음 써봤다. 한창 챗GPT를 사용해 과제를 하는 것 때문에 소란스러웠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엥 이걸 진짜 많이 쓴다고..?’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써보고 싶은 궁금증이 유발되진 않았냐고? 전혀. 과제는 두말할 거 없고 자료조사 시간 단축에 유용하다는 추천을 많이 받아도 ‘아… 글쿤.’하고 말았다.

 이런 내가 챗GPT의 편리함을 알아버렸다. 사용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공모전 주제가 AI였는데 자료조사 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잘 모르는 AI인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제한적이라 직접 조사를 하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뼈문과라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이런 기술 있어?’,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 중인데 해당 기술을 기반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 등등 아이데이션에 챗GPT를 적극 활용했다. 물론 질문을 잘 해야 하는 것이 관건이었으나 적응하니 넘 편했다. 앞으로 아이데이션할 때는 적극 활용할 것 같다~


도태된 꼰대로 늙기는 싫어~

 “나이만 먹고 변한 게 없으면 그게 불쌍한 것 같아요.”라는 닝닝의 명언에 공감한다. 기술이 한없이 발전하는 것을 막을 방도는 없기에 결국 거기에 어떻게 잘 적응하냐가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나의 속도에 맞춰주지 않는 세상 속에서 나의 속도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 나만의 속도로 세상에 적응하는 것이 도태되지 않는 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연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밀어붙이는 게 꼰대가 아닐까? 나는 무엇이든 변화에 취약한 사람이지만 결국 받아들이고 적응하려고 한다. 다만 변화가 두려워 그 속도가 늦을 뿐. 앞으로도 나만의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 잘 적응에 나름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잘 늙기 위한 나만의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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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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