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참새에게 갔다. 엄마가 이미 일어나서 참새에게 밥을 먹이고 있었다. 살았구나. 다시 만나 반갑다. 참새는 기운을 좀 차렸는지 가만히 있던 어제와 다르게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살짝 날기도 했다. 처음으로 짹짹하는 소리도 냈는데 작기만 한 몸에서 꽤 우렁찬 소리가 나오는구나 싶었다. 참새다운 몸짓과 소리는 죽음이 멀어졌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이제야 마음 놓고 참새를 살펴보았다. 참새가 작은 줄은 알았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 작았다. 역시 귀여운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어제는 한쪽만 간신히 뜨던 눈은 두 쪽 다 똘망똘망하게 뜨고 있었다. 추측건대 다친 게 아니라 워낙 기운이 없어서 제대로 못 떴나 보다. 검은깨 같은 두 눈은 작아도 또렷이 빛났다. 난생처음 보는 외계인의 얼굴을 호기심 어린 그 눈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부리는 아직 새끼여서 양쪽이 마치 도널드덕처럼 노란색으로 넓었고 입을 앙다문 모습이 장난감을 안 사줘서 삐친 아이처럼 뾰로통해 보이기도 하고 야무져 보이기도 했다. 자세히 보니 콧구멍도 있네. 탁구공처럼 짤따란 몸에는 보드라운 삼색 털이 덮여있고 양옆에 작은 날개가 용케 붙어 있었다. 이렇게 작은 몸 안에 콩알만 한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있겠지. 아무리 작고 가벼워도 실처럼 가느다란 다리가 몸을 지탱하고 서 있는 것도 신기했다. 작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어제는 지나치게 조용했지만 오늘은 짹짹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새끼라서 배가 금방 꺼지는 건지 밥을 먹이고 돌아서면 금세 짹짹거리며 밥을 요구했다. 새끼를 낳으면 부모 새가 하루에 300번 이상 날아다니며 벌레를 잡아 온다더니 그 말이 이해가 갔다. 아기 새는 밥을 먹으면 잠잠해졌다가 스르르 잠이 들기를 반복했다.
뿌듯한 마음 한편에는 걱정이 있었다. 참새가 스스로 밥은커녕 물조차 먹지 못해서였다. 벌레가 아니라 그런지 노른자를 떠서 입에 갖다 대도 멀뚱히 있을 뿐이라 입을 벌려 넣어줘야 했다. 게다가 거의 날지도 못했다. 원래 이런 건지 아픈 건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다 해결될까?
참새의 이름을 지었다. 오길참. 길에서 만난 길조라는 의미였다(‘오’는 엄마 성이다). 성격도 급하지 고작 이틀 만에 이름을 짓다니. 이때는 참새를 돌보다가 놓아주려고 했었는데 굳이 왜 이름을 지었나 하는 생각이 이제 든다. 이름을 짓는다는 건 설레면서도 위험한 일이다. 김춘수 시인이 그랬듯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기’ 때문이다. 한번 꽃이 되면 마음에 뿌리를 내려 내보내기 어렵다. 함부로 이름을 지어선 안 된다는 것을 지금은 아주 잘 알게 되었다. 그렇게 ‘무엇’이 되어버린 존재와 이별할 날을 상상하면 벌써 서운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이 어서 오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