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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un 03. 2023

인연의 시작

참새와 직박구리

새와의 인연은 아픈 참새를 만나기 2년 전인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접어들 무렵에 작은 새 한 마리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햇볕이 들이치는 베란다 밖으로 아담한 울타리가 있는데 이 집에 이사를 올 때 엄마가 만들어 놓은 공간이었다. 이곳에다 화분이나 장독대를 두었고 가끔 고구마나 버섯을 말리기도 했다. 그 새는 이 작은 정원의 아마도 첫 손님일 것이었다. 어디 보자, 털은 갈색이고 뺨에는 동그란 반점이 있네. 누가 보아도 참새였다. 참새는 화분의 흙을 쪼아대며 먹이를 찾는 듯했다. 미안하게도 참새가 먹을만한 건 없었다. 잠시 후 별 소득 없이 참새가 떠났고 다시 오길 기대하며 나는 조와 수수와 물을 가져다 놓았다.      

다음 날, 고맙게도 참새가 다시 찾아와 주었다. 그 애는 작은 부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양껏 배를 채우고 목도 축이며 한참을 머물다 떠났다. 뭐가 그리 궁금한 지 집 안까지 들여다보는 눈빛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몇 시간 뒤에는 친구들까지 데려와서(의리 있는 것들...) 작은 정원을 만끽했다. 겁은 또 얼마나 많은지 인기척을 느끼면 곧장 푸드덕 날아가 버렸다.      


그 이후로 참새들 사이에서 소문이라도 난 건지 몇십 마리로 불어난 참새 떼로 울타리는 복작거렸다. 아침 해가 뜨면 자기네들이 왔다고 알리기라도 하듯 요란하게 짹짹거리며 밥을 먹고 해가 지기 전까지 몇 번이고 들락날락했다. 작은 몸으로 어딜 그리 바삐 돌아다니는지. 그런데 얘들이 우리 집을 기억하고 계속 찾아온다는 게 신기했다. 그동안 새의 머리를 과소평가해 왔다고 밖에. 기억하는 건 둘째치고 어떻게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오는 걸까. 상상해 보자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깃털 정리를 하면서 누군가 말할 것이다. ‘오늘도 아침은 그 집에서 해결하자’ ‘좋고말고!’ 이런 대화를 할까...? 아무튼 우리 집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방앗간이 된 게 분명했다. 무료 급식소이자 놀이터이자 사랑방인 셈이다.      


나는 그렇게 또 하나의 기쁨이 된 참새들을 매일 기다렸다. 참새도 나도 부지런히 살아가는 동안 나무들도 부지런히 옷을 벗고 겨울을 맞았다. 갑작스레 추위가 닥쳐온 어느 날 두 번째 새가 나타났다. 이름 모를 큰 새였다. 사실 그리 크지도 않은데 맨날 참새만 보다 보니 새로운 손님이 거대해 보였다. 우리 집까지 기웃거리는 걸 보면 어지간히 먹을거리가 없었나 보다. 큰 새는 조를 안 먹는지 그냥 가버렸다. 이제 눈까지 오면 먹이 찾기가 더 힘들 텐데. 어느새 겨울은 새를 걱정하는 계절이 되었다.     

 

안 올 줄 알았던 큰 새는 이후에도 띄엄띄엄 오곤 했다. 어떤 먹이를 좋아할지 고민하다 크렌베리를 한번 놓아봤는데 그제야 수시로 오기 시작했다. 양껏 먹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새의 이름도 알게 되었다. 바로 직박구리였다. 컴퓨터 폴더명으로 유명한 직박구리를 눈앞에 두고도 몰라보다니.   

직박구리도 은근히 귀엽게 생겼다. 오색찬란한 빛깔의 새들과 비교하면 회색빛 털은 평범하지만 자세히 봐야 귀여움을 알 수 있다. 까만 눈은 유리알처럼 깨끗하고 눈 바로 밑에 볼 터치를 한 것처럼 동그랗게 밤색으로 물들어 있다. 머리털이 보송보송해서 바람이 불 때면 살랑살랑 날리는데 그게 또 매력적이다. 여러 마리가 찾아오는데 외모로는 구별이 어려운 반면 성격으로는 구별이 된다. 어떤 녀석은 동네가 떠나가라 울어대며 자기가 왔다는 사실을 요란하게 알렸고 어떤 녀석은 살포시 와서 조용히 먹고 떠났다. 참새가 발랄하고 정신없는 유치원생 아이 같다면 직박구리는 예민한 사춘기 청소년 같았다.     


참새는 무리를 지어 다녔고 직박구리는 혼자서 오거나 둘이 왔다. 여럿이 모이면 용감해져서일까. 조용히 식사하던 직박구리의 등을 참새가 날아와서 찍어 누른 일이 있었다. 직박구리에게는 미안하지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가만 보면 참새는 자기가 독수리 정도 되는 줄 아는 것 같다. 패기로 치면 누구에게도 쉽게 밀리지 않는다. 이런저런 소소한 해프닝이 있었지만 새들은 비교적 평화롭게 밥을 먹고 쉬다가 떠났다.     


그렇게 참새와 직박구리를 위한 무료 급식소는 매일 성업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받는 거라곤 똥이 전부였지만. 아니다. 듣기 좋은 새소리와 웃음을 얻었으니 남는 장사(?)라고 해야 하나. 동생은 새들을 보며 이렇게 밥을 챙겨줘도 한 번을 만져보지 못한다면서 저 보드라운 털을 한 번만 만져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말이 씨가 되어 지금은 눈뜨면 참새를 주무르고 있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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