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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un 02. 2023

첫 만남

어느 날 갑자기

“참새 왔다.”

그래, 참새가 오셨구나. 아니, 참새…? 여느 때처럼 평범하게 지나갈 뻔한 2022년 5월의 어느 하루는 범상치 않은 존재의 등장으로 영원히 기억에 남을 날이 되었다.     


정오에 엄마가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오겠다며 나가셨다. 그런데 얼마 안 가 삑삑 하고 도어락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또 마스크를 두고 가셨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찰나 들리는 엄마 목소리. “참새 왔다.”      

거실에 나가니 진짜 참새가 있었다! 태어난 지 2주 정도 돼 보이는 어린 새였다. 참새를 이렇게 보게 되다니 신기한 것도 잠시, 우선은 살리고 봐야 했다. 참새가 아파 보였다. 길바닥에서 입을 벌린 채 옆으로 누워 있었다고 했다. 5월 날씨치고는 유난히 더운 데다 못 먹어서 탈진한 것 같았다. 참새는 가만히 눈만 깜빡거렸다. 그것도 한쪽 눈만. 한쪽은 왜인지 뜨지를 못했다. 급하게 물부터 먹였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달걀노른자를 먹이라고 한다. 멍한 참새의 부리를 살짝 벌려서 노른자를 흘려 넣었다. 혹여나 목이 막힐까 봐 물도 틈틈이 먹였다.     


참새는 힘없이 작은 몸을 떨기만 했다. 보이지 않는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걸까. 우리 가족은 그저 참새가 삶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며 정성껏 돌보는 것밖에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먹이와 물을 먹였으니 이제는 회복할 시간이었다. 다이소에서 산 빨래 바구니를 참새의 임시 거처로 정했다. 바닥에 휴지를 몇 장 깐 다음 참새를 그 안에 넣었다. 움직여주었으면 좋겠는데 오늘은 무리인가 보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집은 조용해졌지만, 마음은 아직도 울렁거렸다. 거실 빨래 바구니에 홀로 있는 참새가 머릿속을 지배했으니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가 더 생각난다는 말처럼 그만 생각하려 해도 바들바들 떨던 참새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게다가 넌 코끼리보다 훨씬 훨씬 작은데….     


참새가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고 한두 시간이 지나갔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뻔하다. 인도 한가운데 있었다고 하니 그 작은 털뭉치를 미처 못 보고 누군가 밟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엄마가 오늘 지나간 그 길은 평소에 공원에 갈 때 지나는 길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매일 다니는 길이 오늘 공사를 하는 바람에 다른 길로 돌아간 것이었다. 때마침 시간도 들어맞았고. 아니, 아예 나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요새 부쩍 허리가 아파서 치료에 전념하던 엄마가 오랜만에 나간 산책이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지만 이렇게 우연이 여러 번 맞물려 우리 집까지 흘러들어온 참새를 보고 있으면 이 친구와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것만 같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가장 와닿았던 대사 하나가 떠올랐다. ‘삶은 누구도 통제 못 하는 수많은 상호작용의 연속이다.’     


참새는 초저녁에 일찍 잠들었다. 오늘 일어난 일을 예상하지 못했듯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다만 오늘 밤은 참새에게 긴긴밤이 될 것 같다. 긴 밤을 지나 내일 아침에 새로운 태양이 떴을 때 꼭 만나기를 바라며 나는 나쁜 생각을 애써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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