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인터넷 속 여러 이름들
본질을 잊지 말자고 항상 다짐한다. 많은 것들이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 바뀌지 않는 본질을 알고 지키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을 할 때에는 핵심 목표와 지표를 확인하고, 책을 읽을 때에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본다.
본질을 찾는 습관이 가져다준 질문이 있다. ‘내 존재 자체를 제외하고, 나를 설명하는 대상 중 나와 가장 떼어내기 힘든, 내 본질에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내린 답은 ‘이름’이다.
인터넷상에서 사용하는 ID는 가상세계의 이름이다. 이제껏 내가 사용한 ID들을 되돌아보며 내 본질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글로 스토리판다의 스토리를 시작한다.
'또익이'는 어릴 적 내 별명이다. '이기고 또 이긴다'라는 뜻이다. 목사셨던 친할아버지께서 성경 구절을 따와 지어주신 별명인데, 할아버지께서 세상에 나온 나를 처음 보시던 날에 딱 세 줄을 적어주셨다고 한다. 유치원 시절의 나는 - 엄마의 도움을 받아 - 이 별명을 싸이월드와 한메일 ID로 사용했다.
이름 조승우
한자 趙勝又
별명 또익이
'승우'라는 이름의 발음과 '이기고 또 이긴다'라는 뜻 모두 참 마음에 든다. 물론 어릴 적에는 그 뜻에 대해서 잘 몰랐으나, 한창 삶에서 길 잃고 방황하던 고등학생 때 할아버지께서 왜 그렇게 지어주셨는지 알았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남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이겨내며 살라는 마음에서 지어주셨을 듯 하다.
이 ID는 지금 나와는 가장 상관없는 ID다. 무려 포켓몬스터에서 따온 ID. 한창 닌텐도 DS 게임에 빠져있던 때에 좋아하는 포켓몬들 이름의 첫 자음을 영타로 쳐서 만들었다. 1234는 그냥 길이 맞추려고 붙인 것 같다.
e - 디아루가
v - 펄기아
r - 기라티나
e - 다크라이
중학교 3학년 때 고입 준비를 위해 자기소개서 쓰고 내 삶을 되짚어보기 시작하면서, ID를 새로 만들어 자기 정체성을 다지려 했다. 별명 '또익이'를 다시 살렸고, 당시 친구들과 나누던 대화에서 조각을 모아 새 ID를 만들었다.
ddoik - 또익이. 나 자신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함.
a - alpha. 이 뜻은 비밀임.
faf - five assemble forever. 당시 가장 친하게 지냈던 5명의 친구들을 가리킴.
16살은 ID에 다시 나 자신을 담기 시작함과 더불어,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골라 읽으며 내 철학을 시작했던 때이기도 하다. 당시 읽었던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로봇 시대, 인간의 일> 등은 아직도 내 사유의 기초 근육이 되어준다.
승우(Seungwoo)의 'woo'와 '어둠에서 빛나는'이라는 뜻의 'luminous'를 합친 ID다.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도 ddoiakfaf를 ID로 사용했는데, 21살이 되어 자기 브랜딩과 UX디자인 등에 관심이 생기면서 나를 표현할 ID를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woo - 승우(Seungwoo)의 woo
luminous - '어둠에서 빛나는'
이 ID는 오래 사용하지 못했다. 불길하다는 뜻의 영단어 'ominous'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걸 뒤늦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woominous를 대신하여 나를 표현하기 위해 만든 ID다. 영어 표기 그대로 choseungwoo를 ID로 쓰기엔 특색 없는 것 같아서 '승' 자를 의미대로 적었다. 이 이름으로 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했다.
chowinwoo - 조승우를 비틀어 씀.
'스토리판다'는 2년 전 이 맘 때 티스토리 블로그 이름으로 만든 이름이다. 판다를 워낙 좋아해서 지었는데, 이후로도 내 부캐 이름으로 쓰고 있다. 브런치 이름도 스토리판다!
story - 나만의 이야기.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
panda - 판다 곰. 애니메이션 <쿵푸판다>에서 영감을 받음.
storypanda = 나만의 이야기(story)를 파는(dig), 판다(panda)를 좋아하는 나.
지금 쓰고 있는 ID다. 결국 나는 나여야 하고, 나와 가장 가까운 단어는 '승우'다. 나를 설명할 방법을 바깥에서 찾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정한 이름이다. 부캐 storypanda의 약자를 살짝 얹었다.
seungwoo - seungwoo
sp - storypanda
지금껏 사용해온 ID를 쭉 정리해보니, 또익이에서 출발해 다시 승우로 오는 여행이었다. 남다름보다 자기있음을 추구하자는 다짐과 결이 같다. 내 삶의 모든 질문과 답은 나에게서 나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