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가장 두려웠던 기억은 부부싸움
돌이켜보면 우리 부모님은 사이가 좋았던 적이 없었다.
내가 기억할 수 있을 때부터 아빠는 거의 매일을 술에 잔뜩 취해 밤늦게 집에 들어왔으며 엄마는 그런 아빠를 세상 차가운 눈빛으로 보며 날카로운 말을 날려댔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술에 취해 기분이 업된 아빠가 대강 상황을 넘겼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집 안에 고성방가가 오갔다.
오빠와 함께 두려움에 떨며 방 안에서 싸움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다 보면 아빠가 집에서 나가고 방문을 열고 본 거실은 부서진 식탁 의자와 온갖 물건들이 잔뜩 널브러져 있을 때도 있었다.
당시에는 다혈질인 아빠를 적당히 맞춰주지 않아 굳이 큰 싸움으로 일을 키우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고, 늘 부모님의 눈치를 살피느라 피곤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부부싸움을 피하기 시작했고 그 사실에 크게 안도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우리 가족도 나름 평범한 범주에 들어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 갑자기 엄마가 외할머니 옆 동 아파트로 나와 오빠를 데리고 10평대 투룸으로 이사를 했다. 하루아침에 도곡동 고급 주상복합 고층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허름한 5층짜리 건물 단지의 4층 집으로 옮겨 간 것이었다. 나는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지만, 엄마가 어디서 얻어온 흰색 이동식 선반을 책상 삼아 숙제를 하던 것과 침대가 없어 이부자리를 깔고 자던 기억이 난다.
학교 가는 길도 매우 복잡해져 엄마 손을 잡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녔고, 나는 마냥 달라진 환경이 재밌고 신선했다.
나와 달리 아빠의 바람과 범죄로 인해 부모님이 이혼 위기에 있으며 현재 별거 중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던 당시의 오빠는 티 없이 밝던 나를 미워했었던 것 같다.
별거는 길게 가지 않았다.
아빠는 손쉽게 구속에서 풀려났고, 엄마는 아직 어렸던 우리들을 위해 가정을 지키기로 마음을 먹었다.
갑작스러웠던 별거가 한 여름밤의 꿈이었던 것처럼 우리 가족은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엄마의 속은 그렇게 문드러져갔다.
오빠와 나는 각자 중학교 때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갔고, 나는 대학교를 졸업한 뒤 본가에 들어가 1년 반 정도 살다가 취직을 하고 원룸을 구해 나갔다. 그래서 부모님 간의 불화를 직접적으로 목격할 일이 거의 없었고, 본가에서 개를 두 마리 키우면서 집 분위기가 부드러워졌었다.
네덜란드로 이직을 한 뒤 부모님의 두 번째 별거를 맞닥뜨리게 될 때까지 나는 오랜 기간 꽁꽁 숨겨져 있던 부모님 간의 이슈를 까맣게 잊고 있을 수 있었다.